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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담당선생님이 아이와 헤어지면서 편지를 써 주셨다.
▲ 선생님이 아이에게 보낸 작별 편지 특수교육담당선생님이 아이와 헤어지면서 편지를 써 주셨다.
ⓒ 박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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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낮 열두시 반. 서둘러 유치원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 언어치료를 하러 가야 한다. 유치원 졸업식이야 2주 전에 했지만 우리 아이는 졸업식 후에도 방과후 반을 다녔다. 그런데 이날을 끝으로 유치원을 마치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자폐가 있다. 친구 사귀는 것을 어려워 한다. 집에서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도 자기 또래와 같이 생활하면서 모방도 하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하기에 유치원을 열심히 다니도록 했다. 동시에 언어치료나 인지치료 등도 하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는 특수교육 담당교사가 있었다. 정규교육시간 뿐만 아니라 방과후 교실 시간에도 아이를 돌봐주시는 보조교사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일 때문에 이분들의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마음은 든든했다. 아침에 유치원에 데려다주거나 오후에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유치원을 방문할 때마다 선생님들이 정말로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돌봐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폐가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언어 발달이 늦고 친구들과 사귀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방치되기 쉽다. 이 점이 부모로서 가장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동안 이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에는 걱정이 없었다. 아이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선생님들이 세세히 돌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아이 교육에 참여하는 선생님은 한두 분이 아니었다. 아이는 명랑 쾌활하게 유치원을 다녔고 선생님들의 귀여움과 사랑을 받았다.

이런 유치원 생활이 끝난 것이다. 아이가 정든 선생님과 이별할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들은 아이와 보낸 시간을 회상하며 이별을 슬퍼하였다. 나는 아이에게 이 사실을 미리 일러 두었고, 마지막 날 아이는 또박또박 말했다.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어요.  안녕히 계셔요."

선생님들은 눈물을 삼키며 아이를 꼬옥 안아주셨다. 나도 나오는 눈물을 겨우 삼켰다. 아이 나이로는 초등학교를 가야 하지만 걱정이 되어 1년 더 유치원을 다니기로 했다. 그러나 이 유치원을 또 다닐 수는 없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이런 경우가 많을 텐데, 이 기간 동안 국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복지체계는 없다. 집 근처의 다른 사립 유치원에 다니기로 했다. 잘  다닐 수 있을까. 방치되지 않을까. 선생님과 나의 눈물에는 이런 걱정이 녹아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이 아이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별이 유독 애틋했던 것은 이런 막연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짧은 이별 의식 후 유치원을 나온 아이는 아랑곳 없이 신나게 운동장을 가로 질러 교문을 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간다. 언어치료 교실로 가야한다. 나는 아이의 뒤를 따르며 감상에 젖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 감상은 이어졌다. 지난 1년간은 정말로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났다. 단체생활도 잘 했고, 언어능력도 좋아졌으며 실제로 자기 의견을 전보다 잘 말한다. 아이는 새 유치원에 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정말로 그러기를 바란다. 

전보다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국가지원이 좋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는 자기들이 죽은 후에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나갈까를 생각하면 정말로 막막하다. 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고 눈을 감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태그:#자폐증, #유치원, #복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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