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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멈추지 않는 열차가 영원한 겨울의 광활한 백색 세상을 지구 이편에서 저편 끝까지 가로지른다" ― 장 마르크 로셰트 외, <설국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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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설국열차>(봉준호, 2013)의 원작만화 대사입니다. 영화가 열차의 단선적 구조를 통해 자본주의 계급을 형상화하고, 투쟁적 분위기와 극적 흥분을 끌어올렸다면... 원작만화는 다소 우울하고 괴기스러운 상황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 느낌 입니다.

이 글의 관심은, 인류가 바로 이 자본주의라는 설국열차 안에서 벌이는 일들보다 오히려 열차에 타게 된 이유에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기원... 이것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이 문제를 앞서 고민한 대표적인 선구자 둘이 있었는데, 바로 칼 맑스(K. Marx, 1813-1883)와 막스 베버(M. Weber, 1864-1920)입니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베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서평은 박성수 선생님이 번역한 문예출판사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 썼다.
 서평은 박성수 선생님이 번역한 문예출판사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 썼다.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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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한 세대 앞서 활동한 선배 맑스에 대해서도 간략히나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구요? 베버는 '사상(idee)'이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주목했는데, 이는 당시 일부 맑스주의자들이 맑스를 물질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만 해석해 역사를 바라보는데 대한, 논박의 차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본가의 민낯을 바라보는 맑스와 베버의 상이한 시선

선배 격인 맑스는 자본주의 기원을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질적 조건들이 역사를 움직이는 힘에 주목한 거죠. 그래서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물질적 탐욕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실존을 위협하는 게 맑스가 본 자본가의 민낯이었습니다. 이에 대항해 노동자들이 단결을 통해 적절한 시기에 혁명을 일으킨다면, 자본주의는 붕괴되고 이상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죠. 그의 자본주의 비판은 오늘날도 많은 부분 유효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버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맑스의 시선이 혁명의 불꽃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투쟁적 느낌이라면, 베버의 시선은 차갑고 침울한 느낌이랄까요. 맑스가 설국열차의 영화라면, 베버는 원작만화 느낌이 나는 셈이죠. 어쨌든, 베버는 맑스가 강조한 경제적 조건들도 실은 각각의 문화적 맥락의 총체성 안에 잠겨 있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맑스와 정반대의 대답을 한 거죠. 그래서 그는 문화사적 맥락에서 경제생활을 검토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기서, 맑스의 <탐욕적 자본가>와는 다른 자기들 나름대로의 엄격한 윤리적 정신을 가진 베버의 <윤리적 자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개신교 정신이 자본주의라는 설국열차를 움직이다?

그는 물질적 탐욕이 자본주의 정신과 동일한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과거에도 인간의 탐욕은 줄곧 있어왔고, 자본주의 정신은 지속가능한 이윤 추구를 방해하는 비합리적 충동을 오히려 합리적으로 절제하도록 만들기도 한다는 것 입니다. 또, 예전부터 화폐 교환을 통한 상거래가 있어왔는데, 이제야 사람의 임금노동을 <계산하고 조직 및 관리>하는 자본주의가 발달한 데는 분명 다른 필요조건이 있었을 것이라 본 거죠. 문제는 그게 뭐냐는 겁니다.

영화 <설국열차>의 윌포드는 자본가 계급의 형상화로 보인다, 그는 열차라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엔진실을 떠나지 못하며, 열차 내 인구수와 자원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통제한다.
 영화 <설국열차>의 윌포드는 자본가 계급의 형상화로 보인다, 그는 열차라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엔진실을 떠나지 못하며, 열차 내 인구수와 자원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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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현재 향유하는 자본주의 상품, 서비스, 과학기술, 교육과정 등... 자본주의적 요소의 많은 부분들이 서구로부터 기원한 것 입니다. 베버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하던) 당대의 서구문화를 아시아 등 다른 지역 문화나 과거 서구문화와 비교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 결과, 그는 흥미로운 결론을 내립니다.  자본주의 정신이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자본주의적 합리성은 과학기술, 법률, 행정 등의 합리적 조직화와 중요한 자극을 주고 받긴 하지만...  일정한 유형의 행위를 꾸준히 선택하는 데는 인간 각자의 능력·성향 또한 아주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본 거죠.

바로 그런 성향에서의 의무감이 바로 청교도 정신(프로테스탄티즘)에서 나온다고 베버는 지목합니다. 또한 그는 개신교도들 중에서도, 칼뱅주의(Calvinism)가 자본주의적 영리 감각과 삶에서의 신앙을 결합하는데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합니다(칼뱅주의는 우리나라의 개신교 종파들의 기원이기도 하지요).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이고,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던 시기... 칼뱅이 <구원예정설>이라는 카드를 꺼내 지원사격을 해줬는데, 이게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만듭니다. 구원예정설은 쉽게 말해, 신이 이미 구원을 정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면죄부를 팔아 사람들에게 구원을 시켜주겠다고 꼬드기던 타락한 사제들에게 명분이 없어지는 거죠.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니, 어차피 신께서 구원을 미리 정해놓으셨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지?'라는 심각한 회의도 낳게 됩니다. 이런 곤란함 때문에, 그들이 선택한 답이 바로 '소명' 의식인 것 입니다.

소명의식은 직업을 <신의 부름>으로 파악하는 것 입니다. 그냥 자기가 선택 받았다고 생각하고, 신의 부르심에 맞춰서 그저 열심히 일하고 신용을 쌓는 게 최고라는 겁니다. 그것이 '의무적인 것'으로 굳어지면서, 이를 안 지키면 불충분한 신앙의 증거요 구원대상이 아니라는 일종의 '징후'처럼 생각됐던 것 입니다. 결국, 소명의식이란 나쁘게 말하면 그들이 세속적 삶에서 불안한 자기 확신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정신승리고, 좋게 말하면 나름대로의 고민의 결과였달까요.

상황이 이렇게 되면, 프로테스탄트들은 악착 같이 일해 자신들이 구원 받은 자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듭니다. 그리고 초기 자본가 계급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질서가 실질적으로 세습이 되고, 그러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거기에 휘말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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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산업자본주의라는 우주를 구축하는 데는 성공 했어도, 일단 탄생된 산업자본주의가 거꾸로 그 윤리적 힘과 종교적 색채를 탈색시켜 버리게 됐다고 베버는 바라봅니다. 인간 스스로가 선택한 문화가 오히려, 인간성을 잠식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셈이죠.

베버가 산업자본주의를 두고, 여태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수준까지 인간의 객관적 삶의 조건을 끌어올렸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차갑고 우울한 결론을 내리는 이유입니다.

"청교도는 직업인이기를 바랐다. 반면에 우리는 직업인일 수밖에 없다"   ― 막스 베버

수도원에서 현세로 나온 종교적 정신이 구축한 산업자본주의! 그런데 그 큰 영향력이 오히려 인간 실존을 압도하는 강제력으로 재규정 된 현실.... '벗어날 수 없는 강철 겉옷', '마지막 화석연료가 다 탈 때까지'와 같은 베버 특유의 비유들이 <설국열차>를 연상시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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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정신으로부터 탄생한 자본주의라는 강철 겉옷 안에서, 오히려 영혼을 빼앗겨 버

린 인간... 인간은 이 껍질 속 삶에 적응하는 것일까요, 혹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언젠가 힘껏 그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까요?

이것이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독자들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질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서평은 필자가 중앙대 학술정보원의 <인문학 고전40선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쓴 글을 보다 대중적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인문사회과학총서 1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문예출판사(1996)


태그:#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칼 맑스, #마르크스, #설국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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