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나미노 다다하루'란 일본의 한 고등학교 남자 교사가 있다. 그가 담당한 과목은 우리의 가정 과목에 해당하는 기술가정과. 그는 일본 최초의 남자 기술가정교사다.

그런데 그가 처음부터 기술가정교사였던 것은 아니다. 애초 그는 영어 교사로 13년간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기술가정과 교사가 되어 청소년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어 기술가정과 교사가 됐다고 한다.

그가 전공과목을 바꾸면서까지 청소년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팬티 바르게 개는 법>(공명 펴냄) 취지이자 내용이다.  

그때 제가 습득하기 시작한 기술과정 과목의 지식이 '이것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라는 힌트를 주었습니다. 기술가정 과목을 배우는 동안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우리 생활은 의식주와 가족문제를 비롯한 인간관계, 수입과 지출이라는 경제문제 등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며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균형을 잃으면 생활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생활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집니다. 반대로 말하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될 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고방식도 긍정적으로 변해 '해보자, 계속 해보는 거야'하는 의욕이 샘솟는 것입니다.

저는 자기 생활을 스스로 정돈하는 힘, 그것을 생활력이라고 부릅니다. 이 생활력이 있으면 매일 기분 좋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소한 일에는 쉽게 굴복하거나 꺾이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생활을 꾸려온 자신감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낳기 때문입니다. 기술가정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생활력을 몸에 익히라는 것입니다.-<팬티 바르게 개는 법>에서.

1958년생인 그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기술·가정이 남녀 공통과목이 아니어서 여학생들이 가정과 가사(조리, 의복 등)를 배울 때 남학생들은 기술(토목, 판금, 전기 등)을 배웠다고 한다. 또, 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가정수업을 할 때 남학생들은 체육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가정 혹은 가사에 대해 배운 것이 전혀 없었다. 배운 것이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예 인식조차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 대학시절 자취 생활 덕분에 빨래나 간단한 요리는 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간단한 집안일과 육아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가사와 육아 관련 아는 것이 거의 없어 집안일을 웬만큼 할 수 있기까지 오래 걸렸단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직접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하려면 최소한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팬티 바르게 개는 법> 책표지.
 <팬티 바르게 개는 법> 책표지.
ⓒ 공명

관련사진보기

여하간, 집안 일이 몸에 배자 가사가 재미있어지고, 그 때문에 생활전반이 점점 더 즐거워졌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 관련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지만 여러 가지 지식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경우가 많았을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일상의 필요, 즉 '살림이나 육아를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만으로 기술가정 과목을 공부하게 된다.

이런 그가 기술가정 교사가 되자고 마음먹게 된 것은 학교에서 접하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란다. 그때까지 걸핏하면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적이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거나 무기력한 아이들을 보며 '그들에게 고등학생다운 활기와 활력이 없는 것은 개개인의 의욕과 근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학생들 역시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아무리 해도 잘되지 않아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팬티 바르게 개는 법>(공명 펴냄)은 이렇게 나온 책이다. 저자는 자신만의 진짜 삶을 사는데 첫번째로 필요한 것은 자신의 할 일, 즉 누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기, 아침밥 챙겨먹기 등처럼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생활력'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당연하고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다 큰 아이들을 아침마다 깨워야 하는 집이 많다. 아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20대 중반이 넘었는데도 부모로부터 용돈을 타 쓰거나, 세탁기나 전기밥솥 사용법을 몰라 혼자만의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음은 우리의 공공연한 화제가 된지 오래이니 말이다. 

▲생활 자립: 스스로 일어날 것. 밥 짓기는 기본. 가끔씩 밥을 지어 식구들에게 대접해 볼 것.
▲경제적 자립: 돈의 사용법, 노동의 권리, 소비자의 소양, 워크라이프 밸런스.
▲정신적 자립: 불쾌해도 화내지 않고 대응할 것.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하는 사람이 될 것. 다양한 팬티 바르게 개는 법을 수용할 수 있을 것.
▲성적 자립: DV프리. 동등한 연애관계를 만들어 갈 것.-<팬티 바르게 개는 법>에서.

저자가 '하루하루의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생활력과 자립심을 갖춘 청소년'이 되려면, 그리하여 바람직한 어른으로 성장해 즐겁고 멋진 진짜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하다고 제시하는 4대 자립을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 일어나야 할 필요성을, 아침밥이 소중한 이유를 설명한다. 나아가 자신의 옷을 빨아본다거나 밥을 해 가족들에게 대접해본다거나, 자신의 도시락 정도는 단 한번만이라도 싸 볼 것을,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 죽을 끓여줘 볼 것 등을 제안하면서 손쉽게 죽 끓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다양한 팬티 개는 법도, 효율적으로 빨래 너는 법도 알려준다.

사소하다면 정말 사소한 것들이라고 생각해 간과하기 쉬운 것들이다. 그런데 해보지 않으면 무얼 하겠다는 생각도 못하게 되고, 막상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교과서적인 이야기 혹은 모범답안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라서, 위에서 언급한 과정을 거쳐 기술가정교사가 된 저자가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나눴던 것들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이들의 이야기나 태도 등이 적극 반영되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훨씬 설득력 있다. 그리고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많다.

사실 팬티 개는 법은 정답이 없다.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접거나 하면 된다. 그런데 책속 사례자 A씨는 맞벌이 하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팬티를 접어주지 못해 고민한다. 또 다른 사례자 B씨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빨래를 널어주지 못하고 주름지게 널어 말려 아내와 작은 다툼들을 하며 마음이 불편하다. 딴에는 열심히 하는데 아내가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사례자의 이런 사정은 사실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사소하다면 매우 사소한 것이다. 그런데 아내나 남편이 각자 자신의 팬티 개는 방법과 빨래 너는 방법만을,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거나 상대에게 원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상대방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생활이, 나아가 삶이 달라진다.

아마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람들과의 삐걱거리는 관계는 이처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이다. 여하간 분명한 것은 노력하면 다양하게, 그리고 바르게 팬티 개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팬티 바르게 개는 법>은 일상에서 자신의 일은 자기가 하는 것부터 시작, 바람직한 인간관계형성과 사회활동에 필요한 것까지 조언한다.

청소년기와 20대에 제대로 자립하지 못해 결혼한 이후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아니 점점 늘고 있으며 그 의존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 주변에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청소년들의 제대로의 자립을 바라며 이 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팬티 바르게 개는 법> (미나미노 다다하루 씀. 안윤선 옮김) | 공명 | 2014-12-24 | 12,000원



팬티 바르게 개는 법 - 어른을 꿈꾸는 15세의 자립 수업

미나미노 다다하루 지음, 안윤선 옮김, 공명(2014)


태그:#자립심, #청소년문제, #미나미노 다다하루, #기술가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