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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표지
 <사랑의 기초> 표지
ⓒ 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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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17년 만의 연애소설 <사랑의 기초>를 읽었다.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들었다. 결혼은 과연 사랑을 지키기에 합리적인 제도일까. 소설 속 주인공 벤이 보여주는 절망과 좌절, 불안과 두려움이 결혼의 필연적인 결과라면 왜 우리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성인들은 인생에서 낭만적 사랑과 성애, 그리고 가족이란 요소가 양립할 수 없다고 믿었다. 혹은 적어도 각각의 측면이 독립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 이후, 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의 특정 사회계급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하나의 새로운 이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즉, 결혼을 하고 난 다음부터 부부는 자식을 위해서 상대를 참아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깊이 사랑하며 또한 서로를 계속 욕망해야 한다는 놀라운 생각이 등장한 것이다. (…) 이 새로운 이상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욕구들이 단 한 사람의 도움만 있으면 일거에 해소될 수도 있다는 강력한 이념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결혼의 문제점은 18세기 후반 부유했던 유럽 국가들의 부르주아가 만든 결혼 제도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생활, 이 두 가치를 한 명의 배우자를 통해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사상이 바로 이때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통념으로는 사랑과 가정 생활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다.

우리는 결혼을 앞에두고 막연히 꿈을 꾼다. 계속 너를 욕망할 수 있기를.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작년에 아내인 엘로이즈와 여섯 번의 관계만을 가졌을 뿐이다. 벤에게는 턱없이 모자란 횟수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섹스를 구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벤 자신도 아내와의 섹스를 무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섹스와 가정생활은 정말이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대부분의 행동영역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자질은 섹스할 때 요구되는 자질과는 심하게 상충한다." 즉, 밤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남녀의 자질은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 밥을 먹이고, 세탁을 누가 할 것인지 다투고, 어제 왜 고지서 납입을 하지 않았느냐며 싸우는 등 집안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 요구되는 자질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항공기 조종이나 외과수술의 임무를 앞둔 사람이 월트 휘트먼의 시 <풀잎>을 읽어 그 서정성과 주술적 웅장함에 빠져드는 쪽을 선택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낭만적인 사랑은 정녕 결혼의 충분조건일까. 사랑과 조건 중 결혼을 더 오래 존속시켜주는 것은 무엇일까. 끝없는 질문이 오고 가지만 대부분 우리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조건을 보고 결혼했어도 그 조건 때문에 상대를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만 더 행복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사랑의 짧은 유통기한 때문에 낭만적 사랑보다는 비슷한 생활 양식을 공유할 수 잇는 파트너와 만나게 되기를 꿈꾸는 나 같은 사람도 물론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결혼이란 비슷한 미래를 그리는 건전한 이성을 만나 서로 돕고 사는 것이다. 이건 마치 언젠가는 끝이 날 사랑에 대한 보험 같은 것이다. 사랑하던 연인 사이에서 사랑이 사라졌을 경우 더 이상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서로를 남녀가 아닌 인간으로서 평가하게 될 그 날을 위해 나는 그 사람을 남자로서뿐만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좋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벤 역시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던 것이다. 하지만 침대 위에서 요구되는 자질과 가정 생활에서 요구되는 자질이 달랐기에 결국 벤은 밤마다 인터넷 앞으로 달려오는 신세가 됐다.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그의 욕구는 분출될 필요가 있었다. 언제 삐끗할지 모를 사업에 대한 압박, 아빠로서 아이를 잘 대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 좋은 남편이 아니라는 죄책감. 그는 이 모든 감정들을 해소시켜야만 했다.

그가 스물다섯 살 베키와 잠자리를 갖은 이유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깨닫는다.  

결혼에 대해 엘로이즈가 품었던 기대 가운데 어떤 것들이 지나치게 순진했듯이, 외도에 대한 벤의 소망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생활이 안기는 실망에 대한 해결책으로 외도를 생각하는 것은 결혼이 우리 존재 자체의 실망에 답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만큼이나 미성숙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벤은 가정생활에 충실하고 싶어 외도를 했다. 18세기 중반 이전의 생활상을 따라 낭만적 사랑과 결혼 생활을 분리해 보려던 거였다. 하지만 외도를 통해 그가 얻게 된 것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뿐이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18세기 부르주아가 세상에 뿌리내린 결혼제도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가갔다. 

벤은 정말이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결혼생활은 유지하고 싶지만 그 속에서 점점 메말라가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가. 

알랭 드 보통은 꽤 낭만적인 결론으로 이 난국을 해결한다. 그는 벤을 꽤 괜찮은 남자의 길로 밀어 넣는다. 벤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아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아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위해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이 모든 상황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용기, 자기 자신보다 결혼 생활 그 자체를 더 배려하겠다는 용기 말이다. 사랑의 기초는 용기라는 말일까.

한때 그는 용기를 다르게 상상했다. 어렸을 적 그는 용을 잡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행군을 그렸었다. 지금 그는 새로운 그림을 가졌다.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죄에 오염되었다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끌어안고 이를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우리에게 용기가 있기 때문인 거라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하고 있었다. 세계를 구하는 히어로도 아닌, 세상을 호령하는 빅 브라더도 아닌, 모든 일에 능숙하고 삶에 초연한 능력자도 아닌 우리 대부분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삶을 포기하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나는 이를 받아들임으로서 얻게 된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받아들이는 일,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결혼 생활,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사랑의 기초>(알랭 드 보통/톨/2012년 05월 09일/1만1천원)



사랑의 기초 세트 - 전2권

알랭 드 보통.정이현 지음, 문학동네(2013)


태그:#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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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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