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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꽤 길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여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해외? 아니면 국내? 약간 고민하고 있을 때 뇌리를 스치는 곳이 있었다. 제주도. 헌데 춘절을 맞아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온단다. 북적거리고 요란스러운 것은 딱 질색인데... 하지만 '관광 가는 게 아니라 공부하러 가잖아'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탐라'는 탐구의 대상이다. 알면 알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게 제주다. 그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제주도와 여자다. 제주도를 삼다도(三多島)라 한다.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 많다는 뜻이다. 화산섬이니까 돌 많고, 섬이니까 바람이 많은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여자가 많냐?'는 것이다.

내가 제주를 찾은 이유

연휴를 맞아 이착륙이 많아서인지 비행운이 공항 하늘을 덮었다.
▲ 제주공항 연휴를 맞아 이착륙이 많아서인지 비행운이 공항 하늘을 덮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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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엔 상주하는 인구도 여자가 많지만, 제주를 찾는 여행객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혼자, 또는 둘이서 셋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섹시 아이콘' 이효리도 제주로 오지 않았는가. 제주도에 무슨 마력이 있어서 여자들이 더 자주 찾을까? 그것이 알고 싶었다.

목적지를 제주로 정하고 베이스캠프를 서귀포로 잡았다. 식사는 호텔에서 한끼만 먹고 TV에 방영된 집이라고 너줄너줄 붙여놓은 집은 토스. 관광객이 도때기 시장처럼 북적이는 곳도 패스. 현지인들이 찾아가는 숨은 맛집을 찾아서 먹기로 했다.

설 이튿날 낮 12시 15분. 김포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시에는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승무원의 멘트가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 공항에 내린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공항은 역시 중국인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다.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예약해둔 '백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나타 2.0 LPG. 계기판을 들여다보니 18만km나 뛰었다. 자가용으로 봉사했다면 은퇴할 차령(車齡)이다. 바꿔 달라 하려다가 '까서넘(까칠한 서울넘)'이랄까 봐 그냥 핸들을 잡았다. 공항을 빠져나와 516도로로 접어들었다. 소나 타는 차인 줄 알았는데 사람을 태우고 고개를 잘도 오른다.

바닷가
▲ 제주 바닷가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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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도로는 썩 유쾌하지 않은 도로다. 쿠데타를 혁명으로 치장하기 위한 꼼수가 숨어있다. 더구나 북한 따라 하기 냄새까지 난다. 여의도의 516광장은 명칭이 바뀌었는데 516도로는 그대로다. 일부 제주도민의 의견이란다. 나쁜 역사도 역사라나 뭐라나.

1960년대 일본 관광객을 소화하기 위해 중문 관광단지를 개발한 군사 정부는 제주에서 서귀포까지 횡단도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허나 자금도 없고 장비도 없었다. 군대를 동원할 수밖에... 박정희의 명을 받아 총대를 맨 사람이 현역 해군 소장이었다. 여기까지는 좋다. 왜 도로 이름이 '516'이냐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이 '나쁜 역사'라고 인식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고고씽'.

중 산간 지대를 지나 고도가 높아지니 도로변에 1m 정도의 눈이 쌓여있다. 1100고지에 도착했다. 눈 세상이다. 사람들이 눈을 만끽하고 있지만 차를 세우지도 않고 직행했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귀포 K호텔에 도착했다. 다소 낡았지만 제주에 오면 묵는 숙소라 내 집처럼 친숙하다. 8층에 짐을 풀고 창밖을 바라보니 바다 풍경이 환상적이다. 차 한 잔 하고 곧바로 나왔다. 파도가 일렁이는 갯바위에 서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바닷바람을 폐부 깊숙이 흡입한 후 주차장에 돌아와 핸들을 잡았다. 오늘 알현(?)할 녀석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한접시에 24만원
▲ 다금바리 회 한접시에 24만원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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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명가'에 도착했다. 외관은 허름한 횟집이지만 4대째 가업을 잇는 회의 명가다. 예약을 알리니 바다가 보이는 좋은 자리로 안내한다. 첫 번째 나온 녀석은 옥돔이다. 단독메뉴로 시키면 5만 원은 너끈할 실한 놈이다. 그 녀석과 함께 한라산 소주 한잔. 캬, '죽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의 메인 메뉴가 나왔다. 그 이름도 귀하신 몸. 다금바리.

한입 입에 넣으니 두툼한 식감과 함께 다금바리 특유의 바리향이 입속 가득 퍼진다. 좋다. 바로 이 맛이야. 서울에서 이 맛을 보려면 최소 30, 많으면 50만 원까지도 한다. 헌데, 이곳에선 24만 원이다. 싸다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바보가 따로 없다고? 하하.

관광지나 육지에선  능성어와 자바리를 다금바리로 속여 파는 사람들도 있다. 진짜배기 횟감을 제철에 현지에서 먹는 맛. 가히 예술이다. 어느 정도 먹고 나니까 주인장이 간, 눈, 뽈살, 껍질 등 모듬을 가지고 나와 미(味)를 즐기는 방법을 설명한다. 친절도 하셔라.

아무튼 거하게 먹고 숙소로 돌아오려니 운전이 문제다. 모슬포에서 서귀포까지 만만치 않은 거리다. 설마는 금물. 대리 운전이 뱃속 편하다. 핸들을 맡기고 숙소에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2FZJ)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제주, #다금바리회, #진미명가, #서귀포, #모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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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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