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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부끄러우면서도 아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두 집이 마주 보는 15층짜리 아파트입니다. 어느 날부터 현관문을 나오면 무언가 썩는 냄새가 났습니다. 처음 그 냄새를 맡은 날은 어느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문밖에 놓아두었나 했습니다. 조금 더 심해진 둘째 날은 쓰레기 썩는 줄도 모르고 산다고 혼자 싫은 소리도 했습니다. 셋째 날은 더 이상 못 참겠다 싶어서 바쁜 출근길에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냄새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거라 여겨 아래층 어느 집일 거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1층에 다다를 때까지 냄새나는 물건을 놓아둔 집이 없는 겁니다. 냄새는 계속 나는데 말이지요. 더 알아보려니 출근길이 급했고, 그 정도 냄새면 다른 입주민들도 관심을 갖고 알아보려니 싶은 생각으로 그대로 출근했습니다.

명절... 혼자 살던 어르신 사체 발견 기사에 '화들짝'

소화전 아래 쟁반에 덮여있는 코다리
▲ 쟁반에 덮인 코다리 소화전 아래 쟁반에 덮여있는 코다리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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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인터넷을 하다 명절에 혼자 살던 노인이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지요. 그때 정신이 퍼뜩 나는 겁니다. 사체 썩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으니 그것이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혹시 그 냄새가 아닌가 해서 말이지요. 우리 집 아래로 어르신 혼자 사시는 집이 없는지 헤아려 보았습니다.

2층에 70대 할머니 한 분이 사셨고, 5층에는 암으로 투병 중인 50대 부부가 살았습니다. 두 집이 가장 유력하다 싶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그런 사건사고가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아랫집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가벼운 인사정도 하고 사는 것으로 '무관심한건 아니다'고 생각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지요.

그래도 속단하긴 이르다 싶어, 퇴근길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보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출입구로 들어서니, 아침과 비슷한 수준으로 냄새가 났습니다. 확신이 들더군요. 경비실로 뛰어갔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다른 입주민들은 그런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그날 낮에 2층 할머니와 5층 여자를 보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으니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원인을 찾아야 했기에, "너무 예민하게 그러는 거 아니냐"는 경비 아저씨를 설득해서 함께 계단을 올랐습니다.

아저씨도 냄새가 난다며 "이렇게 지독한데 아무 말도 없는 게 이상하다"고 했지요. 올라가면서 아저씨는, "이 집은 아침에 보았고, 저 집은 언제 보았고" 하시는데 얼마나 고맙던지요. 그냥 지나치며 인사하는 정도였는데 아저씨가 입주민들에 대해 이렇게 파악하고 계시다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소화전 아래 놓아두었던 코다리 때문에 사체 썩는 냄새로 오해했다.
▲ 악취의 정체 코다리 소화전 아래 놓아두었던 코다리 때문에 사체 썩는 냄새로 오해했다.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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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을 거쳐 위로 올라가니 냄새가 더 심해졌습니다. 아저씨와 동시에 냄새의 근원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지요. 양쪽 다 3대가 사는 집이라 예상에 전혀 넣지 않았습니다. 아저씨도 우리 바로 윗집 사람들은 며칠 보지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다시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우리 윗집은 평소 생활 소음이 조금 있는 집이었는데, 며칠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 생각도 났습니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예상대로 아무 기척이 없는 겁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어떻게 하나"하면서 우왕좌왕하는데, 소화전 밑에 쟁반으로 덮어놓은 그릇이 보였습니다.

열어보니 코다리(반건조 명태)가 썩어가고 있더군요. 바로 그 냄새였습니다. 아저씨와 번갈아 코다리 냄새를 맡아보며 안심했습니다. 그 악취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음날에야 식구 모두 여행을 다녀왔다고, 건조한다고 내어놓은 후 깜빡했다며 미안해하는 윗층 분을 뵈었지요.

혼자 사는 어르신 파악 안 되는 시스템... 빨리 개선되기를

그 일이 있고 나니 궁금했습니다. 그런 사건사고가 이곳에서 나지 말란 법이 없지요. 그래서 관리사무소에 단지 안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에 대한 파악이 되고 있느냐 물었습니다.

대답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입주 초기에 작성된 자료가 있지만, 그 후 변동되는 사항에 대하여는 입주민들이 신고 의무가 없기 때문에 파악이 어렵답니다. 그나마 경비 아저씨들이 입주민들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시는데, 그마저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하는 겁니다.

전날 저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준 경비 아저씨가 새삼 고마웠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파악이 안 된다면, 동사무소에서는 알고 있겠지 싶어 연락해보았습니다.

"기초 노령연금 대상자분들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파악이 되지만, 혼자 사신다고 해서 모두 어려우신 건 아니기 때문에 그 외의 어르신 세대는 파악이 어렵습니다."

이런 답변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시스템을 너무 믿고 있었나 봅니다. 종종 그런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서, 이미 대안이 마련되었는줄 알았습니다. 개인주택은 그렇다고 해도 관리사무소가 있는 아파트는 조금만 노력하면 파악하는 데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방법을 문의했지요. 한 달에 한 번 하는 입주자 대표 회의 때 나와서 안건으로 제시하고, 협의가 되면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최종 답변을 관리소장에게 들었습니다. 이번 달 대표회의는 지나갔고 3월 대표회의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안건이 협의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무언가 시작은 해야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다른 분들도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사고가 난 뒤 후회하고 안타까워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태그:#혼자사는 노인, #코다리, #경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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