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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사 마당에 있는 충혼비. 이곳 출신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 추모시를 썼다
 삼일사 마당에 있는 충혼비. 이곳 출신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 추모시를 썼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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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19년 4월 4일, 울산 중구 병영지역에서 일어난 '울산 병영 삼일독립만세운동' 당시 일제는 총칼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애국지사들을 진압했다. 이 때문에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던 애국지사 4명이 숨지고 22명(3명은 중상)은 일제의 손에 끌려가 투옥됐다(관련기사 : 일제를 놀라게 한 '만세 운동'을 아시나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삼일만세운동은 교통과 통신이 미비했던 당시 사정으로 한 달이 지난 4월 4일에야 한반도 동쪽 끝 울산 병영까지 번졌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이들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해 순차적으로 훈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짧게는 10년, 길게는 24년이 지나도록 훈장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한 지사들이 있어 울산 중구청과 병영삼일사봉제회(회장 김기환)가 이들의 후손 찾기에 나섰다.

독립운동 공로 인정받아 훈장 추서된 애국지사, 후손 나타나지 않아

삼일사 사당에 모셔진 선열들의 위패와 영정
 삼일사 사당에 모셔진 선열들의 위패와 영정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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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에게 훈장이 전달되지 못한 이는 당시 일제의 총탄에 순국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엄준 애국지사와, 투옥된 후 태형에 처해져 2005년 훈장(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던 최원득 애국지사. 이처럼 애국지사마다 훈장 추서의 시기가 다른 것은 순국한 지사에게 먼저 훈장이 추서되고 징역형, 태형의 순으로 훈·포장이 추서됐기 때문이다.

일제는 당시 구속된 22명에게 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워 17명에게는 6개월~2년의 징역형을, 최 지사 등 5명에게는 태형 90도(대)를 선고했다. 태형은 조선 시대 곤장과 비슷한 형으로, 형틀에 사지를 묶고 대나무로 때리는 것을 말한다. 

이후 이 지역 청년들을 중심으로 병영삼일사봉제회(아래 봉제회)가 꾸려졌고, 울산 중구청은 병영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26명의 애국지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87년 중구 동동에 삼일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봉제회와 함께 매년 제를 지내고 있다.

봉제회에 따르면 최원득 애국지사는 당시 19세의 나이로 병영 3·1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최 지사의 아호는 '송제'이며 본관은 경주로, 1900년 12월 11일 태어나 1930년 2월 4일 30살의 나이로 작고했다. 본적은 당시 주소로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서리 276번지(현 중구 서동)이고, 가족 관계는 아버지 최용만, 어머니 박수임의 장남이며, 부인 박난이 여사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봉제회 김기환 회장은 27일 "병영만세운동으로 건국 훈장 애국장 등의 독립 유공자 국가 포상이 이뤄져 자손들에게 전달됐지만, 지난 1991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엄준 지사와, 2005년 대통령 표창에 추서된 최원득 지사만이 유일하게 후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중구청의 협조를 얻어 등본을 뒤지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대부분이 작고한 상태라 후손을 찾을 길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애국지사가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며 "갑오개혁 때 야만적 행위라며 폐지됐다 일제 때 부활한 태형은 얼마나 매가 매운지 이 형을 받고 장독으로 10년도 못 살고 돌아가신 분이 있을 정도라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봉제회는 국가보훈처 울산보훈지청에 최 지사의 후손을 대신해 훈장을 수령하려 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유족회 차원에서 보훈청에 대신 훈장을 수령하려 했지만 친·인척이 아닌 이상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반드시 그분의 후손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울산 병영 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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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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