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농구스타 데릭 로즈(26·시카고 불스)가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오른다. 지난 25일 시카고 구단은 로즈가 오른쪽 무릎 통증을 호소해 정밀검진을 실시한 결과, 반월판 연골이 파열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며 로즈의 시즌 아웃을 선언했다.

로즈는 지난 2012년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된 이래 벌써 세 번째로 큰 부상을 겪게 됐다. 2013년에는 오른 무릎 반월판 연골이 찢어졌고 올시즌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또다시 같은 부위에 부상이 재발한 것이다. 모두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시즌아웃급' 부상이었다.

로즈는 한때 마이클 조던 이후 시카고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꼽혔다. 2011년에는 리그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며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케빈 듀란트(오클라호마) 등과 함께 NBA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꼽혔다. 하지만 신은 로즈에게 축복받은 재능을 하사하고도 그 재능을 지켜나갈 수 있는 건강은 허락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에서도 로즈의 재기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설사 부상을 털고 돌아온다고 해도 예전같은 기량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한두 번도 아니고 3년 연속으로 잇달아 큰 부상을 당하고도 완벽하게 재기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로즈같이 돌파와 운동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형의 선수라면 더욱 그렇다.

한 시대를 뒤흔들 엄청난 재능을 지니고도 로즈처럼 부상으로 인하여 '못다 핀 장미'가 된 경우는 드물지 않다. '포스트 조던'으로 불리우며 1990년대를 풍미했던 앤퍼니 하더웨이와 그랜트 힐이 대표적인 경우다. 훤칠한 외모와 탁월한 기량, 풍부한 스타성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은 두 선수는 2000년대 초반들어 연이은 부상으로 예전의 기량을 잃고 몰락했다. 힐은 그나마 선수생활 후반기에 피닉스 선즈에서 재기했지만 하더웨이는 끝내 예전의 위용을 되찾지 못했다. 최근에는 야오밍이나 그렉 오든 등이 거듭되는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빛을 잃은 케이스다.

현주엽, 김승현, 방성윤도 부상에 발목... 건강관리의 중요성

한국농구에서도 부상이 빼앗아간 비운의 천재들을 여럿 찾을 수 있다. 현주엽과 김승현, 방성윤 등이다. '매직 히포'로 불리우며 1990년대 서장훈과 한국농구의 쌍두마차를 이룬 현주엽은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2009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프로 통산 397경기에 나서 평균 13.3득점, 4.1리바운드, 5.2 어시스트를 기록한 현주엽은 빅맨임에도 다재다능한 면모로 스카티 피펜이나 르브론 제임스에 비견되는 한국형 '포인트 포워드'로 꼽혔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이 득세한 프로농구에서 빅맨으로는 키가 작고, 외곽선수가 되기에는 스피드가 떨어지는 어정쩡함에 발목이 잡힌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시절의 화려한 우승 경력과 달리 프로무대에서는 단 한번도 우승이나 개인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플레이오프 진출도 고작 3회에 불과할 만큼 성적 복이 없었다. 현주엽은 올해부터 MBC 스포츠플러스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천재 가드'로 불리운 김승현은 2007년 허리 부상이 악화되며 모든 것을 잃었다. 김승현은 오리온스에서 2001년 데뷔 첫해부터 통합우승을 이끌며 신인왕과 어시스트왕, MVP를 싹쓸이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약 7년간 리그 최고의 가드로 군림했지만 부상으로 운동 능력을 잃은 이후의 몰락 과정은 더욱 극적이었다.

소속 구단과 이면계약 이행을 둘러싼 법정 공방으로 임의탈퇴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고, 훗날 복귀해 삼성을 이적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이미 전성기의 기량을 잃은 뒤라 예전의 모습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많은 이들은 통산 3.423개의 어시스트(역대 4위)를 기록한 김승현의 은퇴를 끝으로 KBL의 창의적인 정통 포인트가드 계보는 맥이 끊겼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승현도 지난해 은퇴 이후 현재 스카이스포츠에서 농구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빅뱅' 방성윤은 한국판 데릭 로즈라고 불릴 만하다. 토종 선수로는 드물게 탄탄한 체격 조건과 슈팅 능력을 겸비한 방성윤은 이충희-문경은의 계보를 이을 차세대 슈터로 각광 받으며 SK에서 뛴 6시즌간 평균 16점, 4.1리바운드, 2.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2년 부산 AG에서 대학생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병역면제 혜택도 받았다. 한국 선수로는 드물게 NBA 진출까지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방성윤은 프로 농구사상 가장 끊임 없이 부상에 시달린 불운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데뷔 이후 6년간 방성윤이 출전한 경기수는 고작 133경기(플레이오프 포함)에 불과하다. 풀타임은 고사하고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시즌이 바로 프로 데뷔 첫해인 2007~2008시즌(37경기)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빈번하게 부상에 시달렸는가를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방성윤은 어느 한 군데 고질적인 부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경기중 발목-허리-무릎-허벅지-목 등 거의 신체 전 부위에 돌아가면서 큰 부상을 당하는 불운에 시달렸다.

거듭되는 부상을 이기지 못한 방성윤은 결국 2011년 6월, 29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은퇴해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선수생활 마지막 해에는 FA 자격을 얻어 이적을 모색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주가가 떨어지며 타 구단들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몸값이 크게 삭감되어 SK와 재계약했지만 또다시 부상으로 5경기 출전에 그치며 의욕을 잃고 끝내 은퇴를 선언했다.

방성윤은 농구계를 떠난 이후에도 각종 사건사고에 휩쓸리는 등 평탄하지 않은 삶을 보냈다. 방성윤은 토종 선수로는 드물게 경기당 20점 이상을 자유자재로 기록하며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에이스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타로 꼽혔기에 팬들의 아쉬움도 컸다.

농구팬들은 아직도 '이 선수들이 건강하게 선수생활을 이어갔더라면..'하는 가정을 떠올리기도 한다. 동시대에 다시 보기 힘든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이었기에 더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김주성이나 주희정, 양동근처럼 이들과 동시대에 활약했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현역에서 꾸준히 장수하고 있는 스타들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흔히 스포츠계에서는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그 어떤 재능도 건강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교훈과 함께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농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