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팬들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야생마' 이상훈(두산 베어스 투수코치)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사실 전성기 시절 해외진출로 4년이나 자리를 비웠고 예상보다 조금 일찍 은퇴를 했기 때문에 이상훈의 통산 성적(71승98세이브)은 그의 이름에 비해 썩 화려한 편이 못 된다.

하지만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에 뛰어 올라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위력적인 강속구를 뿌려대던 이상훈의 카리스마는 LG팬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상훈이 2004년 SK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며 팀을 떠난 후 LG는 '리틀 이상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이상훈에 버금가는 투수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2003년 11승을 올리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승호는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입단 당시 5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던 서승화는 프로 10년 동안 단 2승을 거두고 쓸쓸히 은퇴했다(이상훈 이후 가장 성공한 좌완 봉중근은 이상훈과 비슷한 타입의 투수로 분류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던 2014년, LG에 이상훈을 연상시키는 젊은 좌완 투수가 등장했다. 빠른 공과 강인한 인상, 그리고 정면승부를 즐기는 공격적인 투구내용까지 이상훈의 현역 시절을 쏙 빼닮았다. 프로 2년 차를 맞는 좌완 유망주 임지섭이 그 주인공이다.

데뷔전에서 선발승 따낸 역대 4번째 고졸선수

 LG 임지섭

LG 임지섭 ⓒ 연합뉴스


경남 창원시에서 태어난 임지섭은 고교 2학년때까지 마산 용마고에 다니다가 제주고로 전학했다. 제주고에서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지며 초고교급 좌완으로 떠올랐던 임지섭이 전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오늘 날 NC다이노스 선수가 될 수도 있었다.

2014년 KBO리그의 신인 드래프트는 신생팀 kt위즈에게 2장의 특별 우선 지명권이 주어졌다. 임지섭의 지명이 유력시되기도 했지만 kt는 개성고의 좌완 심재민과 북일고의 우완 유희운을 선택했고 임지섭은 LG의 1차지명을 받게 됐다(계약금 2억5000만 원).

사실 임지섭은 공이 빠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던 유망주였지만 배짱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임지섭은 프로 첫 시즌을 앞두고 "수 년간 명맥이 끊어진 '괴물신인'이 되고 싶다"며 당당하게 각오를 밝혔다.

임지섭은 3KIA타이거즈와의 시범경기 마지막 등판에서 선발로 나와 4.1이닝 1실점의 호투로 김기태 감독(KIA)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3월30일 두산과의 개막 2번째 경기에서 깜짝 선발로 등판했다.

상대는 2년 연속 10승을 기록했던 두산의 우완 에이스 노경은. 하지만 임지섭은 만원관중 앞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시속 149km의 강속구를 뿌리며 두산의 강타선을 5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틀어 막았다.

2006년의 류현진(LA다저스) 이후 8년 만에 탄생한 고졸 신인 투수의 데뷔전 선발승. 언론과 팬들은 LG 마운드의 전설 이상훈이 재림한 듯 임지섭이라는 '괴물신인'의 등장에 열광했다. 성급한 사람들은 임지섭을 류현진의 루키 시즌과 비교하기도 했다.

요코하마전 2이닝 6실점 난타, 예방주사는 따끔했다

하지만 임지섭도 역시 경험이 부족한 신인 투수에 불과했다. 선발 투수로서 단조로운 구질과 불안한 제구력은 금방 상대 타자들에게 노출됐고 임지섭은 4월에 등판한 3경기에서 2패만을 기록하며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LG는 양상문 감독 부임 후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싸움을 벌였고 2군에 있는 유망주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결국 임지섭은 강렬한 데뷔전의 기억을 뒤로 한 채 1승2패 평균자책점 6.75의 아쉬운 성적으로 루키 시즌을 마감했다.

임지섭은 2015 시즌에도 선발 투수에 도전한다. 우규민(고관절), 류제국(무릎)의 수술과 신정락의 입대(사회복무요원)로 선발진에 큰 구멍이 생긴 LG는 장진용, 임정우, 임지섭, 신동훈 등에게 선발 경쟁을 시키고 있다.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이라는 이점이 있는 임지섭이 경쟁자들에 비해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임지섭은 선발 경쟁을 위한 모의고사라 할 수 있는 26일 요코하마Dena 배이스타즈와의 연습경기에서 따끔한 예방주사를 맞았다. LG의 선발 투수로 나선 임지섭은 홈런 2방을 얻어 맞으며 4피안타 2볼넷 6실점으로 부진했다. 단 2이닝을 던졌음에도 투구수는 무려 49개에 달했다. 선발 경쟁자인 임정우가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3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것과 비교되는 투구내용이었다.

물론 연습경기에서 난타를 당했다고 해서 임지섭이 기죽을 필요는 없다. 커다란 덩치(190cm 94kg)와 빠른 공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임지섭은 이제 막 프로 2년째를 맞는 만19세의 어린 투수에 불과하다. 작년에 던진 이닝이 많지 않아 여전히 신인왕 자격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구력 불안이 노출돼 한 달 만에 시즌을 조기 마감한 임지섭이 일본의 정교한 타자들을 상대로 고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날의 부진을 자양분으로 삼아 더 좋은 투수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임지섭은 LG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를 대표하는 좌완투수로 성장할 수 있는 재목이다. LG에 오랜만에 등장한 강속구 좌완 임지섭이 부진을 이겨내고 올 시즌 LG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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