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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의 출제 난이도 조절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급선무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상황이 종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청년 실업률은 늘어나고, 학력과 직업에 따른 차별은 여전히 사회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실이 입시에 대한 청소년과 학부모의 기대를 과도하게 높이고 있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려면, 입시문제를 넘어 공교육 전반을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수능을 자격고사로 전환할 것은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해외의 대학입시를 살펴 본 결과, 수능을 치르는 나라도 흔하지 않거니와 이를 치르는 미국과 비교해도 한국과 같이 수능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영어만 절대평가? 황우여 장관, 현실 인식 부족하다) 이러한 입시문제를 판단하기에 앞서, 수능을 전면 자격고사로 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장·단기 로드맵을 설정하면서 공교육 전반을 정상화하는 과정이 곧 입시문제도 해결하는 토대가 된다고 보여진다.
▲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위한 필요조건 장·단기 로드맵을 설정하면서 공교육 전반을 정상화하는 과정이 곧 입시문제도 해결하는 토대가 된다고 보여진다.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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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분배구조를 바로잡고 대학서열화 및 성적관리를 개선해야

지난 10일, 수학 절대평가 관련 국회 특위 토론회에서 성균관대에서 수년간 입학처장을 맡았던 김윤배 교수는 "입시정책이 너무 자주 바뀐 것이 일하기 가장 힘든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학교현장의 견해를 듣지 않는 비민주적 교육행정, 교육행정가들의 전문성 결핍, 교육 외부에서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찾지 못하는 근시안적 안목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교육 바깥에는 자녀가 장차 직업차별, 학력차별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학부모의 사회적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열망이 '서열화된 대학구조'와 맞물려 과열경쟁을 빚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상위권 대학 졸업생들도 취업이 용이하지 않지만, 여전히 이들 대학을 졸업하면 직업차별 구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아주 높다. 높은 연봉, 사회적 인지도, 복지혜택, 외제 자가용과 여가활동 등이 보장되는 이 '좁은 문'은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단 경쟁 열기를 줄여야 한다. 고졸 취업을 활성화하고, 대학 진학 일변도의 고교 졸업생을 분산해야 한다."

위의 견해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한 대학생의 주장이었다. 한국사회의 왜곡된 분배구조와 입시문제를 결부시키는 안목이었다.

대학서열화 구조 이외에 대학의 학사관리가 허술한 것도 문제를 조장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입학이 곧 졸업'을 의미한다. 세계 어느 선진국도 이렇게 수월하게, 곧 '허술하게', 대학을 졸업시키지 않는다. 대학이 재정문제 때문에 학점 미달 학생들을 끌어안고 갈 경우에는 정부가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입학이 수월하고, 여기에 대학편입 시험을 폐지하면 고교생들의 입시경쟁이 그만큼 완화될 것이다. 그리고 대학졸업이 어렵게 되면 대학진학을 쉽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대열에 웬만해서는 가세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고졸취업을 정상화하고 사회적 대우를 획기적으로 높이면 한국 특유의 '비장한' 입시문화도 완화될 것이다.

서열화된 대학구조도 방치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즉 대학을 특성화함으로써 대학의 육성학과가 서울 지방을 막론하고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한다. 이런 요인들 역시 입시정책 외부를 점하고 있는 모순들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하버드가 제1의 대학이라고 해도 모든 학과가 1급이 아니며, 이 대학 졸업생들이 정·재계를 독점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국도 대학에서 시급히 실력있는 학생들만 배출하고, 기업은 간판이 아니라 실력(경력 포함)으로 선발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연관관계를 거쳐 수능문제의 파행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캐나다의 고교생들이 IB, AP에서 일반학급 학생들에 비해 낮게 평가받았을 때 이를 감수하는 것도, 프랑스의 대학생들이 중도에 탈락했을 때 무겁지 않은 정서 속에서 재기하는 것도 모두 사회적 직업교육과 취업이라는 안전망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왜곡된 분배문제를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내신관리의 공정성을 담보하고 그 내용을 풍부하게 해야

수능을 5등급제의 절대평가 즉 자격고사로 하려면 우선 내신성적에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도 서울대의 경우 정원의 75%를 학교생활기록부(내신성적)를 반영하고 있지만 수능 최저등급이 최종 당락을 결정하는 요인이기 때문에 수능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이들 대학은 당연히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아야 합격가능성이 높다.

2015학년도 수능 응시인원이 59만4835명을 예로 들 경우, 그리고 5등급제를 도입해 1등급 10%, 2등급 20%, 3등급 40%, 4등급 20%, 5등급 10%라고 가정하자. 1등급은 5만9480명이 된다. 2015학년도 서울대 입학정원이 3135명, 연세대 서울캠퍼스 3372명, 고려대 안암캠퍼스 3767명. 이 세 대학의 정원을 합치면 1만174명이다. 산술적으로 약 6만 명 중에서 1만 명을 가려내야 한다.

현재의 교육환경을 그대로 둔 채 5등급제만 도입하면 경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먼저 대학특성화(평준화)를 통해 적성별 우수학과를 중심으로, 상위권 대학 지망생을 전국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내신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우선 교사들에 대해 현재와 같이 맹목적으로 경쟁논리를 들이대는 교원평가제를 현저히 완화해야 한다. 그래야 교사들이 단순한 교과 성적 올리기에서 벗어나 소신껏 다양한 학습탐구 과제들을 부여하고, 학생들을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내신 성적을 다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정지원 경북대 교수가 2013년 작성한 <학교평가교육정책> 논문에서 스웨덴과 한국의 교원평가제를 비교한 사례가 있다. 이를 보면 스웨덴은 교원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분석대상, 정부와 학교경영의 질, 평가방식 자체, 학교 교육력의 강점과 약점 등도 공개하면서 교사의 능력평정 결과를 공개한다. 이는 교사들 개인능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까지 점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와 같은 세심함이 거의 없이 단지 일제고사의 성적만 공개, 비교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교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

또 간과할 수 없는 것이 권위주의적 지시와 간섭을 속성으로 하는 현 '교장승진제'이다. 혁신학교 및 일부 특성화고교에서는 예외일 수 있지만 수업-상담을 멀리하고 교장실에서 감독, 결재만 하는 전근대적인 교장들이 포진하고 있는 한 교사들의 다양한 교육적 실험은 기대할 수 없다.

학생회와 교사협의체에 기초하여 교장의 민주적 권위가 행사되는 '교장선출공모제'가 실현될 때 비로소 다양한 체험, 탐방, 동아리, 탐구활동이 살아나고 이것이 내신을 풍부하게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어디에도 한국과 같은 '제왕적 교장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부의 위상 또한 혁신되어야 한다. 예컨대 교육부의 일정한 공간에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를 비치하여 교사와 학생들이 수시로 다녀갈 정도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학교생활기록부가 불필요하게 복잡하여 교사들이 작성하는 데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다. 이 또한 교사들의 현장정서를 멀리한 탁상행정의 산물이다.

게다가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하여 교사들이 행정잡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때 수업 및 평가자료 준비, 학생들의 과제물 처리, 교과협의 등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의 행정부장제 즉 교무부장, 연구부장 등과 같은 조직도 교과부장제로 전면 개편하면서 행정업무를 교장-교감-행정직원 혹은 행정전담 교사가 처리하는 형태로 변화를 줘야 한다.

또한 교사들에게 수업전담용 교과교실을 제공해줘야 하며 그 옆에 작은 탐구공간 정도는 마련해줘야 수업-상담-과제평가 등을 내실 있게 할 수 있다. 현재의 교사교육 역시 문제이다. 지나치게 관념적이어서 현장문제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교원양성과정을 학교현장 친화적으로 대폭 개선해야 한다.

다소 시기 차이가 있으나, 1991년 <뉴스위크> 보도를 참조하여 독일 사례를 살펴보자. 복수전공 필수, 교생실습 2년, 실습기간 25차례의 장학사와의 협의, 소논문 작성, 수차례 이상 세미나 참여 등이 독일 교원양성의 골자이다. 교사들에 대해 사회보장세 면제 등의 혜택을 준다. 한국이 벤치마킹할 만하다.

위와 같은 교육계의 '절대악'을 방치하면서 개혁과제의 외부(外部)를 살피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교육개혁은 늘 겉돌았다. 학생부의 내용이 학생별로 차별화되면 대학은 굳이 변별력 확보를 위해 별도의 본고사 형태의 시험을 부과할 필요가 없게 된다. 즉 공교육 정상화가 입시문제 해결에 연결되는 것이 이 지점이다. 캐나다의 사례가 전형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셋째, 사회불평등을 EBS 교재-수능연계로 풀려는 것은 안이한 발상

흔히 'EBS 교재와 연계한 수능 강의'가 농어촌 취약계층의 계층상승을 돕고 사교육의 증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EBS가 교재로 장사하는 수익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EBS가 문제풀이 중심의 수능의 흐름에 편승하여 사고력과 상상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보인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EBS 수능강의를 통해 계층이동(social mobility)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안이한 발상이다. 이는 분배를 위한 국가 정치력의 작동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나 시도해볼 수 있는 방안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스 피케티도 강조했듯이, 세습되는 사적(私的) 자본의 질주를 막는 제도적 장치로서 세금제도를 정비하고, 기업 임원들이 턱없이 높게 받는 연봉제와 노동소득의 불평등 등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는가?

교육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역사, 철학, 문학 등의 고전읽기와 탐구학습을 골자로 한 학습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교과평가도 이를 중심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연간 수업시수를 대폭 줄여 다양한 비교과활동을 허용하는 한편, 취약지역에서의 근무를 격려하는 교원인사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무상교육과 문화시설 확충, 지역균형 선발의 확대 등도 필요하다.

한국은 수능이라는 전국단위의 획일화된 표준 시험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사교육이 번성하기 쉬운 터전이 마련됐다. 그래서 고교를 평준화하면서도, 다양한 교육과정의 편성을 가능케 함으로써 과외시장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사회이동은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그 가능성이 낮아진다 Wilkinson and Pickett (2009)
▲ 사회이동과 불평등 지수의 관계 사회이동은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그 가능성이 낮아진다 Wilkinson and Pickett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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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래프를 보면 계층격차가 가장 심한 미국은 사회이동 기회가 가장 적다. 불평등이 사회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종합적인 분배정책이 강구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수능의 전면 절대평가안을 제기하면서 교육 안팎에서 그 요건을 살펴보았다. 요컨대 수능에서 학생들에게 '촘촘하게' 등수를 매기면서 절박함을 안기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다. 영어를 제외하고 수능을 현재와 같이 9등급제의 상대평가제로 유지하는 것은 사교육 부담을 거의 그대로 존치하는 것이 되며, 공교육 정상화를 그만큼 게을리 하게 만든다.

내신 성적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수능 자격고사화'의 조건이 되는데, 내신 곧 학생부를 '풍요롭게' 만들려면 교육환경과 제도를 손질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교육 정상화'가 수능 자격고사화 나아가 수능폐지의 논의를 가능케 하는 선행요건이라 할 수 있다.


태그:#수능, 자격고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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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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