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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부 여·야가 수능의 난이도 조절 및 출제상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오는 3월에 개선안이 발표될 예정이란다. 그러나 현 수능 제도는 난이도와 출제오류라는 기술적 문제 이외에 더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현재의 수능은 아이들을 '시험기계'로 만들면서 상상력의 발달을 저해한다. 국가경쟁력을 오히려 좀먹고 있다. 동시에 공교육의 발전을 해치고, 엄청난 사교육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2014년 8월 24일자 미국 <월 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의하면, 한국의 사교육비는 2013년 한화로 19조6000억 원 가량 된다. 이 기사는 한국의 사교육 열기를 '군비경쟁'에 비유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황우여 현 교육부장관은 지난 25일 "영어를 절대평가로 하는 것은 단호하게 옳다고 생각한다"며, 영어과목 절대평가화 의지를 재천명했다. 그러나 영어 과목 하나만 절대평가하겠다는 개정은, 그의 현실인식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수능 전면 절대평가' 이전에 '수학의 절대평가' 필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수능관련 교육문제도 ‘현장에서 답을 찾지 않는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면서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 수능 수학 절대평가 도입 방안 정책토론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수능관련 교육문제도 ‘현장에서 답을 찾지 않는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면서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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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수능특위 주최로 '수학 절대평가 방안'에 대해 토론이 있었다. 이 토론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영어에 이어 수학도 절대평가가 된다면 수능 전체가 절대평가가 되면서 사실상 '자격고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토론회는, 수능공부 전반이 그러하듯 수학도 공식암기와 문제풀이라는 단일 구도로 전락했음을 재확인했다. 수학 본래의 목적은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암기와 문제풀이는 사고력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전직교사는, 변별력과 서열화에 집착한 결과 수학의 성취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상하고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여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서 수학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내신자료를 전형자료로 쓸 것을 주장했다. 내신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게 곧 공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란다. 동시에 수능 전반을 절대평가로 바꾸자는 간접 제안도 있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일부 대학생의 반론이 있었지만, 적어도 수능 전체 절대평가안은 대체로 동의하는 토론자가 많았다. 그러면 해외는 어떠할까?

외국의 입시제도는 3가지 유형으로 정리 할 수 있다. 즉 수능, 논술형 졸업고사, 내신성적의 공통점은 모두 자격고사로서 전면적인 대학 별도의 시험은 없다.

이규환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의 <서방 선진국의 교육개혁과 대학입학제도> 논문에 따르면, 미국은 일부 명문 4년제 사립대학교와 제1급의 주립대학에서 SAT시험을 전형자료로 중시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고교 내신 성적을 주요 자료로 쓰면서, 창의성과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해 인성시험이나 에세이 작성을 부과하는 곳이 있다.

에세이는 특정 주제 혹은 제시문을 주고, 범위를 좁힌 상태에서 심층적으로 작성하게 한다. 이 때 SAT 시험은 참고자료로서만 쓰이거나 아예 고려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 1월 9일 자 기사 참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과 프랑스는 논술고사를 치른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eate), 독일의 아비투어(Abitur) 모두 장문의 글쓰기 방식이다. 독일은 한국으로 볼 때의 고등학교 2~3학년 과정의 기초 코스 20과목, 중점 코스 8개 과목의 성적자료(내신성적)가 아비투어 성적과 함께 전형자료로 쓰인다.

이규환 교수에 따르면, 예외도 있어서 아비투어를 치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1986년부터 의학, 치의학, 수의학 같은 전공학과에서 입학정원제(Numerus Klausus)를 실시하는데, 이 때 모든 지원자가 별도의 선발고사에 응한다.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므로 정원내로 학생을 선발하여 질높은 수업을 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또한 프랑스와 독일 모두 대입자격시험에서 구술시험이 있다. 시험의 출제와 채점이 모두 교사들에 의해 이뤄지며, 교수는 시험의 위원장으로서만 역할을 할 뿐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어떻게 교육을 하는가, 프랑스는? 그런데 한국은>의 저자 정기수 전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바칼로레아의 점수는 대학에서 중도 탈락할 경우에도 따라 다닌다. 즉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퇴출되면 BAC+1, 2년 후라면 BAC+2를 이력서에 담고 직업교육을 받아 재기하게 된다.

내신 성적 신뢰 높이면 별도의 대입시험 필요 없다

캐나다는 수능 없이 내신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즉석에서 인터넷으로 글 주제를 주고 에세이 작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학생 개인의 전국 단위 서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왜 그런가? 고교 내신이 학생들의 다양하고 차별화된 능력을 보다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학이 굳이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박진동·김수정의 <캐나다 교육이야기>를 보면, 한창 입시를 준비할 시기에 캐나다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한국에서라면 가장 바빠야 할 고등학교 2~3학년 때 캐나다 거주 한국교포의 자녀가 했던 교과-비교과 활동은 매우 다양하다. 피아노 및 사물놀이 레슨과 연주, 테니스 및 수영부 활동, 연극반 활동 등 실로 다양한 활동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위의 활동에 더해 영화 동아리, 학교 음악축제, 한가위축제 K-pop 경연대회, 친구 부모님의 수입 도매상에서 트레이드 쇼 준비를 돕고 판매도 하기, 토론 동아리에서 논쟁대결, 시의원 선거운동에서의 자원봉사, YMCA 활동 참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캐나다에서 내신의 교과 성적의 평균점수는 60점 정도를 철저하게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교사들이 학교-지역-전국단위로 합의한 결과이다. '60점'이라는 점수를 중심으로 출제 난이도가 조정된다. 학생에 대한 평가권이 보다 충분히 보장되고 있기 때문에, 근거 없는 칭찬이나 내신 부풀리기가 들어설 자리가 거의 없다.

대학 학점 선이수 프로그램인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와 AP(Advanced Placement) 과정을 이수하는 학급의 중하위권 학생들에 대해서는, 일반학급 학생들에 비해 '짜게' 학점을 준다. 간혹 AP과정의 낮은 점수대의 학생에 대해 소폭 '보정점수'를 줘서 불이익을 최소화하기도 한다. 설령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지라도 대학편입, 학점교류 등의 여건이 보다 더 잘 갖춰졌기 때문에 불만이 표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실력이 못 미치는데 특정 대학에 힘들게 들어간 들 중도에 탈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드물게 근거 없이 학부모에 의해 교사의 권리가 침해될 경우, 교육당국이 앞장서서 법적인 대응을 통해 교권을 보호한다. 교사들의 훈련이 현장 중심적이고 교사들 간의 교과 및 평가와 관련 의사소통이 보다 활발하다. 교사들이 한국처럼 행정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교과탐구에 전념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은 캐나다 교사들이 충분한 시간동안 학생에 대해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이 때문에 내신 성적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이규환 교수는 영국과 스웨덴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1951년에 GCE(General Certificate of Education) 시험이 처음 도입되었다. 이 시험은 프랑스와 유사하게 사회진출 또는 사회기관에 취업할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하는 자료로도 쓰일 만큼 중시된다.

시험결과는 난이도에 따라 한국과 같이 A형과 B형이 있는데 '보통수준' 성적은 5단계 A~E까지 등급화되고, '상급수준' 시험성적은 3단계 A~C까지 등급화 된다. 이 외에 '상급수준' 시험의 응시자들에게 추가적으로 1~2 개의 특별시험답안지(Special paper)가 배부되는데, 시험문제는 심층탐구를 요하는 것들이며, 평가는 "우수" 또는 "양호"로 구분되어 매겨진다.

1988년 입시개혁이 있었어도, 영국의 거의 모든 대학은 GCE 성적과 면접결과로 최종적인 대학이 가려진다. 그리고 한국과 같이 입시원서를 지망대학들에 내지 않고 '대학입학허가중앙위원회'(Universities Central Council on Admission)에서 일괄 접수받는다. 제 1지망에서 5지망까지 5개의 대학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기관이 입시를 통합관리 하면서 순차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정원확보의 어려움이나 과잉지원에 의해 상당수가 낙방하는 일이 없다.

스웨덴은 1972년 이후 국가가 주도하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완전히 폐지하고 대학에서는 고교 내신 성적만 갖고 입학을 허가하고 있다.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를 갖추면 된다. 통합고교에서 2년의 교육과정을 수료할 것, 고교 2년 과정 수료 정도의 스웨덴어 학력을 갖출 것 혹은 고교 2년 과정 수료의 영어 능력을 갖춰야할 것이 바로 이 요건들이다.

스웨덴의 고교 내신 성적은 5단계의 평점으로 표시되며 만점은 5.0이다. 또한 만 25세 이상이고 4년 이상의 노동경험이 있는 성인들도 특정한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고교 간 학력차가 극심하다면 내신을 신뢰할 수 없는 학교들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교육선진국 대부분이 한국의 특목고, 자사고 등과 같은 형태로 성적 우수생들을 별도로 모으기보다는 학교를 평준화시킨 상태에서 성적·재능 등으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급을 개설한다. 그 중 교과 실력면에서 개설된 대표적인 것이 IB, AP과정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고교의 내신 성적 일반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며, 그래서 별도의 대입시험에 대한 필요성이 감소한다.


태그:#해외 입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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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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