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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문에 자리를 잡은 한 사진사.
▲ "사진 촬영합니다" 학교 정문에 자리를 잡은 한 사진사.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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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는 앞머리를 잡으며 얼굴을 찌푸리지만, 셔터 소리가 들리자 환하게 웃는다. 색색의 꽃다발을 얼굴에 대는가 하면, 학사모를 쓴 곰 인형을 안고 카메라 앞에 선다.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있는 숙명여자대학교 학위수여식(졸업식) 풍경이다. 행사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인 오전 10시, 학생들은 학위복과 학사모를 미리 갖춰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를 든 가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살피는 사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긴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와 가방처럼 어깨에 멘 검은색 사진첩. 사진사들은 대부분 비슷한 모습이었다. 몇몇은 '사진'이라고 적힌 명찰을 달거나 모자를 쓰기도 했다. 수십 명의 사진사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꽃이나 스카프를 파는 상인보다 사진사의 수가 많아 보였다.

영업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학교를 상징하는 배경 앞에 자리를 편 사진사가 있는가 하면,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촬영을 권하는 사진사도 있었다. 방법이 어떻든, 촬영은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진사는 샘플 사진을 들고 학생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다가갔다. 하지만 10분도 채 되지 않아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가 사진을 찍는 학생들의 배경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은 개인 DSLR 카메라와 '셀카봉'으로... 

학생들이 '숙명'이라는 글씨 모양으로 다듬어진 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학위수료식 후 기념사진을 찍는 학생들 학생들이 '숙명'이라는 글씨 모양으로 다듬어진 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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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대부분 사진사에게 촬영을 맡기기보다 스마트폰과 개인 카메라를 사용했다. 심지어 사진사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네며 촬영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DSLR 카메라로 친구와 사진을 찍던 졸업생 강다예(25)씨는 "나쁜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굳이 돈을 들여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스마트폰이나 개인 카메라로 찍으면)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셀카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던 곽태희(24)씨는 "가족들과는 개인 DSLR 카메라로 찍고, 친구들끼리는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찍는다"고 말했다. 사진사에게 촬영을 맡기는 경우는 없느냐고 묻자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손님은 줄었지만, 사진사는 계속 생겨났다. 경쟁은 그대로였다. 주변 사진사조차 '베테랑'이라고 인정한 사진사 이광영(52, 남)씨는 "졸업시즌에 오는 사진사의 5분의 4 이상이 전문 사진사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포장마차나 간판 영업을 하다가 오는 사람들도 있고, 사진 전공이 아닌 박사학위 소지자도 봤다고 했다.

이씨에게는 그래도 이날 손님이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줄서서, 세 명씩 번갈아가면서 찍어줬다"는 말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대화를 하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학위복을 입은 학생이 지나갈 때면 촬영을 권유했다. 샘플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스마트폰 배경화면도 졸업사진으로 바꿨다.

"포장마차나 간판 영업 하다 오는 사람들도..."

어깨에 카메라와 앨범을 멘 사진사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 휴대전화로 대신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 어깨에 카메라와 앨범을 멘 사진사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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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런 상황이에요."

이씨는 휴대전화로 사진관의 위기를 다룬 뉴스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신도 월세를 감당하는 것이 어려워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졸업식이나 관광지 촬영을 다닌다고 했다. 지금 하는 일을 '밥벌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사진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였다.

"사진이 좋아요. 사진에 미쳤다고 그러지 사람들이."

10여 년 전 취미로 시작한 것이 직업이 돼 사진을 찍고 있다는 이선자(54, 여)씨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일도 일이지만, 재미있어요. 앵글로 예쁜 모델이라든가, 그런 게 쏙쏙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희열을 느껴요. '잘 찍히겠다, 예쁘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아 내가 이걸 못 찍으면 못 먹고 산다' 이런 생각이 들면 일을 못해요. 그래서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죠."

이날도 큰 기대를 하고 오지 않았지만, 먼저 촬영을 부탁한 한 학생 덕분에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 학생이 마음이 참 예쁜 거예요. 여자 사진사여서 좋고, 잘 해주니까 좋다고. '이따 만나면 먹을 거라도 챙겨드릴게요' 하는데 마음이…."

전날에는 대학 졸업식 두 곳을 돌았는데, 비슷한 또래의 학부모들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고 했다. 추운 날씨를 견디며 점심식사도 거를 때가 많지만, 가끔 따뜻한 기억이 남는다.

"월세 감당 안 돼 스튜디오 정리... 그래도 사진이 좋아"

한 사진사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진사 한 사진사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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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한참이나 학교에 머물며 사진을 찍던 학생들과 가족들이 대부분 빠져나갔다. 몇몇 사진사들은 짐을 꾸렸고, 나머지는 3시에 있을 대학원 학위수여식에 온 손님을 기다렸다. 한가한 시간, 사진사들은 두세 명씩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많이 했느냐(찍었느냐)?"고 묻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광영씨는 한 중국인 유학생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며 딸을 기다리던 이들이었다. 그 사이에 꽃도 사두었다. 하지만 학생이 와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학생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 가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들의 긴 대화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지만, 이씨가 카메라를 드는 대신 무언가를 종이에 적는 것을 보아 예약을 해두는 것 같았다.

오후 5시. 길 건너편 제2캠퍼스에서 진행된 대학원 학위수여식이 마무리됐다. 다시 찾은 학교에는 사진사들이 없었다. 이광영씨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아까 이씨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보통 엄마 아빠가 찍자고 하는데 자녀들이 싫다고 해요. 나중에 후회해요. 사진 한 장 없으면. 엄마 아빠가 가지고 있는 사진이니까."

중국인 유학생이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을까 궁금해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한 사진사가 샘플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 사진 샘플을 들고 이동하는 사진사 한 사진사가 샘플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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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졸업식, #학위수료식,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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