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청년들은 주차장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30분을 견뎠다. 백화점 주차요원 아르바이트인 그들에게 'VIP' 손님의 명령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 벌어진 소위 '백화점 모녀 사건'이 우리 사회 청년들의 인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하면 과장일까. 차디찬 주차장 바닥에 나란히 꿇어앉은 CCTV 속 청년들의 모습은 분명 상징적이었다.

인권에 대한 도전은 이제 청년들에게 일상이 됐다. 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그 사람의 인격까지 샀다고 착각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천박한 노동권 개념도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 사회 안에서 청년 노동의 위상을 이해하지 않고 이런 현실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청년 논객'으로 유명한 한윤형씨는 2013년 저작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중산층은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통해 자산을 축적했고, 약해진 기업의 경쟁력을 신규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들의 임금을 낮추면서 보충해왔다.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추는 체제를 운용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체제를 지지해왔던 중산층 자신들의 자녀조차 월급으론 독립을 꿈꾸지 못하게 된 '멋진 신세계'다."

이 세계는 청년에 대한 착취를 자양분으로 돌아간다. 지난 기간 한국 사회가 방조해온 '폭탄 돌리기'식(거품은 언젠가 꺼진다) 부동산 부양 정책과 허술한 복지제도, 불안정한 노동시장 덕분에 갓 사회로 나온 청년들은 가장 만만한 '을'이 됐다.

높은 주거비와 빚이 된 등록금을 지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서성이는 모습은 오늘날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이 세계에서 청년들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다. '갑질' 논란이 된 모녀는 VIP(Very Important Person)가 아니었노라고 백화점 측에서 해명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손님은 아르바이트 청년보다 '중요한 사람'이다. 누구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기에 스스로 무릎을 꿇기로 한 이들의 선택은 자발적이라기보다 강압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혀를 찼다. '청년들의 무릎 꿇음'이 꽤나 보기 싫었던지,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계속됐다. 일부는 백화점 모녀에 대한 인신공격을 가했고, 한 교수는 '청년들의 기백 없음'을 탓했다. 청년이라면 으레 부당한 인권 침해에 항거하기 위해 하루치 일당쯤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이 사건은 모녀에 대한 삿대질로 끝낼 일도, 청년들의 '의식 개혁'으로 해결할 일도 아니다. 제아무리 용감한 청년이더라도 청년 착취를 원동력으로 하는 구조에서는 주어진 역할대로 묵묵히 착취를 당하는 수밖에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청년값'을 높여 청년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외국 청년들이 그리 당당하게 굴 수 있는 이유는 매달 국가에서 통장에 넣어주는 용돈과 주거보조금, 수업료 감면, 실업수당 등 청년들을 배려한 사회안전망 덕분이다. 바닥에 떨어진 '청년값'은 정부, 기업은 물론 사회가 나서서 회복해야 한다.

'갑질' 모녀와 '패기 없는 청년'에 대한 비난의 삿대질은 현 구조를 영속시킨 이들에게 먼저 향해야 한다. '갑질'이 보기 싫으면 먼저 청년들의 몸값을 높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혜연씨는 현재 인권연대 청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갑질, #주차요원, #청년
댓글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