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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구 달성습지에 봄이 왔다.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달성습지의 2010년 5월 경의 모습이다.
 서대구 달성습지에 봄이 왔다.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달성습지의 2010년 5월 경의 모습이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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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님, 설은 잘 쇠셨는지요? 고향 진해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시지요? 이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도로건설을 하려니 어려움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래도 귀 공사의 노고 덕분에 도로사정도 많이 좋아졌고, 시민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고향까지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할 일이지요.

그래서인가요. 이제 한국의 도로도 닦일 만큼 닦였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도로공사의 경영이념에서도 일견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고 새로운 세상을 넓혀가는 빠르고 안전한 길"에 "환경"까지 고려한 "아름다운 길"을 추구하는 그 모습에서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반드시 보존해야 할 곳은 보존하면서 개발하는 게 순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국도로공사의 대구4차순환도로공사 참여에 대해 한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빚은 천혜의 자연습지, 달성습지

달성습지의 깃대종인 맹꽁이와 흑두루미의 모습이다. 이처럼 달성습지에는 멸종위기종 맹꽁이와 흑두루미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식물들이 공존하며 살아간다.
 달성습지의 깃대종인 맹꽁이와 흑두루미의 모습이다. 이처럼 달성습지에는 멸종위기종 맹꽁이와 흑두루미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식물들이 공존하며 살아간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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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습지의 겨울. 물억새 장관을 이루고 있는 달성습지의 모습이 아름답다.
 달성습지의 겨울. 물억새 장관을 이루고 있는 달성습지의 모습이 아름답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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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국내 최장 하천인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빚어놓은 천혜의 자연습지이자 이 나라 최대 내륙습지 중 하나인 달성습지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서대구 달성습지는 인근 성서공단의 조성과 4대강사업의 영향으로 그 원형의 아름다움이 일부 훼손되긴 했지만, 지금도 그 면적이 8㎢에 이르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습지입니다. 어떤 자연학자는 인류의 유산으로 길이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달성습지가 원형을 회복해도 부족할 판에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바로 12.9㎞에 이르는 대구4차순환선 성서-지천 간 고속도로사업 때문입니다. 이미 기존에 잘 닦여있는 강변도로 안쪽으로 또 새로운 고속도로가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총 65㎞에 이르는 대구4차순환도로의 일부 구간인 성서-지천 간 도로가 고속도로사업으로 편입되면서 서대구 달성습지를 잠식하려고 합니다.

이미 몇 해 전 완공된 대구4차순환도로의 기 완공구간의 이용률이 현재 채 50%를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뻥튀기 교통수요 예측으로 시작된, 불필요한 도로사업이었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증명된 셈입니다. 이번 사업 또한 뻔히 적자가 예상되는 사업입니다. 그렇잖아도 적자 때문에 고민이 깊은 한국도로공사가 왜 이런 부담을 지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 이 도로 사업은 대구의 중요한 생태축인 앞산을 동서로 완전히 관통하고, 달성습지마저 내놓으라 하고 있습니다. 대구시민들의 분노를 살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도로공사가 왜 이런 비난의 한가운데 서야 합니까. 

환경 '3관왕' 달성습지에 웬 고속도로?

달성습지의 여름.
 달성습지의 여름.
ⓒ 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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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습지의 보리밭.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빗어놓은 하중도에 보리가 파종되어 멋지게 자라고 있다. 멀리 화원동산이 보인다
 달성습지의 보리밭.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빗어놓은 하중도에 보리가 파종되어 멋지게 자라고 있다. 멀리 화원동산이 보인다
ⓒ 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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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큰 강이 만나서 빚어낸 달성습지는 얕은 강물과 드넓은 모래톱이 아름다웠던 곳으로 야생동식물들의 산란 및 서식처 역할을 하는 야생의 공간입니다. 도심 바로 부근에 이런 야생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달성습지를 대표하는 주요 생물이라는 '깃대종'은 맹꽁이와 흑두루미입니다. 멸종위기종 맹꽁이와 역시 멸종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가 도래하는 곳이 달성습지란 말이지요. 멸종위기종들의 주된 서식처는 국내에 몇 안 남은 귀중한 공간입니다.

환경부에서는 이곳에 자연경관 1등급지역, 대구시는 야생동물식물보호구역, 습지보호지역이라는 표식을 달아 보호하고 있습니다. 무려 3관왕입니다. 3관왕 달성습지에 고속도로가 웬말입니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내뿜는 빛과 소음은 야생동물에게 흉기나 다를 바 없습니다. 대구시도 한쪽에서는 '탐방나루조성사업'이란 이름의 복원사업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고속도로라니 이 무슨 모순적인 행정입니까? 그 모순적 행정의 한가운데 한국도로공사가 끼어 있습니다.

세계적 유산 달성습지에 정말 필요한 것은 탁상머리 행정이 기계적으로 그어놓은 고속도로 노선이 아닙니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달성습지를 보존해나가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미 세계습지 목록에도 오른 바 있는 달성습지는 국가습지로 지정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김학송 사장님, 이 습지만은 양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구4차순환도로 노선도와 성서-지천간 고속도로 계획 노선도
 대구4차순환도로 노선도와 성서-지천간 고속도로 계획 노선도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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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습지의 중요성에 눈을 떠가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관리해나간다면 세계적인 자연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한 부가가치는 순천만 이상이 될 겁니다. 이런 곳에 고속도로라니요. 대구4차순환도로 성서-지천간 고속도로 계획은 지금이라도 반드시 철회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어렵다면 '달성습지 친구들'(달성습지를 지키고자 모인 대구시민들의 모임)이 백번 양보해서 제안한 대안노선으로라도 우회해주십시오. 그렇게라도 하면 적어도 달성습지의 주요 공간은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세계적인 습지 달성습지를 망칠지 아니면 달성습지를 지켜가며 개발을 할지 그 기로에 서 있습니다. '환경'까지 고려한 '아름다운 길'을 생각하는 한국도로공사의 선택은 자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학송 사장님, 서대구 달성습지만은 맹꽁이와 흑두루미를 위해 양보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정수근 시민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대구 달성습지를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대구4차순환도로의 생태파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조사활동을 하며 기사로 정리해 왔습니다.

이 기사는 <한겨레> '왜냐면'에 2월 26일자로 함께 실린 원고를 수정·보완한 내용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달성습지, #낙동강, #한국도로공사, #김학송, #금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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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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