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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아주 '웃픈' 실화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예산안에 무상 급식 예산을 넣지 않아 논란이 일던 와중, 국회에 느닷없이 400억 짜리 '쪽지 예산'이 들이닥친 것이다. '쪽지 예산'은 예산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민원성 사업이나 개발사업 등의 예산을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쪽지에 적어 청탁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들이민 400억짜리 '쪽지예산'은 황당하게도 '달 탐사' 예산이었다. 돈 없다고 아이들 점심도 못주겠다는 정부가 '달' 타령이라니.

이 달 탐사 쪽지 예산 사건은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국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 정부는 무상급식 예산은 슬쩍 빼놓고, 정부 입장에서 하고 싶으면 달이라도 가야겠다는 속내를 국민들에게 드러내고 말았다. 이러한 시각을 연장시켜본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재정 위기라는 것도, 세금을 국민의 입장에서 꼭 써야할 곳부터 쓴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이 문제시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삼성전자 등 재벌에 정부예산을 수천억 원씩 지원하는가 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토목예산을 늘리고, 선거개입 등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이른바 '특수활동비'를 수천억 원씩 예산으로 배정하고 있다. 수십조 원의 예산으로 들여오는 미국산 무기 구입비용도 빼놓을 수 없다. 3년차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가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관행을 개선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재벌에 연구개발 예산 몰아줘

방만하게 사용되는 예산 중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재벌에게 주어지는 어마어마한 보조금이다.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삼성이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2014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삼성이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연구개발 예산은 1조3339억 원, 1년에 약 1334억원에 달했다.

1년 내 벌어들인 돈 중 쓰지 않고 남겨둔 돈이 무려 160조 원(2014년 반기보고서 기준)이 넘는 삼성그룹이 무슨 이유로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삼성 다음으로는 현대차그룹이 연평균 650억 원, 한화는 547억 원, 엘지 482억 원 순으로 정부 예산을 받아갔다. 게다가 이들은 연구개발 투자액의 3~4%를 법인세 감면 혜택까지 받아 이중으로 이익을 보고 있다.

이처럼 거대재벌이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을 받아가는 사이,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전체 19조 원 규모의 연구개발 예산 중 고작 3조2983억 원, 약 17.5%만 지원받았을 뿐이다. 민생을 살리려면 전체 노동자의 대다수가 고용된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고,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창조경제'를 위해서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다양하고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터인데,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이러한 대기업 중심 지원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방만 예산은 바로 토목공사 예산이다. 박근혜 정부는 본래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 실패 여파로, 출범 첫해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토목공사 예산을 연평균 5.7%씩 줄여나가기로 공약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대국민약속을 저버리고 경기부양과 안전사회 건설을 핑계로 토목공사 예산을 증액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 내역을 보면 당초 정부안에서 24조4천억 원 규모였던 고속도로 등 국가 기간망 확충을 위한 SOC 투자 예산은 28조8천억 원으로 늘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에 편승해, 타당성이 의심받는 제방이나 '댐 건설', '예비수로 확충' 등 치수관련 토목공사를 안전사업 명목으로 대폭 확대했다. 이 사업들은 단군 이래 최대의 예산낭비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선행된 후에 진행돼야 하지만 안전이라는 핑계로 되살아나 또 다시 재벌 건설업체만 배를 불리게 되었다.

묻지마 '특수활동비'도 늘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특수활동비'에 있다. '특수활동비'는 예산회계에 대한 특례법에 근거하여 국회의 심의 없이 해당 기관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이 '특수활동비'는 대체로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의 예산편성에 사용되어 왔으며, 국정원 외에도 청와대를 비롯하여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기무사령부, 정보본부, 검찰과 경찰의 공안담당부서 등의 예산에 포함되어 있다. 특히 8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 예산은 전액이 '특수활동비'로 분류되어 대표적인 '묻지마' 예산으로 불린다.

국회의 심의에서 벗어난 '특수활동비'는 그동안 수차례 문제제기 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2011년 김준규 검찰총장의 '용돈 뿌리기' 사건이다.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특수활동비로 분류된 예산을 사용해 1억원 가량을 각각 지급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특수활동비가 사실상 검찰총장의 쌈짓돈, 비자금으로 전락한 셈이다.

최근 또 다시 '특수활동비'가 사회문제화 된 것은 바로 국정원의 대선 선거개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정원이 정보활동을 빙자하여 선거에 개입하고 국민여론을 조작했던 것이다. 그뿐인가.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등도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이러한 정부부처의 예산이 '특수활동비'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감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각 부처의 '특수활동비' 총액을 2014년보다 153억 원 더 늘려 무려 8820억 원으로 확정했다.

과도한 무기구매도 방만한 예산 운용의 주된 사례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많이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다. 또한 지난 5년간 한국이 수입한 무기의 80% 가량은 미국산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에서 무기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용삼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우리 군이 "많은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북한 하나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허덕이고 있다. 우리는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무기체계를 개발해야 했는데, 무슨 겉멋이 들었는지 첨단 무기도 아닌 최첨단 무기를 선호한다. 우리의 경제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데도 마구잡이로 해 놓고 뒷감당도 못한다"고 힐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우리 군은 당장 2015년부터 F35 전투기, 글로벌호크 정찰기, 패트리엇 미사일 등 총 10조 원 이상의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한다. 이 중 미국 록히트 마틴사가 생산하는 F35만 해도 모두 7조3418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F-35 기종은 미국에서 엔진 결함 등 성능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단 1대분의 예비엔진만 도입해 유지 운용을 위해서는 추가 지출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와 같은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무기도입 사업이 심각한 부정부패로 얼룩져있다는 사실이다. 2014년 한 해만 해도 무기 도입 과정에서의 각종 부정, 방산 비리, 국산 무기의 불량, 전력화 지연, 부품 돌려 막기, 과잉·중복 무기 구매가 연이어 적발되었고, 전 해군참모총장과 공군참모차장까지 비리로 구속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통영함이 구조작업에 출동조차 하지 못했던 사건도 납품비리로 얼룩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서민증세 백태

박근혜 정부는 이처럼 방만한 재정운용 관행을 그대로 둔 채 국민들을 상대로 "과잉복지로 나태해진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 대신 박근혜 정부는 부족해진 곳간을 채우기 위해 온갖 꼼수를 동원하여 서민증세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담뱃값 인상이다. 박근혜 정부는 겉으로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담배가격을 인상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세금 수입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가격을 모의실험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담뱃값 인상의 실제 목적이 세금 수입 확보에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는 주민세, 자동차세 등 온갖 서민 세금을 인상하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는 교통 과태료 및 범칙금을 2012년에 비해 1600억 원이나 증가한 7165억 원이나 걷었고, 음주소란, 인근소란, 무임승차 등에 대한 경범죄 범칙금을 50억2천800만 원이나 부과해, 2012년에 비해 5배나 더 걷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경찰이 자의적 법 집행으로 논란이 되는 경범죄 단속에 '올인'하는 것은 서민 주머니를 털어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른바 복지재원 논란의 본질은 박근혜 정부가 쓰고 싶은 예산은 한 푼도 줄이지 않은 채 서민들을 위한 복지예산을 줄여 재정난을 적당히 타개해 보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3년차를 맞이하는 박근혜 정부가 재정위기를 진정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벌에 대한 법인세 인상, 집부자, 주식부자들에 대한 재산세 부과, 각종 혜택 축소 등을 통해 부자증세를 실현하는 동시에 특수활동비나 무기도입비용 같은 잘못된 예산 지출관행을 과감히 혁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매거진 민권연대>mag.mkyd21.tistory.com에 공동게재합니다.



태그:#재정위기, #복지위기, #부자증세, #방만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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