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나란히 지휘봉을 잡은 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과 추승균 전주 KCC 감독대행이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였다. 삼성과 KCC는 이번 시즌 나란히 4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11승 39패로 공동 9위를 달리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현역 시절 설명이 필요없는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였다. KCC에서 1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추며 프로무대에서 세 번의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민 감독은 2007년 본의 아니게 삼성으로 이적한 후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추승균 감독대행은 KCC에 계속 남아 2회의 우승을 더 추가하며 프로농구 개인 최다우승(5회) 기록 보유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상민과 추승균은 은퇴 후 KCC에서 나란히 등번호가 영구 결번되는 영광도 누렸다. 하지만 돌고 도는 운명은 얄궂게도 올 시즌 두 사람을 꼴찌 전쟁의 한복판에서 만나게 했다.

꼴찌 전쟁의 한복판에서 마주친 두 레전드

작전 지시하는 이상민 감독 2014년 12월 25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 대 서울 삼성 경기. 삼성 이상민 감독이 차재영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작전 지시하는 이상민 감독 2014년 12월 25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 대 서울 삼성 경기. 삼성 이상민 감독이 차재영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 사람 모두 예상보다 빨리 사령탑의 자리에 올랐다. 이상민 감독은 전임 김동광 감독이 2013-2014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임하며 김상식 대행 체제를 거쳐 올 시즌부터 삼성의 정식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지 불과 2년만의 일이었다. 추승균 감독대행도 올 시즌 허재 감독이 역시 성적부진으로 하차하며 정규시즌을 불과 한 라운드 남겨놓은 가운데 지휘봉을 잡게 됐다.

언젠가 이상민과 추승균이 감독의 자리에 오를 것은 기정사실에 가까웠다. 그러나 전임자들이 일찍 물러나면서 충분히 준비할 시간도 갖추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은 감이 있었다. 이미 두 사령탑이 지휘봉을 잡기 전부터 망가질 대로 망가져있던 팀 전력과 분위기는 초보 사령탑들에게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했다.

물론 초보 감독이 이끄는 팀의 성적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문경은 서울 SK 감독이나 김영만 원주 동부 감독은 전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던 팀을 물려받아 강팀으로 탈바꿈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SK나 동부의 경우, 기본적으로 선수구성 자체가 나쁜 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직력과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가까웠다.

SK에서 현역 은퇴한 문경은 감독이나 동부에서 4년 이상 코치 생활을 거친 김영만 감독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팀의 시행착오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경험을 쌓고 자신만의 농구를 구상했다. 그러나 이상민 감독과 추승균 감독대행에게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고려할 틈도 없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삼성과 KCC는 올 시즌 구단 역사상 각종 불명예 기록의 중심에 놓여있다. 삼성은 올 시즌 최다인 11연패, KCC는 10연패(현재진행중)를 기록했다. 이번 시즌 유난히 중·하위권팀들의 장기연패가 빈번했던 프로농구에서도 두 자릿수 연패는 삼성과 KCC, 두 팀 뿐이다.

삼성은 올 시즌 10개 구단 중 최다인 78.3실점으로 리그 최악의 '자동문' 수비에 이름을 올렸다. KCC는 70.3득점으로 최악의 '빈공'을 기록 중이다. 삼성은 지난해 12월 23일 전자랜드전에서 46-100으로 참패하며 역대 최다점수 차, 최소득점 패배 기록을 경신하는 수모도 겪었다.

KCC는 현재 2006~2007시즌 기록했던 팀 최다연패와 타이를 기록 중인데 오는 26일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연패를 끊지 못한다면 새로운 불명예 신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1970~1980년대 실업 삼성-현대 시절부터 한국농구 최고의 명문 자리를 다투어온 라이벌 구단으로서 굴욕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최하위를 피하기 위한 두 팀의 분투... 끝까지 최선 다하기를

이겨보자 추승균 KCC 감독대행이 11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이겨보자 추승균 KCC 감독대행이 11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두 팀임에도 그들만의 '꼴찌 전쟁'은 제법 흥미롭게 진행 중이다. 어느 쪽이든 여기에서도 밀려서 올 시즌 꼴찌를 기록하는 팀은 구단 창단 이래 최악의 흑역사를 남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삼성의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은 김상준 전 감독이 이끌었던 2011-2012시즌 기록한 13승 41패(.241)다. 사실상 지금까지 이어지는 삼성 암흑시대의 출발선으로 일컬어진다. 4경기를 남겨둔 현재 삼성은 3승 이상을 거둬야 불명예 신기록 혹은 타이기록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의 남은 상대가 25일 오리온스-28일 모비스-3월 2일 LG-3월 5일 동부 등 모두 6강 진출이 확정된 상위권팀이라 대진운이 암울하다. 더구나 강팀들도 아직 순위권 싸움이 결정나지 않은 상황이라 정규시즌 막바지라고 해서 삼성전을 설렁설렁 넘어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KCC의 역대 최저성적은 허재 감독이 이끌었던 2012-2013시즌 기록한 13승 41패였다. 올 시즌까지 3년 연속 PO진출 실패로, 구단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최근 자진 사임한 허재 감독은 프로 출범 이후 'KCC 사령탑 사상 성적 부진으로 중도 사퇴한 최초의 감독'이라는 씁쓸한 오점을 남겼다. 설상가상으로 연패의 부담을 떠맡게 된 추승균 감독대행은 아직까지 사령탑으로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KCC의 남은 상대는 26일 전자랜드, 3월 1일 KT, 3월 3일 SK, 3월 5일 LG 순이다. 삼성보다는 약간 수월하지만 최근 KCC의 분위기를 보면 어느 팀을 상대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 KCC가 남은 4경기에서도 연패를 끊지 못하면 구단 역사상 단일시즌 최악의 승률과 최다연패 신기록을 수립한다. 프로농구 역사상 시즌 중 지휘봉을 맡은 감독대행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시즌을 마치는 희대의 진기록을 세울 수도 있다.

무엇보다 KCC의 유력한 차기감독 후보로 일컬어지는 추 대행이다. 아무리 갑작스럽게 맡은 지휘봉이라지만 이런 성적으로는 향후 정식 감독 선임의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삼성과 KCC, 모두 올 시즌이 리빌딩 기간이라는 데 위안을 삼고 있다. 올 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이상민 감독과 추승균 감독대행의 능력을 온전히 평가하기에는 무리라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에서라도 배울 경험은 있다. 이미 시즌 막바지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자칫 선수들이 집중력과 동기부여를 잃을 수 있는 지금 시점이야말로 감독의 리더십이 진정으로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승패와 순위를 떠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도 프로의 의무다. 팀의 미래 재건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이상민과 추승균, 두 지도자는 남은 시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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