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 SBS
14%가 넘는 최고 시청률, 그리고 이를 뛰어넘는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의 마지막 6개월을 신드롬으로 만들며 <펀치>는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박경수 작가는 <추적자>를 통해 정치권력, <황금의 제국>을 통해 재벌의 권력, <펀치>를 통해 검찰의 권력을 조명하며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부패한 권력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렸다. 현실의 잔혹한 이면을 그려냈던 <펀치>를 보며 그 권력의 귀추에 숨죽이던 시청자는 <펀치>의 종영 이후 어떤 선택으로 방향을 틀었을까. 제일 먼저 미소 지은 것은 그간 꾸준히 <펀치>를 추격하던 <빛나거나 미치거나>였다.
<풍문으로 들었소> <블러드>, 단점 돋보이는 후발주자들<펀치>를 선보였던 SBS는 후속작으로 상류 사회 갑들의 부조리한 삶을 다룬 <풍문으로 들었소>를 선보였다.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우리 사회 '갑'들의 이면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작품이다. 이미 JTBC <아내의 자격> <밀회>로 상류층의 부조리를 형상화했던 정성주, 안판석 콤비가 지상파로 진입해 지금까지의 작품 경향을 연장, 발전시켰다고 밝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안판석 PD 특유의 고상한 상류층의 분위기를 한껏 드러낸 화면 구성이 이번에는 너무 힘을 줬는지 뜻밖에도 어둡고 칙칙하다는 반응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정성주, 안판석 월드에 시청자가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영화 <표적>으로 가장 악랄한 악역의 면모를 보인 것과 달리, TV에서는 언제나 좋은 이미지로 등장했던 유준상의 연기나, 역시나 선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던 유호정의 연기는 아직 낯설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당찬 여고생 서봄 역의 고아성이 누구보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 데 반해, 사이코패스로 익숙한 이준의 어리바리한 고등학생 연기는 연기 면에서나, 캐릭터의 개연성 면에서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보다 한 주 일찍 선보인 KBS 2TV <블러드>는 더 쉽지 않은 처지다. 앞서 방송됐던 <뱀파이어 검사>나 미국 드라마를 통해 이미 익숙해진 뱀파이어라는 캐릭터가 대중적인 장르로 안착하기에는 아직 생경한 데다, 그 뱀파이어를 연기하는 안재현이나 여주인공 구혜선의 연기마저 시청자가 적응하기에는 생경하다.
박재범 작가는 전작 <굿닥터>를 통해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의사라는 직업과 매치시켜 '인간 승리'의 미담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뱀파이어와 의사의 만남은 어쩐지 갓을 쓰고 양복을 입은 듯 아직은 어색하다.
▲ KBS 2TV 월화드라마 <블러드>의 한 장면 ⓒ KBS
<빛나거나 미치거나>, 무난한 스토리와 연기로 가속 붙었다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야심차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 정성주, 안판석 콤비와 박재범 작가가 아직 전작의 정서조차 충분히 펼쳐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던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뜻밖에도 <펀치>의 빈자리를 여유 있게 차지했다.
고려 광종을 주인공으로 삼은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괴리가 있음에도 아들마저도 외면하는 왕실 권력 쟁탈전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지고지순한 남녀의 순애보를 그려내는 전형적인 사극으로 시청자를 맞아들인다. 또한 한껏 망가지는 코믹 연기와 운명적인 삶의 비극적 정서가 어색함 없는 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이미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통해 <추노>의 대길이 같은 연기를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한 장혁은 다시 한 번 그 캐릭터를 사극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그는 한껏 진지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코믹 캐릭터로 영역을 넓혔다. 예의 대길이 같은 웃음과 표정의 오글거림을 극복하고 나면, 성실한 장혁과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는 오연서에게 집중할 수 있다.
▲ MBC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한 장면 ⓒ MBC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제아무리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와 PD의 작품이라도 그것을 풀어가는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는 힘들다.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반 토막에 불과한 <풍문으로 들었소> <블러드>의 시청률이 버거워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첫 번째 대결이 마무리됐을 뿐이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이제 막 첫 단추를 풀었다. 여전히 정성주 작가의 시선은 예리하고, 안판석 PD의 구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블러드> 역시 박재범 작가의 장기인 병원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작품이 부지런히 선방하고 있는 <빛나거나 미치거나>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의 낯선 연기부터 친숙하게 만들 해법을 찾아야 할 듯하니 갈 길이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