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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부산시청과 서면 등 부산 시내 곳곳에 뿌려진 박근혜 대통령 풍자 전단지.
 지난달 12일 부산시청과 서면 등 부산 시내 곳곳에 뿌려진 박근혜 대통령 풍자 전단지.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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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24일 오후 4시 52분]

"동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23일 부산 북구에 사는 윤철면(45)씨 집 초인종이 울렸다. 영구 임대 기초수급자인 윤씨는 늘상 그렇듯 동사무소 직원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 것으로 생각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12명의 경찰이 그의 현관을 에워싸고 있었다.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와 연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찰관들이었다. 그들은 먼저 윤씨의 신원부터 물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전단에 대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제야 윤씨는 이토록 많은 경찰이 자신의 집으로 몰려온 이유를 알았다. 지난 12일 그는 부산의 번화가인 서면과 시청 인근에서 기모노를 입은 박 대통령이 그려진 전단 8천여 장을 뿌렸다. 인터넷상에 떠돌던 그림을 구해 인쇄한 것이었다.

전단에는 한자로 '경국지색'(傾國之色·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이라는 문구 등이 쓰여있었다. 전단이 뿌려지자 발끈한 곳은 새누리당이었다. 새누리당 부산시당은 14일 성명을 내고 "사법당국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고 국가원수 모독과 명예훼손에 대한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경찰은 바쁘게 움직였다. 경찰은 곧장 인지 수사에 착수해 윤씨를 찾아냈고, 이날 1시간 반동안의 압수수색에서 컴퓨터 파일과 휴대전화, USB, 전단 제작 영수증 등을 가져갔다. 경찰이 윤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명예훼손과 경범죄처벌법 위반,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 크게 3가지다. 명예훼손의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죄를 물을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이외에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는 윤씨가 오토바이를 불법 개조했다는 내용이고, 경범죄처벌법 위반은 광고물을 무단 살포했다는 혐의이다.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윤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어찌 사상을 검열당하고 믿음과 양심을 검열당하고 자유를 강제강금당한다는 이 기분... 매우 몹시 불편·불쾌 하다"고 밝혔다.

반면 경찰은 적법한 절차였음을 강조한다. 경찰은 "명예훼손은 처벌 의사가 없으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 수사까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압수수색을 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검찰이 영장을 청구했고, 적법하게 법원이 발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윤씨를 불러 전단을 뿌린 경위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 나가겠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경범죄처벌법 등의 혐의에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는 경찰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 비판 전단를 만들어 온 박성수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박씨는 그동안 전북과 대구 등지에서 박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제작·배포해왔다. 그 역시 전단 배포로 경찰의 소환 조사 통보를 받았다.

박씨는 2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기껏해야 쓰레기 무단 투기 정도에 그치는 범죄에 경찰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수사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시민들을 겁먹게 해 전단을 뿌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경찰의 수사를 의아해하고 있다. 법무법인 민심의 변영철 변호사는 "고소가 있은 뒤에야 수사를 하던 통상적인 명예훼손 수사와 달리 경미한 사안에도 경찰이 이례적이고 신속한 수사를 하고 있다"면서 "과잉대응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같은 내용이 퍼지자 누리꾼 ㄴ씨는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을 위한 압수수색이라, 그런데 쓰레기 무단 투기는 구청이 하는 일 아닌가요"라고 경찰 수사를 비꼬았다. 다른 이용자 ㄷ씨는 "압수한 컴퓨터 자료에서 혹시나 '북한 지지' 발언 같은 것 하나라도 있으면 '공안사범'으로 몰아 가려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태그:#박근혜,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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