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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바고 시내를 걷는 탁발승들의 붉은 행렬.
▲ 미얀마 거리의 탁발승 미얀마 바고 시내를 걷는 탁발승들의 붉은 행렬.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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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거리에서 주술처럼 울려 퍼지는 팔리어 경전 속에는 이런 은유가 있다.

'쇠에서 나온 녹이 그 쇠를 먹는다.'

팔리어(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가 속화된 말. 부처는 지식인들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대신 민중의 언어인 팔리어로 가르쳤다.)로 기록했던 초기 경전인 <법구경>에 나온 말이다. 나의 욕망, 방종이 몸과 마음을 녹슬게 한다는 경구다. 사단법인 하얀 코끼리(이사장 영담 스님) 자원봉사단이 만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눈동자가 무질서한 거리와 겹쳐질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떠올렸다. 매연이 자욱한 거리를 맨발로 걷는 탁발승 행렬,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지속가능할까? 나에겐 물음표였다.

[거리의 탁발승] 맨발의 붉은 행렬

우선 '섬'(SOME)에 올렸던 10초 동영상을 보아주기 바란다.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날(2일) 아침, 바고의 게스트하우스 앞 도로에서 슬리퍼를 신고 뛰면서 찍은 모습이다.

▲ 거리의 탁발승 미얀마 바고 거리를 맨발로 다니는 탁발승 행렬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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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애~앵~.

새벽을 깨우는 명징한 울림. 일찍 일어나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온 나는 운판(雲板)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다시 게스트하우스의 방문을 열었다. 한 직원이 큰 사발을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고 나도 뛰었다. 그는 맨 앞에 선 탁발승에게 사발을 보였고, 뒤따라오는 스님이 항아리 모양의 발우 뚜껑을 열자 음식을 보시했다. 전날에도 보았던 붉은 가사를 걸친 수행승들의 '걸식 행렬'이다.

운판 소리는 10여초 간격으로 이어졌다. 삼각 구름처럼 생긴 운판의 밑모서리 부분을 나무망치로 치자 손가락에 걸린 줄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면서 공기 중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운판을 치는 승려가 앞장섰고, 100여명이 줄을 이었다. 하나같이 발우를 가슴에 안았다. 몇몇 젊은 승려들은 공책을 펴고 경전을 암송하면서 빠르게 걸었고, 뒤쪽의 동자승들은 거의 뛰었다. 

무질서한 거리에서도 붉은 행렬은 존중받았다. 곳곳에서 주민들이 접시와 사발을 들고 나왔다. 자기들의 아침 밥상에 올릴 음식을 덜어왔다. 냄비를 들고 나와 국자로 국을 퍼서 발우에 넣는 사람도 있었다. 탁발승의 발우에 담기는 음식을 보니 밥이 제일 많았고, 한국의 조계종단이 '불살생'의 계율에 따라 금기시하는 고기와 생선도 수북했다. 석가모니도 보시로 받은 돼지고기를 먹었기에 미얀마에서는 보시로 받은 육식은 허용한다.   

탁발 행렬은 마을 골목을 지나 경적 소리가 요란한 차도에도 올라갔다. 자전거가 달리고, 경운기가 달리고, 오토바이와 대형트럭, 버스가 빵빵거리면서 달리는 거리를 탁발승들은 맨발로 걸었다. 횡단보도도 없는 혼잡한 거리가 모세의 기적처럼 멈춰 서기도 했는데, 탁발 행렬이 도로를 가로지를 때였다. 잠깐이지만, 시끄러웠던 경적소리도 거짓말처럼 멎었다.

"스님들은 점심때까지 탁발을 합니다. 신도들이 준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금식을 하면서 수행합니다. 스님들은 수행에만 전념하면 되는 거지요. 탁발 자체도 수행입니다."

영담 스님의 말이다. 탁발승들은 끼니를 해결하고 불자들은 보시공덕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인 셈이다. 욕망으로 치닫는지도 모를 거리에서 탁발승들은 운판을 치면서 끊임없이 진리로 이르는 길을 일깨우고 있었다.     

[수도원의 공양간] 생선과 장조림, 스님들의 푸짐한 식탁

미얀마 바고의 자카화이 수도원의 점심 식탁.
▲ 수행승들의 식탁 미얀마 바고의 자카화이 수도원의 점심 식탁.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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떵~ 떵~.

오전 11시, 종이 울리자 사람들이 양쪽으로 50m 정도 도열했다. 태국에서 온 불자들인데 손에는 밥과 과자, 지폐 등을 들고 서있다. 맨 앞에 선 스님이 발우를 들고 발걸음을 떼자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 스님들의 품에 안은 발우 덮개는 수시로 열렸다 닫혔다. 500여명의 스님들이 차례로 발우를 들고 공양간으로 들어왔다. 바고에서 제일 크다는 자카화이 수도원(짜웅 Kyung. 스님들의 수행 공간)의 점심 공양 풍경이다.

▲ 자카화이 수도원의 공양 미얀마 수도원의 공양 풍경. 불자들이 줄을 지어 수행승들의 발우에 보시 물품을 넣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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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에는 100여개의 둥근 식탁이 놓여있었는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푸짐했다. 국과 스프, 귤, 수박, 심지어 생선찜과 쇠고기 장조림, 계란 스프 등 10여 가지 반찬이 올려있다. 신도들이 준 식재료로 마련한 기본 반찬이란다. 1년 동안 매일 보시 음식을 올리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단다.

먼저 들어온 스님들은 보시 물품을 정리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던 한 동자승이 발우를 열자 밥 속에서 지폐, 과자, 초콜릿 등이 쏟아져 나왔다. 동자승들의 발우에는 과자류와 공책, 연필이 유독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역시 아이였다. 한 동자승은 밥을 먹기 전에 과자를 먼저 꺼내먹다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도로 집어넣으며 겸연쩍게 웃었다.

미얀마 자카화이 수도원에서 본 동자승의 발우. 과자와 연필 등이 들어 있다.
▲ 동자승의 발우 미얀마 자카화이 수도원에서 본 동자승의 발우. 과자와 연필 등이 들어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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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도 침이 돌았다. 마침 영담 스님이 테이블 앞에 앉아서 수행승과 함께 식빵을 들고 있었다. 내가 그 옆에서 빵을 한 점 떼어먹자, 뒤에 선 사람이 나를 제지했다. 아마도 스님이 아닌 사람이 식탁 위에서 함께 먹으면 안 된다는 말 같았다. 빵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고 먹고 있으니, 조금 전만해도 다른 세상 사람인 듯한 표정으로 밥을 먹던 스님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떡 한 접시를 더 건넸다. 인간미가 느껴졌다.

손사래를 치고 공양간 바깥으로 나오니 작은 종지에 흰색 아이스크림을 퍼서 나르는 스님들이 보였다. 수행승들의 디저트였다. 이런 모습은 모두 공개됐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 수도원의 발우 공양은 잘 팔리는 관광 상품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수도원 입구에서 거지들이 이 상품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을 붙잡고 "오빠! 오빠!"를 외치기도 했다.

[황금 불탑] 머리카락 두 가닥으로 114m 탑을 올렸다

미얀마 바고의 쉐모도 파고다.
▲ 쉐모도 파고다 미얀마 바고의 쉐모도 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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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찬콩 보육원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땀을 흘릴 때 내 눈앞에선 탑이 아롱거렸다. 바로 근처에 우뚝 선 쉐모도 사원(Paya)의 황금불탑이었다. 이심전심이었나? 그 나라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풍습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천연덕스럽게도 얼굴에 다나까(천연 선크림)를 바르고 남자 치마(론지)를 입고 나타났던 룸메이트가 또 나를 유혹했다. 

"동네 한 바퀴 돌아보실래요?"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카메라를 들고 따라 나섰다. 빤찬콩 보육원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탑을 보려고 사원으로 들어가는 데 뒤에 서있던 상인이 소리를 쳤다. 발바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벗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입구 한 구석에 신발을 벗어놓고 올라갔는데 계단 끝에 서 있던 문지기가 양말도 벗어야 한다고 손짓발짓을 했다.

그렇게 무장 해제된 발로 들어선 쉐모도 파고다 앞. 부처님 머리카락 두 가닥으로 114m 높이의 탑을 쌓아올렸다. 미얀마에서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이란다. 바고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낮 시간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탑 주변을 돌았다. 탑 밑에 모셔둔 여러 개의 불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 불상 앞에 놓으려고 국화꽃을 들고 사는 사람들, 손을 꼭 맞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연인들.

탑의 웅장함에 놀라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는데 한 친구가 다가왔다. 한 손엔 돈을, 다른 한 손엔 고무줄이 달린 표를 들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1인당 300짯(300원)을 내야 한단다. 룸메이트가 종을 쳤더니 조그만 친구들이 손을 내밀었다. 돈을 달라는 뜻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조그마한 배가 신기해 들여다봤더니 그 밑에 동전과 지폐가 떨어져 있었다. 우리가 물속의 돌 거북이 등위로 동전을 던지는 것처럼.

저녁에 코끼리재단 자원봉사자들과 다시 탑에 갔을 때 통역하는 분에게 물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인지?

"개인의 건강, 부자 되기."

미얀마 양군의 쉐다곤 파고다.
▲ 쉐다곤 파고다 미얀마 양군의 쉐다곤 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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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었다. 붓다의 머리카락을 숭배하고 있지만 붓다의 기도와는 달랐다. 다음날 들른 곳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얀마 불교의 상징이자 세계 불교도들의 성지인 '쉐다곤 파고다'. 벽돌 탑의 높이가 98m이었다. 쉐모도 파고다보다는 약간 낮지만 사원의 전체적인 규모는 훨씬 커 보였다. 정문 앞에 커다란 돌사자상이 서 있었는데, 우리는 맨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원으로 올라갔다.

부처님의 머리카락 6개를 모셔놓은 벽돌탑 둘레에는 금을 씌웠는데 외벽의 금판은 약 13,000여개로 무게가 60톤이 넘는다고 한다. 탑 꼭대기에는 76캐럿 크기의 초대형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그밖에도 수천여개의 보석들이 달려 있다.

존경의 표시이기도 한 호화로운 탑, 이유가 있었다. 부처가 열반에 든 뒤에 많은 나라 왕들은 사리를 가져가려고 전쟁을 벌일 정도였다. 결국 부처의 사리를 나눠가졌는데, 미얀마의 탑(Zedi)에는 사리와 성유물이 모셔져 있다. 성유물 중의 최고는 부처 몸의 일부인 치아나 머리카락, 사리다. 한국 사찰의 중심에는 대웅전과 불상이 있지만 미얀마 사원이 탑을 중시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두 개의 사원을 돌면서 탑의 위용에 놀라기도 했지만, 나는 머리끝까지 맑게 하는 맨발의 감촉에 더 좋았다. 

[나가며] 늪에 빠진 코끼리처럼

"방종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지켜라
늪에 빠진 코끼리처럼
어려운 곳에서 자기를 구하라."

<법구경> 코끼리편에 나온 경구다. 영담 스님이 미얀마 양곤 공항 구석에 쪼그려 앉아 신문지에 꼬깃꼬깃 싼 하얀 코끼리를 꺼내 선물할 때 아내의 문자 경고와 함께 이 말을 떠올렸다. 돌로 만든 하얀 코끼리상은 한 주먹에 들어갈 정도로 소박했다. 

"이게 하얀 코끼리입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하얀 코끼리는 착합니다. 코를 항상 이렇게 내리고 다녀요. 코를 치켜들고 다니는 포악한 코끼리와는 다릅니다. 우리처럼 정치, 사상, 이념을 초월해서 이상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하얀 코끼리입니다."  

이번 일정의 마지막 일을 무사히 마친 그와 함께 공항 출국장 앞에 서서 인터뷰를 했다. 

미얀마에 주민운동 씨앗 뿌리기

영담 스님이 미얀마 딴린의 수투판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페인트칠하는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영담 스님과 수투판 고아원 아이들 영담 스님이 미얀마 딴린의 수투판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페인트칠하는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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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자원봉사를 통해 사단법인 '하얀 코끼리'가 미얀마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은?
"생필품 제공이나 건물을 지어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가령 우물을 파주고 그냥 돌아가면 우물을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한다.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한다. 대부분 물품 지원 위주의 활동을 펴는 데, 우리는 그들의 삶을 스스로 개선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기에 환경, 위생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미얀마에 주민운동의 씨앗을 심자는 생각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스리랑카에 고아원과 문화원을 지어줬다. 인도 쪽과 중국의 조선족이 사는 곳에도 하얀코끼리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려고 한다."

- 미얀마에서 배울 점은?
"우리의 불교는 너무 신격화돼 있다. 말로만 붓다로 산다고 하지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위선적인 불교의 면목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불교가 생활화되어 있다. 법당에서 함께 뒹굴지만, 계율은 아주 엄격하게 지킨다."

- 무질서하게 속도를 내며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트럭을 보면서, 이들도 우리처럼 고도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소위 정글 자본주의의 논리에 편입돼 공동체성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동체성이 유지될 것으로 본다. 서로 보시를 하는 풍습이 계속 지켜질 것이다."

- 그렇게 낙관하는 근거는 불교라는 정신적 가치 때문이라고 보시는 건지?
"그렇다. 불교가 굳건하게 뿌리박고 있다. 우리는 5천만 인구 중 1만3천명이 승려지만 이곳은 6천만의 인구 중 20만 명이 수행승이다.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우리는 식민통치 때 일제에 의해 불교가 많이 변질됐지만, 이들은 영국과 일본의 식민통치에서도 남방불교의 전통을 지켰다."

자정께 이륙한 비행기는 5시간을 날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핸드폰의 시계는 시차를 자동으로 계산해서 7시30분에 맞춰져 있었다. 화장실에서 반팔 티셔츠를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공항버스를 탔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미얀마의 무질서한 거리에서 본 차들보다 4-5배는 더 빨리, 질서 있게 달렸다. 햇빛을 받아 논바닥에서 녹고 있는 흰 눈을 보면서 미얀마에서의 5박7일을 떠올렸다. 

다나까로 분칠한 고아원 아이들의 크고 맑은 눈동자, 맨발로 법당 안에서 놀다가 낮잠을 자는 아이들, 웃통을 벗고 카드놀이를 하는 동자승들, 축제의 거리에서 게를 통째로 튀겨 파는 노점상들, 문을 열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무언가를 외치는 남자차장들, 그리고 매연이 자욱한 거리를 맨발로 걷는 탁발승들의 붉은 행렬.

가난한 그 거리에서 잠시나마 '쇠와 녹'의 경구를 떠올렸던 것은 미얀마의 정신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순전히 나의 경험에 갇힌 오만이거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창 밖에 펼쳐진 눈밭에 나가 맨발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었다. 

미얀마 거리에서 만난 탁발승 행렬
▲ 거리의 탁발승 미얀마 거리에서 만난 탁발승 행렬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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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 뭐지? 몸에서 사리 나올 것 같은 이 분위기
☞[2탄] 게까지 통째로 튀겨... 이색적인 '야시장'
☞[3탄] 악몽 같은 게스트하우스, 웃통 벗은 스님들

(뱀발)

하얀 코끼리 자원봉사단의 미얀마 동행 취재기에서 하도겸 칼럼니스트를 자주 언급했습니다. 약간 별난 인물로 묘사되긴 했지만 하 칼럼니스트는 즐기면서 일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그가 미얀마 현지에서, 그리고 그 뒤에 <불교닷컴>에 쓴 관련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딴린 수투판 고아원에서 시작하는 환경교육
☞ 부처님 인연따라 행복과 만족을 배우다
☞ 천 가지 생각보다 한 가지 실천이 더 중요


태그:#미얀마, #하얀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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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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