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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구불길
 군산구불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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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하려면 저렇게 해야 돼."

군산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풍경 하나가 빵집 이성당 앞에 줄을 길게 산 사람들이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더 많다. 빵을 사려고 몇 십 명이 줄을 서 있으니, 장사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부럽고 또 부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줄을 선다고 무조건 원하는 빵을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잘 팔리는 빵은 판매 수량을 제한한단다. 장사를 하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는 말이 이성당 앞에서 줄 선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나온다.

고우당 다다미방에서 하룻밤을 잔 우리 일행은 군산구불길 6-1코스인 탁류길을 걷기로 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길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볼거리가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탁류길은 전체 길이가 6km이며, 소요 예상시간은 102분으로 나와 있다. 유유자적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히 다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날도 고양힐링누리길을 담당하는 김운용 고양시 녹지과장, 안보선 팀장, 정창식, 최한범 주무관과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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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은 여행, 길을 잃은 우리들

그러나 계획은 예상한 대로, 기대한 대로 풀리지 않는다. 정해진 길이 있어도 사람의 발은 그것에서 늘 벗어나기 마련이다. 우리도 그랬다.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탁류길을 걷고, 점심식사를 하고 군산을 떠나자. 이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에서 벗어나 엉뚱한 길을 걸었다. 어제 비단강길을 걸으려고 나섰다가 햇빛길을 걸은 것처럼 엉뚱한 길을 접어들었던 것이다. 탁류길에서 벗어나 구불길 6코스인 달밝음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손에 군산구불길 지도를 들고 있으면 뭐하나. 코스에서 벗어난 줄도 모르고 구불길 리본만 따라갔으니 말이다.

 한일옥의 '무우국' 국물은 시원했다.
 한일옥의 '무우국' 국물은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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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옥 2층은 작은 박물관이었다. 밥만 먹지말고 2층도 둘러보자. 무엇이 역사가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일옥 2층은 작은 박물관이었다. 밥만 먹지말고 2층도 둘러보자. 무엇이 역사가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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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을 개조한 식당 한일옥에서 '무우국'을 먹었다. 군산이 고향이라는 최재우 전 도의원은 이 집에서 '무우국'을 먹지 않으면 군산에 다녀오지 않은 거라고 알려주었다. 소고기를 넣고 끓인 무국은 국물이 아주 시원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끓여주던 맛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그냥 식당에서 나오지 말고 2층을 꼭 둘러보시라. 볼거리가 가득하다. 우리가 예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이 세월이 흘러 손때가 잔뜩 끼면서 빛이 바래면 그 기능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리라. 너른 실내에 오래된 물건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일옥 건물이 1937년에 지어진 김외과 병원이었다는 것도 2층에 올라와서 알게 되었다. 붕어빵틀, 엿장수 가위, 인두, 놋그릇, 함지막, 장기판, 고가구 등등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볼거리가 많다. 식당에서 밥만 먹는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자.

식당에서 나오면 맞은편에 초원사진관이 보인다.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곳이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니, 영화에도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기 시작했을 것이고, 대중의 기억에서 잊힐 때도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초원사진관이라는 공간이 현실에 실재함으로써, 아직 잊히지 않고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석규, 심은하가 출연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로 유명해진 초원사진관
 한석규, 심은하가 출연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로 유명해진 초원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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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닫이문을 열고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면 주인장이 활짝 웃으면서 맞이한다. 사진관을 찾는 이들은 사진을 찍으러 온 고객이 아니라 관광객들이다. 관광객들은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내부 사진을 찍고, 영화의 주인공 사진 아래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탁류길은 채만식의 <탁류>에서 이름을 차용했다. 출발지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지만 군산의 옛날 도심지를 도는 코스라 도착지 역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다. 고우당이 그 코스에 포함되고, 이성당과 초원사진관 역시 코스 안에 들어 있다. 그러니 어디서 출발하든 문제될 것이 없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을 지나 구불길탐방지원센터로 갔다. 주택을 사서 내부를 개조한 구불길탐방지원센터에서 차를 얻어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옛날 군산세관 건물.
 옛날 군산세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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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공원 수시탑에 올랐다가 해망굴을 지나 옛날 군산세관 건물까지 걸었다. 작년 6월에 왔을 때는 군산세관 건물 앞에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어 건물을 가렸는데 다시 와보니 주차금지가 돼 있었다. 세관 건물을 가로막던 자동차들이 사라져 건물을 감상하기가 더 좋아졌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앞을 지났고, 부잔교 앞을 지나 진포해양공원까지 길을 잃지 않고 잘 걸었다. 볼거리가 많으니 걷는 걸음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탁류길은 그런 길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살피고 둘러보는 길.

구불길 리본은 바닷바람에 가볍게 날리면서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리본을 너무 믿지 마시라. 엉뚱한 길로 안내를 하는 수도 있으니. 어디서 길이 꼬였는지 모르겠다. 우리 일행은 노란 리본을 따라 걷고 있었으니 길을 잘못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호떡 하나 먹기 위해 번호표를 뽑다

길 위에서 호떡가게를 발견(?)했다. 군산에서 유명한 호떡집이란다. 그렇다면 아무리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었더라도 한 개쯤은 먹어야지.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면 절대로 호떡을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호떡이 우리를 이 길로 불러들인 것일까?

 호떡을 사먹으려고 번호표를 뽑아들고 기다려야 했다.
 호떡을 사먹으려고 번호표를 뽑아들고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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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서 번호표 빼들고 호떡을 사 먹기는 또 처음이다. 그나마 겨울이고 관광비수기라서 대기자가 적었다. 관광성수기에는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게 예사란다. '아무리 맛있어도 지가 호떡이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군침이 넘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고양시에도 호떡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그 집 호떡이 더 맛있어요."

호떡을 먹은 고양시민인 정창식 고양시 녹지과 주무관의 '증언'이다. 한 번이라도 사주고 그런 말을 하라. 이건 그를 흘겨보면서 내가 한 말이고.

군산구불길 6코스 달밝음길과 6-1코스 탁류길은 월명공원 수시탑부터 군산근대역사박물관까지 길이 겹친다. 이곳에서 우리는 구불길 리본을 따라 진포해양공원으로 갔다. 이 길은 탁류길이 아닌 달밝음길이었는데 리본이 바람에 날리면서 손짓하기에 그냥 따라갔더니만 우리가 걷고자 한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군산구불길 탁류길
 군산구불길 탁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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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서서 째보선창 부근까지 갔을 때도 길을 잘못 든 것을 몰랐다. 가끔은 '멀쩡한' 사람들이 '뻘짓'을 하는 때가 있는데 이날 우리가 그랬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탁류길이 있는 월명동 원도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이 불길한 느낌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이냐. 하늘은 잿빛으로 흐렸고, 금세 눈발이 날릴 것 같았다.

우리가 걷는 길을 따라가면 경암동 철길이 나온단다. 행인의 말에 따르면 "철길이 아주 좁은 것 말고는 볼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게 게 문제지.

군산 사람들은 어떤 짬뽕을 먹을까?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동국사로 향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절 동국사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탈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절이다.

1913년에 일본 에도시대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동국사의 옛 이름은 금강사였다. 해방이 되면서 이름이 동국사로 바뀌었다. 작년 6월, 군산을 찾았을 때도 동국사에 들렀다. 범종각 앞에 서니 이전에 왔을 때와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쉬이 기억나지 않았다.

 동국사.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절이다.
 동국사.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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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와 작년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니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범종각 앞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노란리본이 잔뜩 매달린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한데 이번에 가보니 그것이 범종각 한쪽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긴 것을 보면서 벌써부터 세월호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야 않겠지. 그게 쉽게 잊힐 일인가. 그래서는 더더욱 안 되고.

"군산 사람들은 유명한 그 짬뽕집에 안 갑니다."

군산에서 만난 군산 사람들의 말이다. 이유야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짬뽕 한 그릇 먹자고 몇 시간씩 줄을 선다? 관광객들이야 가능하지만 현지 사람들은 그럴 수 없지 않나. 그래서 그들이 가는 곳은 따로 있단다. 이 대목에서 귀가 토끼처럼 쫑긋 선다. 어디로 가시나요?

 물짜장이라고 해서 국물이 있는 짜장을 생각했더니 아니었다.
 물짜장이라고 해서 국물이 있는 짜장을 생각했더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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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여행은 오후 2시가 다 돼 들른 중국음식점에서 끝났다. 이 식당, 영화시장에 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물짜장과 짬뽕.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식당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식당이었다. 짬뽕이야 어딜 가든 먹을 수 있는 메뉴지만 물짜장이야 어디 그런가, 하면서 호기롭게 주문했는데 기대보다 맛있었다. 그 맛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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