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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어머니 서거 추모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어머니 서거 추모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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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강남경찰서에 아프리 사건으로 연행된 사람은 총 25명이었다. 이들은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하면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여성조합원들은 모두 구류 15일을 받고 살고 나왔다. 그러나 황만호, 전태삼, 김영대, 박계현, 김성민, 임기만, 이덕곤, 문숙주 그리고 이소선, 임현재, 이승철 등 11명은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 부상당한 신광용은 기소중지 되었다.

감옥에서 나온 지 두 달도 안 되어 또 다시 구속된 이소선

이소선은 포고령 위반으로 감옥에서 나온 지 두 달도 안 되어 또 다시 구속된 것이다. 이번에는 조합원들과 함께 구속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 전태삼과 함께 구속됐다. 이소선은 구속된 조합원들한테 지워진 짐을 자신이 대신 짊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겨울 혹독한 추위보다도 더 매서운 이 현실이 언제 끝날지. 과연 끝이 있기는 있는지 묻고 또 물어본다.

이소선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을 그 어려운 길로 가라고 요구하고, 그 요구를 지킬 것을 약속하라고 죽기 직전에 다그쳤던 아들 전태일을 한 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때마다 죽은 아들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어진다. 뼈까지 오그라들도록 추운 경찰서 유치장에서 잠 못 이루는 이소선은 꿈인 듯 현실인 듯 전태일을 만난다.

"어머니 힘내세요! 우리 어머니는 이겨낼 거예요."

이소선과 아들 전태삼 그리고 청계노조 조합원들은 줄줄이 포승줄에 엮여 구치소로 넘어갔다. 구속영장이 떨어진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 저항의 역사에서 전시(戰時)가 아닌 평시(平時)에 이렇게 모자 간에 줄줄이 포승줄에 엮여 끌려간 사례가 있는가? 그것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이런 수모를 주는 권력이 또 있을까?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아프리 투쟁은 그즈음 소위 체육관 투표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맨 처음 미국을 방문한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이 아프리 사건은 미국 교포사회에 알려져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을 규탄하는 사유 중에 하나가 되었다.

검사는 이소선의 기소장 별명란에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적었다. 재소자 신분 카드에도 이렇게 적었다.

이소선은 '노동자의 어머니'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봤다. 1970년 아들 전태일이 까맣게 탄 몸으로 피를 토하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어머니는 노동자의 편에서 싸워 주세요'하면서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한 이후로 줄곧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여기에 있다. 감옥에서 나온 지 두 달도 되지 않아서 또 다시 감옥에 들어왔다. 그것도 아들 전태삼과 함께 들어와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아들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이후에 무를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지켜야 할 약속이다.

그러나 밖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떤 지경에 처해 있을까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큰 아들 전태일이 죽었기 때문에 외아들이 되어버린 태삼이가 1979년에 청계노조 조합원인 윤매실과 결혼해서 딸 여진이를 낳았고, 몇 달 전에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젖을 막 뗀 아이 하나와 갓 난  아기 둘이 고물고물한 상태다.

며느리 윤매실은 시어머니와 남편을 옥바라지 한다고 거의 날마다 큰 것은 손잡고 걸리고, 쌍둥이 하나는 앞에 안고 또 하나는 등에 업고 구치소를 오갔다.  이소선은 면회 온 며느리한테 면목이 없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말한다.

"뭐 할라꼬 이리 자주 오노? 힘들게."
"힘들어도 어머니만 하겠어요? 어쨌든 몸 상하지 않게 식사 잘 하세요."
"여진 애비는?"
"여진이 아빠도 어머니 끝나고 할 거예요."

큰 손녀 여진이도 애긴데 이제 막 태어난 쌍둥이 손자들은 아직 이름도 짓지 않은 상태에서 이소선은 감옥에 들어 온 것이다.

이소선은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며느리 윤매실한테 마음속으로 "고맙고 미안하다. 고맙고도 미안하다"를 연발한다.

이소선의 며느리 윤매실은 시어머니는 노동운동에 미쳐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고, 집에는 시도 때도 없이 조합원은 물론 사방팔방에서 손님이 찾아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데다, 늘 가난에 쪼들려 허둥대면서도 찾아오는 손님 밥해서 먹이는 일을 아무런 불평도 없이 해 내는 사람이다.

며느리는 먹고 살기 위해 신설동에서 삯바느질을 막 시작했는데, 남편도 시어머니도 덜컥 감옥에 들어와 버렸으니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하고, 어린 손자 셋을 키워야 하는데... 이제는 두 사람 옥바라지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소선은 혼잣말을 되풀이 한다. '나야 내가 좋아서 이러지만 저 며느리나 어린 손자들은 무슨 죄가 있어 이 고생일꼬!' 그러면서 그는 자책도 해 본다. '언제 한번 내 자식들한테 알뜰한 어미 노릇 한번 해 볼 수 있을까? 이번에 밖에 나가면 따뜻한 할미 노릇을 해 볼 수 있을까?'

이소선은 담배 한 개피만 피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감옥이다. '그래, 기도해야 한다. 어렵고 앞이 막힐 때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가혹한 시련을 주십니까? 이 시련 당신의 뜻이라 해도 우리에게는 너무도 힘들고 버겁나이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거나 남에게 나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한테 주어진 권리를 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우리의 생명과 같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것 밖에 없습니다.

지금 차가운 감방에서 외롭게 떨고 있는 청계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너무나 순수하고 선한 당신의 어린 양입니다. 이 어린 양을 살피시어 이들이 하루 속히 이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들이 있는 이 감옥에 임하셔서 한사람도 건강 헤치지 않게 살피소서. 밖에서 남편도 없이 어린 자식들 키우면서 고생하는 우리 여진이 어미 특별히 보살펴 주셔서 지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이소선의 간절한 기도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이소선은 아들 전태삼을 비롯 청계 식구들 10명과 같은 법정에 나란히 서서 재판을 받았다. 군부 독재는 모자간에 나란히 서서 재판을 받게 하는 인권은 고사하고 인륜도 없는 악마와 같다.

재판 결과 이소선은 10개월을 받았다. 아프리 농성에 참가하지 않은 지부장 임현재와 지도위원 이승철도 10월을 받았다. 주동자급으로 분류된 전태삼, 황만호, 김영대, 박계현 등은 3년 형을 받은 것을 비롯 1~3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문숙주, 이덕곤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내가 3년을 받아야 하는데... 태삼이가 먼저 나가야 니가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할낀데, 징역이 바뀌어서 우짜노."

이소선은 면회 온 며느리한테 죄지은 것처럼 말했다. 정말 지금 형편으로서는 자신이 아들의 징역까지 살고 싶었다. 쌍둥이 손자의 첫돌이 다가오지만 누가 챙겨 줄 사람도 없었다.  어른들 세상과는 달리 그저 구김없이 자라는 쌍둥이 손자들의 방긋 웃는 웃음이 덥석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 면회소 유리벽을 더듬어 보지만, 현실은 냉기만 온몸에 전달되어 온다.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손녀 여진이는 어미가 시키는 대로 "할머니"를 제법 부른다. 저리 어리고 예쁜 손자들한테 남들처럼 평범하고 자애로운 할머니가 되는 길이 그리도 멀단 말인가!

이소선은 징역 10개월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출소해서 집에 와 보니 집안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며느리는 삯일하랴, 남편과 시어머니 옥바라지 하랴 아이 셋을 키우랴 정신없이 뛰지만 돈벌이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아이들 분유값도 바닥이 나서 허덕허덕하고 있다. 이소선은 손자 손녀를 제대로 안아볼 여유도 없이 중앙시장으로 나갔다. 헌 옷 장사라도 해서 손자 손녀 분유 값이라도 보태야 하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이소선 평전은 매일노동뉴스와 함께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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