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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 아이가 책 읽는 모습은, 곤히 잠들었을 때 만큼이나 예쁩니다. 아이가 '큭큭' 대며 읽는 책 내용이 궁금한 마음에 한두 권 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얼굴 빨개지는 책부터 독특한 그림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책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아이들 책을 기웃거리며 울고 웃은 내용을 담아봅니다. - 기자말

"새벽에 좀 깨지 않고 잠 좀 편히 잤으면 좋겠어."

아이를 둔 엄마라면 100% 공감할 만한 말이다. 모유 수유를 할 때는 젖을 먹이느라 새벽마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아이가 열이 나며 아플 때는 밤새 수시로 체온을 재느라 잠을 설쳤다. 기저귀를 뗄 무렵에는 새벽마다 뒤척이는 아이를 안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아이가 커가면서 그 모든 과정이 다 끝나가도 새벽에 깨지 않고 푹 자기는 여전히 힘들다.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에 한 번씩 깨기 때문이다. 

특히나 큰아이는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나 매일 같이 이불을 걷어차고 잤다. 그럴 때마다 혹시 감기에라도 걸릴까 싶어 새벽에 꼭 한두 번씩 일어나 이불을 덮어주곤 했다. 아이는 1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휙' 이불을 걷어찼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참 신기했다. (걱정과 달리) 아이가 이불을 만날 걷어차고 자는데도 배탈이 나거나 감기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 그림책이 있었으니, 바로 <한밤중 한 시에 검은 모자들이 찾아온다>(글·그림 오쿠하라 유메)다.

"우리 애들 이불 덮어줘서 고마워요"

새벽 한 시.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검은 모자 사람들이 한두 명씩 모여 든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지만, 서로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한 표정들이다. 그러다 뭔가 결심한 듯 검은 모자 사람들이 동시에 하늘 위로 날아오르며 하는 말,

'이 집부터 하자'
누가 마음 속으로 말하니까 모두 고개를 끄덕여

검은 모자들은 창틈으로 슬쩍 들어와
바람처럼 마루를 달려 살그머니 (잠든 아이) 머리맡에서

그리고 살며시 이불 끄트머리를 잡고...

<한밤중 한 시에 검은 모자들이 찾아온다> 표지
 <한밤중 한 시에 검은 모자들이 찾아온다> 표지
ⓒ 길벗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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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자에 검은 망토, 검은 바지, 검은 신발의 사람들이라... 저승사자라도 되는 건가? 애가 죽어서 데리러 왔나? 애를 보쌈이라도 해 가는 건가?' 입으로는 책을 읽고 있지만, 머릿속은 다음 장면을 추측하느라 바쁘다. 기껏해야 애들 그림책인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고, 뭘 하려는 거지?' 궁금증이 거의 폭발할 때쯤, 예상을 깨는 한 문장.

'(이불을) 살짝.... 덮어 줘.'

'뭐야, 이거였어?' 긴장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얼핏 무시무시해 보이는 그들이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살짝' 덮어주고 가는 사람들이었다니. 책 속에서 검은 모자 사람들은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어린이가 있는 곳이라면 아프리카든, 이글루든, 인디언 부족 천막이든 상관없이 찾아가 '살짝' 이불을 덮어준다. 심지어 노인이나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에게도.

큰아이가 맨날 이불을 걷어차도 좀체 감기에 걸리지 않았던 이유가 저 사람들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검은 모자 사람들이 복장과 어울리지 않게 왜 다들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도 그제야 이해가 갔다. 옆에 있던 큰아이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엄마, 엄마... 근데 진짜 나 그런 적 있었어... 나는 분명 이불을 안 덮고 잤는데, 깨어보니 이불이 내 가슴 위에 덮여져 있는 거야."
"그래? 그럼 진짜 검은 모자 사람들이 있는 건가봐."
"근데 왜 한 번도 못 봤지?"
"너 새벽 1시에 깨어있는 적 있어?"
"아니."
"그러니까 못 봤겠지."

"산타할아버지는 언제까지 오냐?"고 묻는 큰아이에게 "네가 있다고 믿는 순간까지"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진짜로 우리가 있다고 믿는 존재들이 한 번쯤 '짜잔' 하고 나타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뉴욕 한복판에 나타난 영웅, '어벤져스'들처럼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되어 새벽 한 시, 검은 모자 사람들을 우연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동안 우리 애들 이불 덮어줘 고맙다"는 말, 꼭 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밤중 한 시에 검은모자들이 찾아온다

오쿠하라 유메 글.그림, 이기웅 옮김, 길벗어린이(2015)


태그:#한밤중 한 시에 검은 모자들이 찾아온다, #다다와 함께 읽은 책, #그림책, #길벗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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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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