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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갱갱이 쪽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어린 시절 동네 형들이 가끔 날 놀리던 말이다. 성교육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 호기심 덩어리 꼬맹이들이 던져대는 "엄마, 나는 어디서 나왔어?"라는 난처한 질문에 어른들은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는 궁색한 대답을 내놔야 했었다.

갱갱이는 한 때 중부지역 최대 도시 중 하나인 강경의 충청도식 표현이다. 그러니까 강경 어느 큰 다리 밑에서 널 주워 왔다고 놀리는 말이다. 징검다리말고는 다른 큰 다리를 본 적이 없던 충청도 청양 산골 꼬마는 그 때 이미 이 세상에는 엄청 '큰 다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에게 '다리'라는 단어는 그렇게 '갱갱이 쪽다리'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왜 하필 '갱갱이 쪽다리 밑'이었는지, 그 쪽다리의 실제 존재 여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정말 궁금하긴 하다.

다리의 사전적 의미는 도로, 철도, 수로 등의 운송에 장애가 되는 지형을 건너거나 통과할 목적으로 세우는 구조물을 말한다. 다리는 인간의 삶이 풍족해지면서 원래 목적인 교통수단을 넘어 인류문명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다리는 한 도시의 문화유산이며, 상징 조형물로 문학과 예술작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 분단의 상징물이 된 임진각 철교처럼 정치사회학적인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다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징'이라 여겼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을 가보면 수많은 다리를 볼 수 있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다리, 극락세상과 현세를 이어주는 다리 등 그 다리의 의미는 단순히 교통수단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다리는 어떤 대상들을 이어주는 고리다.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고, 천국과 지옥을 연결해 주며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연결해 준다. 고로 세상의 모든 다리는 소통이며 연결통로다. 현대에는 다리 건설 기술이 그 나라 건설 기술 수준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는 '세계 최장교 건설'이나 '세계 최고층 다리' 건설에 소리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티크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다리
▲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 티크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다리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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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크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

미얀마에도 세계 어느 유명 다리에 뒤지지 않는, 명성이 자자한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세계 최장교이거나 최신식으로 지어진 다리도 아니다. 그저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다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석양이 걸려 있는 이 다리를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다. 가기 전 읽은 책과 미얀마 현지 가이드가 하도 칭송을 하는 바람에 '다리 하나 가지고 너무 호들갑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리를 직접 만났을 때, 왜 사람들이 '우 베인 다리'를 그렇게 칭송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우 베인 다리는 지금부터 약 170여 년 전(1849~1851) 아마라푸라(Amarapura)의 시장이었던 '우 베인'이라는 사람이 마하간다옹 사원의 스님들이 호수 건너편 마을로 탁발 공양을 갈 수 있도록 보시를 한 것이라 한다. 여기에 사용된 목재는 티크다. 보도파야 왕이 수도를 이전하면서 잉와 궁전에서 해체된 목재를 아마라프라 왕궁 건설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때 남은 목재를 이용해 만든 다리가 바로 우 베인 다리다. 커다란 타웅타만(Taungthamam) 호수를 가로 지르는 우 베인 다리는 길이가 1.2km에 이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라고 한다.

 석양이 걸친 우베인 다리는 아름답다.
▲ 우 베인 다리 석양이 걸친 우베인 다리는 아름답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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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물든 호수는 아름답다.
▲ 타웅타만(Taungthamam) 호수 석양이 물든 호수는 아름답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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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베인 다리 위의 미얀마 사람들의 삶

우 베인 다리와 함께 생각나는 사람은 만달레이 현지 가이드였던 '묘묘쉐우'다. 지금 나의 미얀마 연재 글을 감수해주고 있는 묘묘쉐우는 만달레이 외국어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미얀마 한국어 경시 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출중한 재원이다. 지금도 미얀마 글에 대해 한글로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 능력자다. 묘묘의 목표는 한국대학에 편입하는 것이라는데 올해는 한국에서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묘묘덕분에 우 베인 다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불 수 있었다.

우 베인 다리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유명한 관광지 다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미얀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족 나들이 장소 중 하나다. 그리고 스님들의 탁발 공양의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결혼을 앞둔 젊은 예비부부의 웨딩 촬영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근처 사는 사람들은 이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우 베인 다리 위를 걸으며 깨달은 것은 이 다리가 그냥 오래된 다리라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이 다리 속에 미얀마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 베인 다리는 그냥 다리가 아니었다. 이 다리는 근 170여 년 동안 호수 위를 지키며 미얀마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하고 있었다. 우 베인 다리 곳곳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미얀마 사람들이 있었다.

웨딩촬영 중인 예비부부, 가족 나들이,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독특한 방법으로 낚시하는 강태공들(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
▲ 우베인 다리 위 사람들 웨딩촬영 중인 예비부부, 가족 나들이,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독특한 방법으로 낚시하는 강태공들(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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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물든 우 베인 다리는 황홀하다
▲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 석양에 물든 우 베인 다리는 황홀하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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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여행하는 사람은 대부분 우 베인 다리를 찾는다. 혹시 가거든 사진 찍는 것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다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그 속에 묻어 있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 삶이 보일 때 석양에 물든 우 베인 다리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이다.

지난 연재글(땅예친 미얀마 10)에서 밝혔듯이 우 베인 다리는 나에게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다리의 길이를 무시했다가 하마터면 바지에 똥을 쌀 뻔했다. 우 베인 다리 중간에는 화장실이 없다. 미리 볼일을 해결하고 가야 여유 있는 다리 탐방이 될 것이다. 아무리 다리가 아름다워도 급한 볼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얀마 꼬맹이들이 "엄마 나 어디서 나왔어?"라고 물으면 미얀마 부모들은 무엇이라 대답할까? 궁금하긴 한데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설마 이런 말은 안 하겠지?

"넌 우 베인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덧붙이는 글 | ※미얀마어 표기는 현지 발음 중심으로 했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태그:#미얀마, #땅예친 미얀마, #우 베인 다리, #전병호, #만달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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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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