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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영화 <아메리칸 셰프>와 미드 <뉴스룸 시즌3>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소셜네트워크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꽃피운 SNS(Social Network Service) 기반의 하위 문화는 이제는 공기만큼이나 익숙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SNS를 널리 사용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최근 4~5년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경쟁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접속'을 시도했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온라인 공간에 올려댔다. SNS 어플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경쟁적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고 애썼다. 놀라운 앱들의 출현과 더불어 수많은 얼리어답터들은 자신의 기호와 생각의 교류를 넘어서, 자신의 일상 사진과 실시간 위치를 공유하고 나아가 사는 곳과 직장, 폰에 저장된 친구들의 연락처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지만, 나 또한 SNS를 통한 '긍정적 연결'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첨단 IT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체감하며 SNS라는 '사생활 무한공유 도구'에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내어줬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끊임없이 불거지는 정치적 이슈와 더불어 기존 언론의 폐쇄성이 대중들로 하여금 SNS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나의 일상 깊이 들어온 SNS라는 도구의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들이 '알 수도 있는 친구' 목록에 나타났고 몇 년간 소식조차 모르던 친구들을 만나도 그들은 내 일상을 두루 꿰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인터넷 카페나 클럽, 동호회,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위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콘텐츠와 위치를 공유하는 '이런 류'의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우리는 1990년대부터 사용하던 '지구촌'이라는 단어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경험한 첫 세대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기술이 문화보다 앞서 제공됐을 때 생기는 '카오스'를 우리는 점점 자주 겪게 될 것 같다. 마치 사진기가 처음 발명됐을 때 현대미술이 혼돈에 빠지고 수십 장의 원본이 가능한 '사진'이라는 존재에 아우라가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듯이 말이다. 또 컨베이어를 이용한 생산으로 대변되는 포드 시스템이 '장인'이라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생산자의 개념을 허물었듯 이제 기술은 담론과 일상 영역 모두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

'셀렙'과 대중의 경계를 허무는 소셜네트워크

그렇다면 소셜네트워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영화나 미드로 예를 들어보자.

 영화<아메리칸 셰프>에서 주인공의 아들이 올린 트위터로 푸드트럭이 가는 곳마다 트럭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룬다.
 영화<아메리칸 셰프>에서 주인공의 아들이 올린 트위터로 푸드트럭이 가는 곳마다 트럭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룬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자신의 음식을 혹평한 유명 음식 평론가와 트위터로 설전을 벌인다. 하루 만에 그 트위터 내용이 수십만 명에게 알려지게 되자 칼은 레스토랑을 나와서 푸드트럭을 타고 미국을 돌며 쿠바 샌드위치를 만들며 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아버지 이름의 트위터를 개설하고 푸드트럭의 위치를 공유해 트럭이 도착하는 곳마다 샌드위치를 사려는 수십 명의 고객을 끌어들인다.

칼 캐스퍼의 악명이 도리어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또, 그의 샌드위치를 SNS를 이용하는 무수히 많은 익명의 사용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자신들의 주변에 전파한 것이다. 푸드트럭의 명성에 힘입어 칼은 결국 다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로 복귀한다. 이것은 SNS의 긍정적 효과다. 매스미디어는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들만을 좇아다니고 이슈화 시켰다. 반면 SNS는 '셀렙(유명인을 뜻하는 '셀레브러티'의 줄임말)'과 대중의 경계를 허문다. 누구나 이슈를 실어나를 수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할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몇몇 사람들의 기호나 유희적 목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는 매체가 언급조차 하지 않는 '사건'들이 전파되며 그 사건들이 회자되고 이슈화되고 재조명된다. 실제로 성추행 당한 여성, 가정폭력, 부당한 해고, '묻지마' 폭행 등의 사례들이 매일처럼 SNS에 공유된다. 그로써 억울함을 호소한 이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다시 조명돼 경찰의 재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익명의 SNS 사용자들이 대중의 눈과 귀와 말이 되어 준다. 정말 되어야 할 일, 되었어야 했던 일들을 '되게 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에 대한 판단주체의 부재

 <뉴스룸>의 한 장면.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앵커는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SNS기반 뉴스앱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뉴스룸>의 한 장면.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앵커는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SNS기반 뉴스앱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물론 SNS가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드 <뉴스룸> 시즌3에서도 이러한 소셜네트워크 문제를 다룬다. 시즌3의 하이라이트는 방송국 안에 새로 만들어진 디지털 부서와의 마찰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부서의 신임 편집자는 뉴스앱을 통해 누구나 기사거리를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개시했고 그는 그것을 '시민기자단의 정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존 방송국의 보조앵커인 슬로언은 디지털 부서의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기사 공유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셀렙들이 술취해 있는 장소 따위를 공개해 대중이 그곳으로 몰리게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겐 폭력적이란 사실도 언급한다. 나아가 공인과 대중의 경계, 뉴스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 대한 판단 주체, 즉 전문성을 가진 '데스크'가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다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 일례로 '훈련되지 않은 다수의 시민들이 기자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상에 배설하듯 뱉어내는 기사거리들'이라고 비판할 때(어떤 의미에서 이는 마치 기성 언론이 <오마이뉴스>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이는 오래된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즉, '전문성', '전문가 그룹'이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 이를테면 결국은 그들만의 리그였다거나 비전문가들이 침범할 수 없는 내부 언어나 습속같은 진입장벽의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모든 콘텐츠들은 서로 다른 '수준'을 가지고 있고 일반 대중보다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콘텐츠를 더 잘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포스트모던 사회, 통섭의 사회로 진입한 우리에게 어떤 권위의식은, 설령 그것이 진짜 권위를 담보로 하더라도 '비호감'으로 치부될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미드 속 스키너(<뉴스룸>의 보도국장)가 가방에 넣어 다니던 책이 <돈키호테>라는 사실은, 이미 넘어온 새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는 측면에서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부정적인 부분을 그저 감수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뉴스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불과 10~20년 전에는 어떤 기자도 갖지 못한 첨단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음성을 녹음하고 먼 거리에서도 누군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원한다면 동영상까지 촬영해 실시간으로 수천만이 접속하는 인터넷에 공유할 수 있다.

비단 뉴스나 매스미디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SNS는 이미 매체의 역할을 넘어서고 있고 많은 양의 정보와 사람들의 사생활이 공유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악플에 시달리다 우울증을 앓거나 목숨을 끊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번 공유된 글과 사진, 영상은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영생'의 힘을 얻는다. 만일 미드의 경고처럼 우리가 '진실'에 관심없이 누군가의 온전한 인격이 아닌 한 단면만을 보고 그것을 이슈화한다면 어떨까. '된장남', '김여사', '개똥녀' 등등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매체나 소셜네트워크의 속성상 대중은 자극에 민감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자극적이지 않을 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매체는 편파적이면서도 자기 성찰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사람에게 주어진 단회적인 사건에 그 사람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곤 그 이미지로 그(녀)를 묶어 버린다.

유명인이라도 씻어내기 쉽지 않은 편견의 꼬리표가 불특정한 시민에게 붙을 때, 설령 그 사람이 실수가 아닌 잘못을 했더라도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기술이 문화를, 사회를, 인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기술의 부정적인 부분을 감수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악플에 강해져라, 이슈가 되면 오히려 기회로 삼아라, 긍정의 힘을 믿어라' 이제는 SNS를 하면서도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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