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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평소 네 번째 손가락 즉, 약지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갖는가? 혹은 2월에 대해서 진지하게 관찰한 적이 있는가? 이렇듯 내 몸과 우리 주변에는 일상적으로 존재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살다가 문득 그것들을 인지하거나 감지할 때가 있는데 거의 대부분은 충격을 통해서다. 평소에 특별한 기능의 과시 없이 침묵하는 4번째 손가락이 어느 날 사라지면 그 순간부터 당신은 철학자가 된다! 그리고 그 어떤 존재도 매개자로서의 2월을 지나지 않고서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울림은 점프하듯이 우리를 철학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시인이 될 수가 있나 보다. 특히 죽음을 눈 앞에 둔 순간에는 더욱 더! 그때 깨달음이 슬며시 얼굴을 내민다. 극단 히든 컴퍼니가 무대에 올린 <어서오세요>는 아무리 둔한 관객이라도 엔딩과 동시에 모두 철학자로 그리고 시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주제와 이야기가 소극장에 담아두기에는 모두 최고와 최상인 까닭이다.

그 여파로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명제(命題), 이 세상의 모든 형이상학(形而上學)이 피부로 와 닿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뭐니뭐니 해도 가족 에 벌어진 갈등이 죽음으로 해소 될 때 라는 것. 그런데 거기에 이 문제의 연극, '욕망의 늪으로'라는 수식어가 붙은 <어서 오세요>가 자리한다.

비가 내리던 밤, 종로구 대학로 8가길 66번지에 위치한 노을소극장은 관객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정말 글자 그대로 소극장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상연한 연극은 대극(大劇)이었다. 알다시피 큰 이야기는 큰 주제에서 나온다.

'원소스 멀티유즈'가 가능할 만큼 인접 장르로의 확산이 충분한 파워를 선보인 <어서오세요>, 그 성공 요인은 연출과 극본 그리고 연기의 삼박자가 모두 다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중에 연출과 극본(개작)을 책임진 인물이 동일인이다. 한재혁. <비즈니스><셜록><새장> 등에 출연 및 연출한 배우 겸 연출가. <어서오세요>에는 그가 2007년 초연 당시의 원작인, <리투아니아>를 쓴 루퍼트 부르크(Rupert Brooke;1887 ~ 1915)가 얌전히 포개져있다. 그러니까 <어서오세요>는 앵콜 공연이다.

어서오세요 포스터 어서오세요 메인 포스터
▲ 어서오세요 포스터 어서오세요 메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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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인으로 케임브리지의 킹스(King's) 대학 졸업. 유럽과 미국을 유랑하면서 시작(詩作)에 힘을 기울였고 1911년 첫 번째 시집을 출간한 후 1913~1914년 미국과 남태평양 여행 중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8개월 만에 지중해 그리스에서 병사한 천재 작가.

이와 같은 세간의 평은 이 작품만 놓고 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리투아니아를 배경으로 1900년대 초에 루퍼트 부르크가 쓴 유일한 희곡인 <리투아니아>에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한재혁이 꽂힌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영감을 받게 했던 것일까?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잠깐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 척박한 산간 오지마을에서 밭농사와 날품팔이로 겨우 연명하여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술에 취해 일용직 노동자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와 맹목적으로 바깥 세상을 두려워하는 어머니 그리고 몸이 불편한 딸. 이들 가족은 인근에 들어선 카지노 건설 당시 외지에서 손님이 몰려올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지은 민박집이 덫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채무를 해결하지 못해 추운 겨울날 알거지로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보내던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한 젊은 남자가 이 집에 찾아와서 민박을 청한다. 그런데 이 남자 뜬금없이 두 모녀에게 관심을 보이더니 자신의 가방에 가득 찬 돈을 가족에게 자랑한다. 삶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가족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구세주인 돈에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휘발된 꿈을 잠식한 불안에 습관처럼 허우적거리던 그들은 마침내 허풍쟁이 같은 떠벌이 손님의 돈을 차지하기 위해 그가 잠든 사이 비정상적인 가족회의를 한다. 그런데 주위 이웃들까지 이 계획의 한복판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고 하나 둘씩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과거가 밝혀지는데….

<어서오세요>는 블랙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오히려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다. 출연배우들의 잘 계산된 열연으로 극 중간중간에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그 웃음은 중반 이후 한 순간에 관객의 감정선을 모두 공포와 경악으로 밀봉해 버리는 질료가 된다. 그 전까지 손님이 감내하는 과장과 과대의 몸짓 반대편에는, 관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후 맞닥뜨리게 될 '어둠'이 묵직하게 몸을 풀고 있다.

마치 직지인심(直旨人心)처럼 찰나의 깨달음 같은 것이 냉기와 함께 목덜미를 휘감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포스터의 맨 위를 장식한 문구인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의 표방도 사실은 관객을 '희롱'하기 위한 덫에 가깝다. 한재혁은 그렇게 관객을 우리에 가둬놓고 관습을 일망타진하는 데 성공한다. 한 마디로 올 킬(All Kill)이다. 네 자신을 알라는 명언이 자꾸 귓가에 이명을 불러일으킨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세 명의 배우  어서오세요에서 열연하는 아버지와 술집주인 그리고 술집주인의 아들
▲ 무대에서 연기하는 세 명의 배우 어서오세요에서 열연하는 아버지와 술집주인 그리고 술집주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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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할 정도로 냉정한 그의 퍼즐맞추기식 연출로, 극 말미에 이르러 술집주인과 그 우스꽝스러운 아들 콤비에 의해 재구성되는 손님의 정체는 클라이맥스와 임팩트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 내가 졌다. 이만하면 명불허전이 아닌가? 승부수에 가까운 입체감 넘치는 사운드가 '무지'한 나의 오감을 사로잡는 건 순전히 카리스마 넘치는 극의 높은 완성도 때문이다.

연출에서 내공을 유감 없이 발휘한 한재혁은 작두를 타듯 90분 동안 관객을 마음껏 주무른다. 이런 식의 유린, 즐겁다. 그로 인해 기꺼이 마음 한 구석의 빗장이 무너질 정도의 무장해제를 경험한 후에 찾아오는 삶에 대한 되새김은 단지 테크닉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반전이 아니기에 더 흠뻑 젖는다. 그제서야 배우들의 면면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히든박스라는 연기자 그룹이 히든 컴퍼니 극단으로 정식 창단해 첫 시작을 알리는 공연으로 선정한 <어서오세요>. 이 연극을 그저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뛰어난 내면의 심리묘사라는 것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족함을 넘어서는 모독에 가깝다. 꿈의 끝은 어디인지 몰라도 몰락의 끝은 분명한 우리의 삶. 처절한 인생의 바닥으로 내려가 잠자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경종을 울리는 이 섬뜩함이 아니라면 어찌 '죽음'의 문제를 잠시라도 생각할 것인가?

척박한 현실 속에서 많이 힘들고 지친 자들에게 '처절한 바닥'을 선물하고 싶다는 연출자의 속내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서오세요>가 보여주는 것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서오세요>는 그 자체로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의 대표연극이라는 찬사를 들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부 7명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술집주인 아들을 제외한 손님과 딸, 산림경비원과 술집 주인은 더블 캐스팅으로 다른 호흡과 파장을 선사한다. 한번의 관람으로 막막한 감동을 가눌 길 없다면 재관람은 덤이 아닌 당연한 것이다.

이 연극을 보고 'windin****'이라는 네티즌은 "날카로운 풍자라는 것은 때때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것이다. 단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이야기이기 때문에"라는 평을 남겼다. '어둠예찬'이라는 네티즌은 "이 연극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비단 마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한 물질주의적인,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실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로는 달라도 깨달음이 하나인 이유다.

세상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존재만으로 숨막히는 시지프스의 좌절은 바로 그 곡선에 참뜻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결국은 제자리인 원점으로의 회귀, 문득 뫼비우스가 생각난다. 어서 오세요라는 그 말, 속이 비비 꼬인 자들이 불행의 무대로 유혹하는 그 인사말이 오늘 따라 무섭다.
연기하는 모녀 어서오세요에서 열연하는 엄마와 딸
▲ 연기하는 모녀 어서오세요에서 열연하는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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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주문을 외워야 행복할까? 어서 오세요 대신 잘 가세요? 아니면? 이런 철 없는 질문을 던지며 극장을 나서면서 우산을 펼쳐들 때 눈에 들어온 4번째 손가락, 언제나 조용한 약지를 감싸 쥐면서 비 내리는 2월이 겨울의 여벌이 아니었음을, 봄의 아웃사이더가 아니었음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선산을 지키는 것은 굽은 나무라고 하더니 말 없이 나를 지켜주고 감싸주던 것들은 그저 그렇게 평범한 것들이 아니었던가? 가는 겨울을 딛고 오는 봄에 실려 가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적극 권한다. 살다보면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 목록에 당당히 이 연극을 추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1. 공연기간 : 2015.02.10화-02.22일
평일20시 / 토16시,19시 / 일15시,18시
※단 2/20금15시,18시 공연 있음
2. 공연장소 : 노을소극장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8가길 66)
3. 공연시간 : 90분
4. 티켓가격 : 일반30,000원 / 대학생15,000
5. 제작/주최 : 극단 히든컴퍼니
6. 주 관 : 극단 히든컴퍼니, ㈜후플러스

문의처 : 공연기획사 (주)Who+
전화 0505-894-0202 / 이메일 whoplus@daum.net / 팩스 0505-874-0202

이 기사는 후아이엠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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