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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들을 새끼줄로 촘촘히 사방형으로 엮은 후 황토를 발라 벽을 만들었다. 오랜 세월 지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 황토벽 나뭇가지들을 새끼줄로 촘촘히 사방형으로 엮은 후 황토를 발라 벽을 만들었다. 오랜 세월 지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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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이 고생스러워도, 뉴스의 교통정보에서 정체소식이 들려와 고향으로가는 분들 고생한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고향 가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생각이 든다.

고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라져 버린 고향때문이다.
나의 고향의 모습은 추억 속에 남아있고 지금은 아스팔트 밑에 아파트 단지 아래 묻혀있다. 도시개발로 몇몇 흔적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폐가의 담장, 황토는 다 스러지고 담장의 뼈대를 이뤘던 나뭇가지들만 남았다.
▲ 골조만 남은 흙담장 오랫동안 비어있던 폐가의 담장, 황토는 다 스러지고 담장의 뼈대를 이뤘던 나뭇가지들만 남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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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풍경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람도 바뀌었다.
그래서 고향이 고향 같지가 않다. 물론,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고향의 본연의 모습이 잘 간직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면,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는 좋을 것이다.

도시에서도 재개발지구로 선정된 곳에서 쇠락해 가는 폐가를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국도를 따라 지나치다 보면 이전에 비해 폐가가 한층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강원도 갑천의 폐가
▲ 폐가 강원도 갑천의 폐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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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늠해 보건데 낡은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집을 짓는 대신 근처에 새로운 터를 잡아 지은 집도 있지만, 사람이 떠나버린 폐가도 많다. 그래서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언젠가는 사람이 살았던 곳, 그런데 왜 지금은 사람이 살지 못할 곳이 되어버린 것일까?
더는 수리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현대 건축의 편리함 때문에 농어촌지역에 폐가가 늘어나는 것이라면 덜 쓸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농어촌 지역이 사람 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황토벽의 색감과 나뭇기둥과 갈라짐, 하나의 예술작품인듯 하다.
▲ 폐가 황토벽의 색감과 나뭇기둥과 갈라짐, 하나의 예술작품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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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폐가, 저렇게 스러져가는 폐가처럼 우리의 고향도 쇠락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가의 정책이라는 것이 지역간의 발전균형을 맞춰가는 것이어야 하는데, 온통 도시로 모여들게 만들고 있다.

사람이 떠난 농어촌, 그곳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살아갈 수 없으니 죄다 도시로 떠나고 쇠한 육신을 가진 노인들만 남아 고향을 지킨다. 그마저도 세월이 지나면서 한분 두 분 이 세상과 이별을 하고, 더는 몸 누일 사람 없는 집은 폐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옛날 집들은 재료가 다 자연에서 얻은 것이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들이어서 폐기물도 없었다.
▲ 폐가 옛날 집들은 재료가 다 자연에서 얻은 것이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들이어서 폐기물도 없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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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갑천과 홍천, 국도를 따라 그곳을 오가며 만나는 폐가들마다 쓸쓸해 보였다.

그러다 문득, 그 쇠락의 그림자 속에서 마치 명작을 만난 듯한 기쁜을 누린다. 그것은 바로 황토벽 혹은 담의 색깔이었다. 색깔 뿐 아니라 갈라짐과 오래된 나뭇기둥과 벽을 만들기 위해 나뭇가지 등으로 엮어놓은 골조.

그 모든 색감들은 자연의 빛, 더도 덜도 않은 자연의 빛이었던 것이다.

강원도 홍천, 아직은 황토벽이 튼실하게 남아있다. 겨울풍경과 그리 이질적이지 않은 흑벽의 색감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 폐가 강원도 홍천, 아직은 황토벽이 튼실하게 남아있다. 겨울풍경과 그리 이질적이지 않은 흑벽의 색감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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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희망의 빛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로 다가왔다.

함석지붕에 쌓인 싸락눈, 겨울 나무와 산, 시래기들이 널려있는 밭이며 그 모든 것들과 어쩌면 이리도 완벽하게 조화로울 수 있을까?

집을 짓는 방식은 비슷했다.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자연을 닮을 집들을 지었던 것이다.
▲ 폐가 집을 짓는 방식은 비슷했다.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자연을 닮을 집들을 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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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쓸쓸한 것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도시의 폐가와는 다르게 구조물 하나 하나 모두 자연의 것이요, 자연에서 얻고 자연으로 돌아감의 과거와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람이 다 떠난 폐가, 사람살던 집이 무너져가는 것처럼 한국의 농촌도 무너져가는 것은 아닌지.
▲ 폐가 사람이 다 떠난 폐가, 사람살던 집이 무너져가는 것처럼 한국의 농촌도 무너져가는 것은 아닌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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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까닭에서였는지 떠났다.
그러나 또 누군가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고향이 유지되려면 그래야 하는 것이다.

폐가 기둥에 걸려있던 시래기, 아직도 폐가는 이런저런 구실들을 하고 있다.
▲ 폐가 폐가 기둥에 걸려있던 시래기, 아직도 폐가는 이런저런 구실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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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가 잘 말랐다.

그래, 요즘이 저 시래기를 물에 축여 토끼에게 주던 시기였을 터이다.
초등학교 시절, 옆집 형에게 어느 해 가을 토끼풀을 며칠 베어다 준 대가로 받은 토끼가 한 겨울에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그만 새끼를 낳던 날, 혹한의 추위가 왔고, 그때만 해도 그냥 처마밑 토끼장에 토끼를 키우던 때였으므로 털도 나지 않은 새끼들이 죄다 동사했다.

아버지에게 생명을 키울 준비가 안 된 놈이라며 엄청나게 혼이 났고, 어미는 다시 원주인에게 돌아갔다. 그 이후로 토끼 키우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때 토끼를 주려고 묶어두었던 시래기는 봄에 그냥 밭에 버려졌다.

오래된 나무기둥과 황토 흙담이 잘 어우러져 보인다.
▲ 흙벽 오래된 나무기둥과 황토 흙담이 잘 어우러져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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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인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다 만난 강원도 갑천과 홍천의 폐가, 그 안에 들어가 잠시 살았던 이들을 상상하던 중에 나의 유년의 시절 살았던 고향집을 생각했었다. 나름나름 깨끗하게 정리하면 사람 살만한 곳이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떠난 폐가, 그 민낯만큼이나 대한민국의 농어촌은 쇠락해 가고 있다. 그곳도 사람들 살만한 곳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

고향을 다녀오시는 분들 중에서 이전보다 급격하게 늘어난 폐가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다. 그곳이 살만한 곳으로, 사람이 다시 돌아와 사는 곳이 되는 상상, 그것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강원도 갑천과 홍천에서 2월 17일 담은 폐가 입니다.



태그:#농어촌, #고향, #폐가, #황토, #흙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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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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