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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바고의 거리는 매우 혼잡스럽다.
▲ 미얀마 바고의 거리 미얀마 바고의 거리는 매우 혼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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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룸메이트 하도겸 씨의 코골이는 자장가에 불과했다. 하얀 코끼리 자원봉사단은 3일차(1월30일) 밤에 딴린에서 만델레이로 이어진 옛 도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80km를 달려 바고의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당시 생생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초췌한 사진과 함께 그 다음날 내가 <오마이뉴스>의 모바일 플랫폼인 '모이'에 올린 글의 일부를 인용한다. 

☞ [썸 : 10초 동영상] 바고의 거리

▲ 미얀마의 거리 바고 시내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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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에서 담요 덮고 잤다?

"새벽 5시 40분에 깼다. 아니 잠을 잔 게 아니라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담요는 왜 이리도 짧은지. 모기는 왜 이리 많은지. 게스트하우스는 왕복 4차선 대로변에 있다. 밤새도록 바깥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진동했고 대형트럭이 지나갈 때 건물이 흔들리기조차 했다. 인근 사찰에서 경전을 읊는 소리가 뒤섞였다. 혼잡한 도심 한가운데의 도로 위에서 담요를 덮고 누워서 뒤척이는 형국이라니.

어젯밤 딴린에서 1시간30여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바고는 딴 세상 같았다. 미얀마에서 세 번째 맞는 아침은 거친 굉음으로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모바일 플랫폼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더니 충청도 출신인 한 후배가 한국에서 실시간 댓글을 달았다.

"엄청 초췌하시네요." "넘 기네유~ ㅠㅠ"

20여 년간 볼펜 기자를 한 습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부족한 사진과 동영상 기술을 글자로  때우려니 항상 글이 길었다.  

[풍경1] 빤찬콩 보육원에서 건진 '사진 5장'

하얀코끼리 자원봉사단이 교실에서 위생교육을 하고 있다.
▲ 미얀마 빤찬콩 보육원의 깨진 유리창 하얀코끼리 자원봉사단이 교실에서 위생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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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위에 있는 사진을 찍고 안쓰러웠지만 흐뭇했다. 깨진 유리창 너머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사진의 품질은 형편없지만 구도는 그럴듯했다. 남의 불행 앞에선 사진기자들도 이럴까? 지난달 31일 바고의 빤찬콩 보육원(학생 150여명)에 간 하얀 코끼리의 어린 자원봉사자들은 이 교실에서 이빨을 닦는 게 왜 중요한지를 교육했다. 그러고 보니 맑은 눈망울의 아이들에게 매료됐다가 썩은 앞니를 드러낼 때 실망한 적이 있다.

빤찬콩 사찰 법당에 가서 또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을 건졌다. 흙바닥을 맨발로 뛰어다녔던 녀석들,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그 발로 다녔던 아이들이 법당에 대자로 누워서 낮잠을 잤다. 수투판 사찰 법당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생활 속 불교'의 모습이다. 심지어 나이가 지긋하신 한 스님은 식당 옆 수돗가에서 웃통을 벗고 물을 끼얹으면서 등목을 했다. 정면에서 찍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했다.

미얀마 빤찬콩 사찰 법당 풍경.
▲ 법당 안에서 자는 아이들 미얀마 빤찬콩 사찰 법당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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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빤찬콩 보육원에서 동자승과 아이들이 카드 놀이를 하고 있다.
▲ 카드놀이하는 동자승 미얀마 빤찬콩 보육원에서 동자승과 아이들이 카드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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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이 아니었다. 내가 2층 난간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웃통을 벗은 동자승과 보육원 아이들 6~7명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무언가에 열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위에서 내려다보니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돈내기는 아니었다.

박쥐 중, 벙어리 염소 중, 지옥 찌꺼기, 가사 입은 도둑...

불현듯 한국 불교의 맨얼굴을 드러낸 백양사 도박사건이 스쳤다. 겉으로는 엄격함을 주장하지만 사회적 지탄을 받는 한국 조계종의 일부 권승들 말이다. 이들을 그대로 둔 채 자정과 결사를 외치는 아이러니. 서산대사가 <선가귀감>에서 말한 "말세에는 가사 입은 도적들이 진짜 행세를 하고 진짜승려는 세속에 머문다"는 질책이 생각났다.

"중도 아니요, 속인도 아닌 것은 '박쥐 중', 혀를 가지고도 법을 설하지 못하는 것은 '벙어리 염소 중', 중의 모양에 속인의 마음을 쓰는 것은 '머리 깎은 거사', 지은 죄가 무거워 천도(해탈)할 수 없는 것은 '지옥 찌꺼기', 부처님을 팔아 살아가는 것은 '가사 입은 도둑'이라 한다."(선가귀감)  

해외 원정도박을 해도 무사하고, 사람을 감금해서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종회(조계종의 국회격) 의원으로 선출하고, 술에 취해 골프채로 폭행을 해도 주지로 임명하는 한국 조계종의 현실. 미얀마는 어떨까? 자원봉사자들을 감독(?)하고 있던 '공사 반장' 영담 스님에게 물었다.
 
- 아니, 스님. 미얀마 사찰의 법당은 좀 헐렁한 것 같은데요? 숨소리도 거칠게 내기 어려운 한국 법당과는 다르네요?
"불교가 생활이어서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 지금 동자승들은 아이들과 잘 놀지만 크면 달라져요. 신도들은 스님의 옷깃을 만질 수도 없고, 아무리 높은 관료라도 감히 스님들과 한 식탁에서 먹을 수도 없어요."

- 한국 사찰의 법당은 엄격한데, 도박승이나 은처(숨긴 처)까지 있는 스님들이 멀쩡하게 행세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스님들은 계율을 어기면 어떤 처벌을 받죠?
"소승불교는 계율에 엄격합니다. 절에서 내쫓지 않으면 신도들이 법복을 벗기고 사찰에서 쫓아내요."

이 말을 듣고부터 웃통 벗고 다니는 동자승이 다르게 보였다. 사진을 보여 달라는 동자승의 등을 두드리면서 헤드 락을 하기도 했는데, 밉보이면 승려 모욕죄로 감옥까지 간단다.

빤찬콩 보육원 아이들이 하얀 코끼리 자원봉사자들이 그리는 벽화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 자원봉사자들이 그리는 벽화를 구경하는 아이들 빤찬콩 보육원 아이들이 하얀 코끼리 자원봉사자들이 그리는 벽화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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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빤찬콩 보육원에서 만난 아이.
▲ 스티커를 이마에 붙인 아이 미얀마 빤찬콩 보육원에서 만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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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서먹했던 아이들이 둘째 날부터 달라졌다. 난간 위에서 쪼르르 매달려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내려 봤다. 페인트칠을 하다말고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한 컷 찍었다. 2층 난간에 페인트칠을 하러 올라갔더니 동자승과 아이들이 달라붙어 사포질을 하면서 녹을 제거하고 있었다.         

내가 잠시 보육원 마당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쓰는 동안 녀석들이 주변으로 모였다. 다나까로 분칠하고 이마 위에 작은 스티커를 붙인 아이는 내 가방을 베고 누웠다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 같아서 한 컷 찍어 보여줬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썩은 이조차 친근했다.

[풍경2] 봉사? 가난한 아이들은 '마음'을 주었다

자원봉사자인지, 기자인지? 딴린 수투판 고아원에서는 나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웠지만, 빤찬콩 보육원에서는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게 자연스러웠다. '박쥐 기자'였다. 가령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밥을 먹기가 미안하면 페인트 붓을 들었다. 대충 계산해보니 자원봉사 일정의 3분의 1정도는 페인트칠을 했고, 3분의 1은 취재했다. 나머지는 '모이'와 '섬'에 기사를 올리거나 잠시 바깥에 나가 파고다와 시내 풍경을 스케치했다.

나는 빤찬콩 보육원에서 첫째 날 오후와 둘째 날 오전에 2층 난간을 페인트칠 했다. 수투판 고아원보다 작업이 수월했지만, 햇볕이 정면으로 내리 쬐는 난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흘렀다. 더군다나 무릎까지 걷어 올렸지만 겨울바지를 입었다. 페인트가 튀지 않게 조심했지만 몸이 끈적끈적해지자 바지를 포기했다. 그 순간부터 페인트칠에 속도가 붙었다. 

빤찬콩 보육원 아이들이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덜어주려고 철제 난간에 붙어서 녹을 제거하고 있다.
▲ 철제 난간의 녹을 제거하는 아이들 빤찬콩 보육원 아이들이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덜어주려고 철제 난간에 붙어서 녹을 제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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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락 씨(47. 시흥장애인 보호작업장 시설장)는 바지 걱정만 한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노동을 한 게 아니라 '명상'을 했단다. 그는 "작업이 힘이 들었지만 내가 살아왔던 풍족한 삶을 되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면서 "내년에 오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받아 적으면서 괜히 미안했다. 

어린 자원봉사자들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환경과 위생 교육을 시켰다.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아이들과 만났던 최재희 씨(24. 불교학과 석사과정)는 "아이들의 때 묻지 않는 눈빛을 볼 때마다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서 황홀했다"면서 "나는 지식을 전해주러 왔는데 아이들은 마음을 줬다"고 말했다. 그의 대구법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아줌마 자원봉사자들은 한국 동요를 가르쳤고, 거미줄이 쳐진 어두컴컴한 부엌에서는 보육원 아이들이 먹을 한식 요리를 만들었다. 선금례 씨(47)는 "지난해에도 왔었는데, 열악하지만 보육원에 오는 아이들은 그나마 행운아라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우리도 옛날에 이렇게 살았는데, 미얀마의 희망인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교육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풍경3]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자원봉사 일정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 미얀마 빤찬콩 보육원 아이들과 하얀 코끼리 자원봉사단 자원봉사 일정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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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찬콩 사찰 운난디야 주지 스님은 법당 큰 의자에 앉았고, 나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았다. 한국 상황이라면 함께 소파에 앉던지, 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인터뷰하는 게 정상인데 통역을 맡은 안내인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주지 스님은 10여분동안 보육원의 어려운 상황을 전하면서 연거푸 "고맙다"고 말했고, 고마움의 대상 중의 한명인 나는 스님을 우러르면서 받아 적었다. 

하얀 코끼리가 식재료와 학용품, 의류, 책 등을 기증하고, 학교건축 지원 MOU를 체결할 때 우냐윈 바고 도지사도 참석했다. 이 때 어색한 주지스님과의 인터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37살인 운난디야 스님은 영담 스님과 함께 높은 의자 위에 앉아서 인사말을 했고, 우냐윈 도지사는 아이들과 함께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행사를 지켜보다가 제일 마지막에 벌떡 일어서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영담 스님의 말처럼 미얀마 스님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영담 스님이 인사말을 통해 강조한 문구다. 아무리 좋은 천 가지 생각도 한 번의 행동만 못하다는 말이다. 사단법인 하얀 코끼리가 미얀마에 자원봉사를 온 까닭이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쉴 틈 없이 즐거운 노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빤찬콩 아이들은 재롱잔치로 실천했다. 

☞ [썸:10초 동영상] 빤찬콩 아이들의 재롱잔치

▲ 미얀마 빤찬콩 아이들 전통 춤을 선보이는 재롱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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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급한 일정 때문에 행사를 마친 뒤 무전기를 든 경호원들과 함께 빠져나가려는 우냐윈 도지사를 붙잡았다. 미얀마에 와서 높은 사람 한번 만나지 못하고 퇴각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됐다. 내 입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너무 급작스럽게 들이민 인터뷰여서 질문거리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잠시 심호흡을 하고 "하얀 코끼리의 지원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미얀마 정부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셔서 나라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뻔 한 질문에 당연한 답변이었다. 이어 영담 스님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도움을 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이를 실천하는 스님에 대해 감사하고, 우리가 모두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일간의 자원봉사 일정은 이날 미얀마 국기와 태극기를 앞에 두고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났다. 밀린 숙제를 하듯이 악몽 같았던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좌석을 옮겨가면서 옆에 탄 아이들에게 물었다. 무엇을 느꼈냐고.

"얘들과 공도 차면서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게 즐거웠어요.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인데도 한국 얘들보다 욕심이 없고 항상 행복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얘들이 보고 싶어서 내년에도 또 오고 싶어요."(황진제. 16)

"화장실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교실에 전등이 없었습니다. 부엌에는 거미줄이 쳐졌고 쥐들이 드나들었어요. 나는 페인트칠과 벽화 그리기, 양치질 교육을 했는데,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미력하게나마 도움을 준 것 같아요."(신재훈. 16)

빡빡한 일정 탓에 힘이 들었을 것 같았는데, 즐거움과 보람이 더 컸나 보다. 영담 스님이 강조했던 '동사섭(同事攝)' 수행법. 아이들은 함께 나누면서 스스로 배웠다. 페인트 통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상태로 4일을 지냈던 홍갑표 원종종합사회복지관 관장(53)의 마지막 소감도 궁금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없어도 자기들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동체의 중요성도 느꼈습니다. 자칫 방치하면 서구 자본주의에 물드는 것은 아닌지. 미얀마의 좋은 가치를 지키고 발전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그날 밤, 게스트 하우스에서 푹 잤다. 겨울옷을 입고, 도로 반대방향으로 머리를 둔 채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개운했다.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날 새벽에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굉음이 아니라, 청아한 풍경 소리였다.

☞[1탄] 뭐지? 몸에서 사리 나올 것 같은 이 분위기
☞[2탄] 게까지 통째로 튀겨... 이색적인 '야시장'


태그:#미얀마, #하얀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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