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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엽 작가의 11번째 목판화전을 한 달 앞둔 지난 2월 초, 안성 보개면 남풍리에 있는 이윤엽 작업장을 찾았다. 아트북(<한국현대미술선-이윤엽>, 헥사곤) 출간을 위해 사진 촬영을 도울 겸해서 갔다.

고양이 두 마리가 정겹게 낡은 시골지붕 위로 나타나 호기심 어린 귀여운 눈을 굴린다. 백구 두 마리는 꼬리를 살랑댄다. 이윤엽 작가와 5년 전 결혼한 고운 색시도 흙 마당에 나와 함께 인사를 나눈다. 그림 같이 예쁘고 소박한 풍경이다.

목판화가
▲ 이윤엽 목판화가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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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 200여 점을 하루 만에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햇볕 아래서 찍으려고 작품들을 밖으로 옮겨야 하고, 합판벽에 압핀으로 붙이고 떼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해가 중천을 지날 무렵, 털모자에 노가다 차림의 이윤엽 작가가 읇조렸다.

"다 부질없는 짓이여... "

돈 안 되고 세상도 바꾸지 못할 작품 찍느라 여러 사람 고생시키니, 민망과 겸양을 섞어 중얼거린 말이다.

트렁크갤러리는 사진기획전만 해 오다 작년 부터 회화영역으로 넓혀 현대미술의 주요작가들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프로모션하고 있다. 최근, 세계미술시장과 미술관에 기획 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을 알리는 작지만 단단한 갤러리다. 다음은 '이윤엽의 남풍리 판화통신' 기획한 박영숙 관장의 말이다.

"이윤엽의 작업은 세상과 소통하는 데 있다. 작가는 목판화 제작을 일상으로 하고 삶의 기틀로 삼고있다. 그의 작업 속에는 이웃 사람, 주변 풍경, 세상 이야기들이 재밌고 따뜻하게 담겨있다. 생각만으로 꽉 찬 요즘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는 감동을 받았다. 나사로 접합한 합판화와 소멸식 다색 판화 기법은 그가 창안한 새로운 목판화 형식들이다. 남풍리 작업실에 가서 (이윤엽 작가가) 사는 모습과 작품들을 보고, 처음 간 그 자리에서 주저않고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다."

전시장에는 대형 판화 <한라산에서-까마귀>를 비롯 50여 점의 크고 작은 목판화들이 전시된다. 작품 가격도 10만 원부터 다채로워 눈여겨 보고 소장해볼 만하다. 큰 대표작은 작게 아트프린터로 출력하여 저렴한 값에 한정 보급하고 있다. 전시에 맞추어, <한국현대미술선- 이윤엽>이 출간되어 작가의 작업노트와 작품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미친놈아,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왜 깨우냐"

이윤엽 작가가 어머니에 대하여 쓴 글과 그림이 있다.

"누가 와서 종일 이야기 나누다가 돌아가고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요즘 투쟁하고 있는 청소노동자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머니도 청소노동자 입니다. 먹물로 그리다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이 미친놈아,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왜 깨우냐'."

이어 작가는 어머니의 30여 년 막노동 이력을 그렸다. 떡장사, 식당 설거지, 파출부, 포장마차, 윷 장사, 깡통 무너뜨리기, 붕어빵 장사, 커피 장수, 아파트 상가 청소부를 그리고, 끝에 <2008 우리 어머니> 그림을 만화처럼 이어 그렸다.(<참세상>'이윤엽의 판화참세상' 중)

이 글과 그림은 세련되거나 장식적이지 않다. 쉽게 쓰고 그렸다.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감추려는 게 현실이지만  이윤엽의 글과 그림은 내가 보고 겪은 일을 당당히 이끌고 나온다. 이윤엽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예술은 후진 예술'이라고 말한다. 미술을 하게된 사연도 <나의 아버지>라는 글에 있다. '한 평생 여기저기 쫓겨다니며 무허가 집 짓고, 개장 만들고, 포장마차 만들고 하면서 무능력한 술주정뱅이 아비가 아들에게 당신과 나도 모르는 새 주고 받은 것은 그리는 것과 만드는 손재주'였다.

이윤엽 목판화(2010년 56*76cm)
작가가 결혼하며 새긴 목판화. 아내 윤정씨가 좋아하는 작품이란다.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꽃 피우고, 기러기(오리)는 한 번 짝을 맞은면 평생 다른 곳에 눈을 안돌리고 수명도 150년... 오랫동안 헤어지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튼실한 목단을 가운데 두고 부부가 오리를 품고 있다. 간결한 민화풍 형상에 적과 먹, 청록이 화려하고 생동감 넘친다. 아이도 그림처럼 풍성히 낳고 싶지만 5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 결혼-사랑 이윤엽 목판화(2010년 56*76cm) 작가가 결혼하며 새긴 목판화. 아내 윤정씨가 좋아하는 작품이란다.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꽃 피우고, 기러기(오리)는 한 번 짝을 맞은면 평생 다른 곳에 눈을 안돌리고 수명도 150년... 오랫동안 헤어지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튼실한 목단을 가운데 두고 부부가 오리를 품고 있다. 간결한 민화풍 형상에 적과 먹, 청록이 화려하고 생동감 넘친다. 아이도 그림처럼 풍성히 낳고 싶지만 5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 이윤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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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엽은 몸으로 익힌 인문학적 감성의 작가다. 그와 가족이 그랬듯, 가난하지만 일하는 사람에 대한 자부심과 존중감은 어려서부터 보고 세상과 부딪히며 깨우쳤다. 그리고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닥치는 대로 펼쳐 보였다. 노가다에서 현장 미술가로 뛰어든 것도, <나는 농부란다>(2012.사계절), <찐드기>같은 글과 판화를 직접 쓰고 새긴 것도, 예술을 사람과 생존을 위해 써야한다는 사유 없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판화를 선택한 것도 회화와 달리 모든 감각들을 건강하게 살려 쓰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행복감에 있다.

이윤엽 작가는 예술의 형식과 기교보다 삶과 일상의 정서, 불평등한 사회현실을 진솔되고 재미있게 담는 데 더 공을 들인다. 독창성에 연연하지도 고상함이나 현학적인 말장난이나 권위 따위도 안중에 없다. 때로는 낙서, 콜비츠, 오윤, 이철수, 홍성담, 김준권, 정원철... 같은 작가들의 형식과 기법들을 연장처럼 거침없이 쓰기도 한다.

2004년 판화 <다국적 함바집>은 건설 현장 간이식당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먹는 점심식사를 새겼다. 비좁은 시설에서 빽빽이 모여 바삐 먹는 모습을 칼춤 추듯 새겨 놓았다. 2010년 <결혼-사랑> 다색 판화는 고운 아내를 맞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꿈을 민화풍으로 상징하여 정성껏 담았다. 2004년 <풀>같은 작품은 끈질긴 생명력을 살리기 위해 전동톱과 드릴로 새기기도 했다. 그가 내용에 걸맞은 기법과 형식을 얼마나 적절히 찾아 자유롭게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예술 동네' 안의 예술 아닌, 세상 속의 예술
이윤엽 목판화
▲ 사람이 우선 이윤엽 목판화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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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엽 작가는 국가나 기업이 이익만을 위해 주민과 근로자에게 대책 없이 몰아치고 희생을 강요하는 폭력을 두고 보지 않았다. 이것은 예술가 이전에 인간으로서 물러 설 수 없는 삶의 기운이다.

이윤엽은 일상과 삶을 짓밟는 폭력에 몸과 마음을 던져 종군기자처럼 긴박한 작품들을 파견 현장에서 생산하고 공급해 왔다. 행동예술가로서의 노고와 성과를 인정받아 2012년 구본주 예술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장르적 위상의 문제에 고정하지 않는다. 그의 장점은 오히려 예술 내부의 문제, 그러니까 장르니, 기법, 매체, 양식 따위에 묶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추리에서 용산,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4대강, 그리고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간 첨예한 사회적 의제의 현장에 뛰어 든 이윤엽의 예술행동은 예술동네 안의 예술이 아니라 세상 속의 예술을 창출했다.

그는 현장에서 절규와 환희, 두려움과 용기, 죽음과 삶을 만났다.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서 동네 박물관을 만들기도 했고, 거대한 크레인에 걸개를 설치하는 등 파견 미술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예술적 실천으로 첨예한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 하는 데 앞장 서 온 이윤엽은 우리시대 예술행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예술가이다' (구본주예술상운영위원회)

한편, 작가정신과 작품성이 저평가된 점은 아쉽다. 상대적으로 지나친 주요한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특히, 2004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나사접합합판화와 소멸식다색목판화에 담긴 내용과 형식은 이윤엽의 작가정신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성과물이다. 예컨대, 목, 팔다리, 관절, 옷 마디들을 따로 잘라 새긴 다음, 큰 합판에 나사로 이어 붙여 찍는 방식이다. 합판의 무늬와 나사머리의 질감을 고스란히 살려낸 효과는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이윤엽만의 접합식합판화 방식이다.

이윤엽 작 2008,150 290 cm
▲ 개와 미국자리공 이윤엽 작 2008,150 290 cm
ⓒ 이윤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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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돈 받으러 가는 사람><개와 미국자리공> 판화는 인간이나 생명체가 한갓 로봇처럼 기계화되고 있는 세상을 합판 무늬 질감과 대비시켜 희화화 된 현실을 효과있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목판화가 지닌 크기의 한계를 나사로 조합, 확장하여 압도감과 주목성을 높여 복제예술로서 판화가 크기 면에서도 회화 못지않은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윤엽의 다색목판화는 흑백목판화의 단조로움을 넘어 자연의 생명감과 깊이를 담고 있다. 논과 밭, 꽃과 동물, 산과 나무, 자연이 본래 가진 풍부한 기운을 목판 특유의 자연스러운 나무질감에 살려 다채로운 빛깔로 채워 넣고 있다. 여기에는 이윤엽 작가만의 자유로운 사유와 작가정신, 자연에 대한 친선이 특유의 색감과 질감으로 담겨 있다.

2014년 작. 이윤엽 목판화 개인전 출품작
▲ 밤에 출근하는 사람 2014년 작. 이윤엽 목판화 개인전 출품작
ⓒ 이윤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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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작한 소멸식다색합판화로 <한라산에서-까마귀>와<밤에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210cm, 150cm 합판에 새기고 찍은 대형소멸식다색판화다. 올빼미로 비유한 샐러리맨의 눈은 철야근무로 충혈되었다. 몸과 날개에 분홍빛 노을과 새벽의 푸른빛이 비친다. 빗질한 머리, 각진 옷주름, 검정가방이 초췌하고 궹한 눈빛과 대비되어 마음을 짠하게 울린다. 올빼미로 비유한 간결한 형상과 치밀한 칼맛, 명료한 빛깔의 대비감을 통해 고단한 비 정규직 노동자의 전형을 절묘하게 풍자하고 있다.

<까마귀>는 묵시록 같은 시대의 자화상

<까마귀>는 내용과 형식, 크기와 질감 면에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지 합판에 새겨 찍고, 원판을 깎아가며 소멸식다색판으로 사전에 수량을 (AP 1매와 에디션 8매로) 미리 한정하여 치밀한 계획과 순서로 찍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색판화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먹빛 깃털 아래로 회청색이 먼저 찍혀있고, 윤곽을 따라 황토색도 찍혀있다. 먹판 부분도 겹쳐 찍은 부분은 더욱 짙은 먹빛을 내면서 까마귀의 생동감을 더하면서 단색 판화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이감을 품고 있다. 이윤엽의 <까마귀><..올빼미..>는 이전 목판화에서 볼 수 없던 압도하는 크기와 질감뿐 아니라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오윤의 <칼노래><도깨비>에 버금가는 걸작이다.

까마귀와 아래 산의 외형은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로 잡았다. 그러나 세부적인 형태를 보면 치밀하기 이를 데 없다. 까마귀의 깃털은 곧고 강하면서 섬세하다. 그리고 산을 이루는 뿌리 무늬도 몸 속 혈관처럼 정교하게 퍼져 있다. 검은 색 까마귀는 외형 격조 있어 보인다. 그러나 고개를 떨구고 날 수 없다. 날개를 펴더라도 퍼드득 거릴 게 뻔하다. 새의 눈은 흔들리고 하늘이 아니라 땅으로 가있다. 새의 다리는 나무뿌리처럼 박혀 꼼짝할 수 없는 지경이다. 또는 유방과 유선처럼 보이기도 하여 그것을 움켜쥔 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트북의 표지판화 <한라산에서-까마귀>
▲ <한국현대미술선-이윤엽> 아트북의 표지판화 <한라산에서-까마귀>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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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욕망에 사로 잡혀 날 수 없는 모습이다. 그것은 나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 노동과 생명 가치가 끝내 이를 수 없는 욕망의 약육강식 사회로 간다면 누구도 인간다운 삶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 통찰하고 성찰하는 시선으로 보여주는 묵시록 같은 시대의 자화상이다.

그의 익살어린 눈빛, 잇몸이 드러나는 웃음. 그 속에 날카로움과 우직함도 있다. 단단한 손, 충성스러운 연장, 장인적 뚝심과 고집을 갖춘 작가다. 그래서 이윤엽은 칼 놀이로 먹고 산다. 목판화는 힘이요, 칼 놀이, 세상을 풍자하는 칼 노래다. 이윤엽의 그림을 보면 백창우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고달픈 이들의 가슴을 축이는 한 사발 술이면 좋겠다. 지친 이들의 기운을 돋우는 한 그릇 밥이면 좋겠다.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한 자루 칼이면 좋겠다. 이름 낮은 이들의 삶 속에 오래오래 살아 숨 쉬는. 밟혀도 밟혀도 되살아나는 길섶에 민들레 꽃처럼, 응달진 이 땅의 진흙밭에 조그만 씨앗하나 남기는, 힘차게 피어난 이름 없는 꽃처럼 질기고 질긴, 스러진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그런 생명의 그림.

덧붙이는 글 | 이윤엽 LEE YUNYUP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현장 미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목판화에 담아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경기도 안성에서 아내와 반려견 까불이와 바람이와 함께 텃밭도 가꾸고 나무판에 그림을 새기며 산다.

개인전: 2002년 첫 개인전, 2011 개인전 ‘여기사람이 있다.’(사키마 미술관-일본) 등 11차례.
파견 현장전, 기획전, 단체전: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광주시립미술관). The Land and The People Contemporary Korean Prints展(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라이브러리 갤러리), 2012 여기 사람이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이철수vs이윤엽 (민예총 룰루랄라)등 100여 차례

수상: 2012 구본주 미술상. 2002 수원 민족예술인상 수상.
홈페이지: yunyop.com

전시명 : 이윤엽의 남풍리 판화통신
기 간 : 2015.3.5-3.31
장 소 : 트렁크 갤러리 (02-3210-1233)
사이트 : http://www.trunkgallery.com



태그:#이윤엽, #남풍리목판통신, #트렁크갤러리박영숙, #까마귀,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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