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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테트리스'의 모습.
 완성된 '테트리스'의 모습.
ⓒ 모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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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야, 야, 여기 무너진다!"

급작스런 외침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즉각 달려와 온몸으로 막아보지만 이미 통제 불능이다. 위쪽에서 휘청거리던 상자들이 결국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를 강타하고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푸근한 인상의 직원이 기계처럼 재빨리 현장을 수습하고 떠나면서 조언을 건넨다.

"에이 아저씨, 이렇게 쌓으면 안 돼요. 바닥이 불안정하면 금방 무너져버려."

아, 이번 판 '테트리스'는 실패다.

운동하는 셈치고 시작한 택배 상하차 알바

 연속 야근으로 가득한 출근부.
 연속 야근으로 가득한 출근부.
ⓒ 모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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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후기를 많이 봤음에도 첫 출근을 할 때까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미 공사 현장부터 공장, 무대 설치와 철거에 이르기까지 '3D 업종' 경험도 있었다. 그저 '전처럼 운동하는 셈치고 적당히 일하다 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열흘 즈음밖에 안 되는 단기 아르바이트였다.

온 신경은 오로지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받게 될 목돈을 어떻게 나눠 써야 할지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밤새 일해 받은 돈은 병원비로 다 갖다 바치고, 아르바이트들이 돈도 마다하며 중간에 달아난다'더니, 택배 상하차 일은 정말 달랐다. 그동안 읽어왔던 모든 후기들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2월의 첫 월요일 오후 8시경, 인천에 위치한 부평물류센터. 간단한 조회를 마친 야근조가 일할 준비하고 있었다. 우체국 물류지원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나는 야간조로, 오후 7시 또는 8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근무하기로 했다. 일당은 9만 원. 열흘 조금 넘게 일하는 동안 주휴수당까지 합해 약 100여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주 5일 풀근무시 494,000원). 평일 낮에는 서울에서 취업 스터디를 하고 있었고, 단기에 충분한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야근수당과 시간외수당이 절실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각 라인에 가득한 택배 상자들.
 각 라인에 가득한 택배 상자들.
ⓒ 모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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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처럼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택배.
 뱀처럼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택배.
ⓒ 모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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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풀 새도 없이 바로 '슈트'의 한쪽 라인에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했다. 물류센터를 가득 채우고 있는 파란색 슈트는 각종 중량물을 지역별로 분류해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동화설비다. 참 고마운 기계지만 분류된 화물을 일일이 차에 싣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게다가 아주 적은 확률로 잘못 분류된 택배까지도 골라내야 한다.

슈트가 작동하면서 일이 시작되자, 각 라인별로 화물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루 평균 5만 개에서 7만 개 수준이던 이곳의 택배 물량은 명절을 앞두고 두 배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화물의 크기와 무게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과일상자와 농수산물을 비롯한 물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가장 바쁜 추석 즈음부터 연말을 거쳐, 설 명절까지가 바로 물류센터의 최대 성수기다.

잠시라도 손을 놓고 있으면 앞쪽 택배들이 밀리고 밀려 바닥에까지 쏟아진다. 최대한 바삐 움직여 택배들을 팔레트(안정적인 운반을 위한 구조물) 위에 실어야 한다. 간혹 구겨지거나 찌그러진 택배를 받은 고객이 있다면, 결코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대신 해명하고 싶다. 기계의 일정한 속도를 사람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택배들은 마구잡이로 실려서도 안 된다. 무겁고 튼튼한 택배부터 아래쪽에 쌓아가면서 작은 박스들로 빈틈을 메워야 한다. 주변 직원이 "테트리스 아시죠, 테트리스? 그것처럼 끼워 넣으시면 돼요"라고 덧붙인다. 상자 탑을 착실히 쌓아가며 틈새에 정확히 맞는 상자를 집어넣을 때마다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나름 할 만하겠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그러나 게임도 며칠 밤을 새워가며 하면 질리는 법이다. 김치부터 고구마, 각종 선물세트와 떡까지... 무한정 쏟아지는 것은 물론 무겁기까지 한 택배의 파도에 금세 질려버리고 말았다.

 MBC <무한도전 - 극한알바 편> 방영분 일부 갈무리.
 MBC <무한도전 - 극한알바 편> 방영분 일부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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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MBC <무한도전 - 극한알바 편>에서 택배 상하차를 경험했던 하하의 울부짖음이 절로 떠올랐다. 그동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난생 처음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일할 때마다 꼬박꼬박 주어지는 10분의 휴식시간은 칼같이 지켜야만 한다. 2인 1조의 직원과 아르바이트들이 서로 밀어내면서 쉬는 방식이라, 조금이라도 늦으면 체계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1분 1초가 이렇게 아까운 적이 있었을까.

사무실 의자에 주저앉아 간신히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붙잡았다. 쪽잠을 자기도, 그렇다고 책이나 신문을 읽는 등의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다. 그저 고개를 수그린 채 멍하니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다가 시계를 보고는 그대로 다시 라인에 투입되기 일쑤다.

상상 초월하는 노동,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미

발송 분량을 상차하는 작업은 자정 즈음이 되어서야 간신히 끝이 났다.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을 합쳐 한 시간의 대휴식이 주어진다. 밖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도시락을 밥 한 톨도 남김없이 긁어 먹는다. 식욕이 없어도, 좋아하는 반찬이 없어도 다 먹어치우지 않으면 새벽의 하차 작업을 버텨낼 수가 없다. 순간 바로 옆에서 식사 중이던 한 아저씨가 "저기, 컵라면 좀 먹을래? 너무 많아서"라며 도시락 뚜껑에 한 젓가락을 덜어준다.

아까 분명히 '어제 지급받았던 라면인데 아껴뒀다 이제 먹는다'던 그 아저씨다. 연신 넙죽거리면서 단박에 뜨거운 국물을 들이킨다. 아르바이트에게 쉬는 시간에 태우고 오라며 이제는 싸지도 않은 담배 두세 개비를 건네는 직원도 보인다.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분명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그곳이 몸과 마음을 더없이 힘들게 하는 곳이라면 그 냄새는 갑절에 갑절, 또 갑절로 피어난다.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 밥을 허겁지겁 먹었음에도 휴식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손목과 허리를 부여잡고 다시 도착 분량을 하차하기 위해 슈트 앞에 섰다. 이미 물류센터 주변 아파트의 불은 거의 다 꺼져있지만, 이곳은 여전히 전쟁터다. 무게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묵직한 택배들이 다시금 쏟아지기 시작했다. 새벽 3시가 넘어 앞으로 쏟아진 20킬로그램짜리 쌀자루 열댓 개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간신히 자루들을 팔레트 위로 옮긴 후 짧은 탄식과 함께 'OTL' 자세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리를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다 라인에 붙어있는 스티커 하나를 발견했다. 한 마디로 몸 챙겨가며 일하라는 내용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괜한 짜증이 치솟았다. 이곳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것을 상징이라도 하듯, 스티커는 쏟아지는 택배 상자에 밀려 점점 뜯겨져 나가고 있었다.

 슈트의 한 라인에 붙어 있던 스티커.
 슈트의 한 라인에 붙어 있던 스티커.
ⓒ 모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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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 된 몸... 주휴수당 위해 오기로 출근

출근 전, 집에서 홀로 밥을 챙겨먹다가 들고 있던 국그릇을 떨어뜨렸다. 젓가락으로 집어 든 반찬도 서너 번이나 툭 떨어졌다. 밤낮이 뒤바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흘이 지난 목요일 저녁이었다. 이제는 아무런 감각도 없는 오른쪽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가만 보니 왼손의 두 손가락은 언제 삔 건지 제대로 굽힐 수가 없었고, 손톱 하나는 이미 깨져 피멍이 들어 있었다.

손목부터 어깨, 무릎과 골반, 허벅지와 발등에 이르기까지 몸의 모든 부위가 멍투성이였다. 무엇보다 허리가 당장에라도 두 동강나고 다리는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날 저녁만큼은 반드시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다. 5일 연속 근로 시 지급되는 주휴수당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몸은 하루 쉰다고 회복될 수준도 아니었다. 차라리 수당이라도 더 받겠다는 생각에 온몸을 파스와 밴드로 도배하고 출근을 감행했다. 물류센터 사무실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출근했을 아르바이트들로 이미 가득하다.

작업 투입 전, 일요일 새벽에 시간외 야간수당으로 일할 아르바이트를 '선착순으로 열다섯 명만 지원 받겠다'고 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채워졌다. 시급은 부족하고, 각종 연장근로 수당을 포함한 임금을 그만큼 많이 챙겨주는 일이 노동시장에 많지 않으니 벌어지는 모습이다.

하루도 빼지 않고 출근하니 직원들이 이제는 반갑게 인사를 받아준다. 몇몇 직원들은 아르바이트들이 하도 바뀌기를 반복하니 얼마간은 말도 붙이지 않다가 뒤늦게 말을 붙이기도 한다.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와 빼놓을 수 없는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까지, 묵언수행을 깨고 일하니 그나마 택배 상자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만 같다.

한편 이 직원들의 이름은 따로 있다. 바로 '우정실무원'이다. 직접 배달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체국에서 각종 화물을 분류하는 일만 하기에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평소에는 오후 6시에 출근해 오전 5시쯤 퇴근하지만, 성수기에는 오전 7시 30분에서 8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난다.

아르바이트들은 정시에 퇴근시키고, 남은 일과 뒷정리를 우정실무원들이 모두 끝내야 하는 셈이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연차와 월차, 복지 카드 등 각종 혜택이 보장된다. 경력에 따라 시급도 조금씩 인상된다. 최저시급 보장은커녕 인격모독적인 행태까지 이루어진다는 몇몇 사설 운송업체에 비하면 처우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밤낮을 바꾼 야간노동에 연장근무를 포함해 하루 열 시간씩 일하는 노동 강도를 생각하면 다소 아쉽기도 하다.

몸으로 진하게 때워낸 열흘의 깨달음

"아르바이트 야근조 분들은 사무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금요일 오전 7시경, 그 무엇보다도 기다렸던 말 한 마디가 앰프를 타고 들려온다. 우정실무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조회를 마친 후, 서서히 먼동이 터오는 새벽 하늘을 보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이 버스 정류장에 드문드문 서있다.

온통 때묻은 복장으로 그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퇴근을 하자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오늘은 또 스터디가 있는 날이라, 집으로 돌아가 서너 시간을 잔 뒤 서울에 나가 공부를 하고 야간에 물류센터로 출근해야 한다. 앞으로 두 번만 더 출근하게 되면 잠시 동안의 본의 아닌 '일과 학업의 병행'도 안녕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을 열고 있는 마트 밖에 그득히 쌓여 있는 과일 상자와 선물세트들이 눈에 띈다. 밤새 수천 개의 저 상자들을 옮겼다는 것이 도통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룻밤을 죽도록 일해 얻은 수당으로, 고급스러운 선물세트 하나를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돈 쓰기는 물 쓰기처럼 쉽지만 돈 벌기는 물 파내기보다도 어렵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불현듯 이번에 벌게 될 수당은 단 한 푼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잊기 어려운 경험이었기 때문일 테다. 아마 다음 주가 되면 길거리와 사람들의 손에는 선물세트들이 가득할 것이다. 과연 한 번쯤은 생각해줄 이 있을까. 이 택배가 누구의 손에 의해 옮겨지고 옮겨져 자신들에게로 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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