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혼자 사는 나홀로족끼리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로 만나 식사한다는 소셜다이닝. 2012년 처음 등장한 후 3년이 지난 지금 그 모습이 진화하고 있다. '집밥'과 같은 소셜다이닝 전문 사이트에는 밥 말고도 댄스, 등산, 요리 등의 취미활동과 와인 마시기, 김장김치 만들기, 묵도 동아리 등 색다른 주제를 가진 모임이 개설되고 만남이 이뤄진다. 방문객 대부분이 20~30대인 '집밥'의 경우 만들어진 총 모임 수만 1만2000여 개가 넘는다.

식사나 취미 공유와 같은 이른바 생산적인 모임들 가운데 최근에는 '대화'만을 주제로 한 모임이 증가하는 추세다. 1인 가구 증가가 소셜다이닝을 출현시켰다고 하지만 모임에서는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소셜다이닝은 더 이상 혼자이기에 외로운 이들을 위한 '식사'자리가 아닌 셈이다. 그보다는 사라지고 있는 '관계' 대한 갈망이 젊은이들을 소셜다이닝으로 눈 돌리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말 못할 '고민' 털어놓는 우리는 초면

'소셜 다이닝'은 더이상 밥만 먹는 모임이 아니다. 취미활동은 물론 고민, 다짐, 수다를 떠는 대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소셜 다이닝'은 더이상 밥만 먹는 모임이 아니다. 취미활동은 물론 고민, 다짐, 수다를 떠는 대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 '집밥' 제공

관련사진보기


대학교 4학년을 앞두고 휴학한 박아무개(25·남)씨. 가족과 함께 사는 그는 기업에 인턴원서를 쓰고 있는데 서류 통과조차 쉽지가 않다. 동아리 회장을 맡기도 했고 자격증 같은 스펙도 탄탄히 쌓아왔다고 자부했던 터라 답답한 마음은 더 컸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데가 없어 찾은 곳이 '집밥'이다. 여러 모임 중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라는 공고를 내 건 모임이 눈에 띄었다. 바로 신청버튼을 눌렀다.

지난달 26일 오후 7시 박씨는 서울 신촌의 한 스터디룸으로 향했다. 이미 또래처럼 보이는 5명이 모여 있다. 둥글게 놓인 책상 앞에 앉자 곧바로 자기소개가 이어졌는데, 자신을 표현하는 키워드를 적고 키워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이다. 학교, 학과, 나이 등을 밝힐 필요는 없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입시를 위한 그림은 저와 맞지 않더군요. 고민 끝에 대학교를 자퇴했습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고요. 지금 전 우물 밖에서 나와 바다를 만난 것 같아요."

'바다'란 키워드를 적은 김아무개(23·남)씨는 만화가 지망생으로 진로를 바꾸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 다음으로 지목된 이아무개(20·여)씨도 망설임 없이 속내를 꺼내놓는다. 언론인이 되고픈 그녀는 갓 대학 입학을 앞두고 꿈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고백했다.

처음 만난 이들은 스터디룸에 모여 자신의 꿈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만난 이들은 스터디룸에 모여 자신의 꿈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 송두리

관련사진보기


참가자들은 처음 만난 상대의 고민 담긴 이야기에 질문도 하고 위로의 말도 건넨다. 번갈아 가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났다. 혼자 사는 김씨를 제외하곤 서둘러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가족, 친구에게 드러내기 힘든 속내

"친구들한테 하기에는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를 여기서는 할 수 있었어요."

모임이 끝난 후 박씨는 "솔직히 속에 있던 말을 털어놓았다고 해서 속이 펑 뚫린 느낌이 아니었다"면서도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데서 위로가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터놓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떳떳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서 "서류를 탈락했다는 둥, 힘들다는 둥, 실망스런 이야기는 못하겠다"고 답했다. 모임을 연 손아무개(27·남)씨도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내 약점이 흠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모든 걸 털어놓기에는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편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손씨와 함께 모임을 진행하는 심아무개(27·남)씨는 "밥이나 취미활동과 같은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있는 모임이 아닌데 의외로 사람들 반응이 좋아 나도 놀랐다"면서 "그만큼 속마음을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구나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이 모임은 이날로 총 15차례 열렸다. 대학 새내기부터 30대 직장인까지 약 60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가족, 스승, 선배, 동료... 사라진 곁

12,000여개의 모임이 개설돼 있는 '집밥' 사이트.
 12,000여개의 모임이 개설돼 있는 '집밥' 사이트.
ⓒ 집밥 공식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말 못할 일이 있다면 차라리 아무에게나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서강대학교 교육사회학자 전상진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독일 철학자 게오로크 지멜이 말한 '이방인' 개념을 언급하며 "가까운 사람에게는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낯선 '이방인'에게는 술술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이방인'을 찾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깊은 인간관계가 주는 강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도서관 '위즈돔' 한상엽(32) 대표는 처음 본 사람과의 만남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 '공동체 상실'을 꼽았다. 한 대표는 "나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부모나 형제, 지역사회의 스승이나 선배, 동료였다"면서 "예전에는 내가 조금만 이상해도 금세 눈치를 채고 힘이 돼 주는 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의 공동체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맞벌이 증가, 형제와 대화 단절, 빈번한 주거 이동 등으로 혈연과 지역으로 묶였던 관계가 무너지면서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던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해 내 주변 밖의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 붕괴로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어떻게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지 배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 대표는 "그나마 대학에서 학생들을 묶던 시대 담론, 그리고 동아리 같은 연결고리도 약화됐다"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관계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고 말을 이었다. 

"성장 과정에서 관계를 학습하지 못하다 보니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도 서툴러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죠. 그러다 보니 연예인, TV프로그램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거고요. IMF이후, 그러니까 2000년대 학번 세대부터는 관계 형성의 학습이 되고 있지 않아요.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이 1인 가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집밥의 박인(29) 대표도 통화에서 소셜다이닝이 다양해지고 있는 이유를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장소가 없는 데서 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더 고독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회사에서는 회사 얘기만 하고, 집에서도 나누는 이야기가 제한적이에요.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드러내야 하는데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고 있죠."

박 대표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공동체인데 공동체가 해체되면 개인도 소멸되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최근 집밥에서 심리상담과 관련된 모임도 많이 개설되고 있는 걸 보면 소셜다이닝과 같은 모임이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태그:#공동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