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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8일~29일까지 취업준비생 딸, 대학생 아들과 함께 셋이 이탈리아와 체코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남매의 성격이 많이 달라 우려하며 떠난 여행이었으나 여행하는 동안 의견을 조율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가족을 재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펼쳐보려 합니다. - 기자말

소렌토 특산품인 레몬으로 만든 상품들 레몬첼로(레몬술), 레몬사탕, 레몬 비누, 치즈
▲ 소렌토 특산품 소렌토 특산품인 레몬으로 만든 상품들 레몬첼로(레몬술), 레몬사탕, 레몬 비누, 치즈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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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엔 3명이다. 셋이 함께 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걱정 반 설렘 반이다. 몇 번의 여행경험이 있는 딸과는 달리 아들은 비행기 타는 것도 스물여섯의 나이에 처음이다. 아들에게 이번 여행지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과 체코의 프라하라고 알려줬다. 자료조사 좀 해놓으라고 했지만, 뭐에 바빴는지 별반 준비가 안 된 채로 떠나게 되었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딸에게는 맡기기가 미안했다. 내가 많이 준비해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부족한 채로 셋이 떠나려니 부담되지만,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오른다.

작년에 우연히 타 본 비즈니스석의 달콤한 추억이 떠올라 혹시나 자리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자리가 있긴 하지만 작년 가격보다도 50%가 더 올라서 3명분을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12시간을 가는 수밖에 없다. 왠지 작년보다 더 비좁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더욱이 내 오른쪽에는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앉았다.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닭장 속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닭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잠에 떨어진 사람을 깨워 화장실을 가는 것이 미안했다. 6시간이 지나 옆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후에야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오며 다리를 폈다.

불편한 비행, 하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항구도시 소렌토의 바닷가 야경
▲ 소렌토 바닷가 야경 항구도시 소렌토의 바닷가 야경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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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을 하고 로마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9시쯤이었다. 날씨도 생각보다 포근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테르미니 역에 내렸다. 역이 엄청 큰데다 환했고 건장한 아들이 있어 든든했다. 예약해둔 숙소도 쉽게 찾아 첫 시작은 괜찮았다. 아들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서 가더니 체크인까지 척척 해낸다. '첫 여행이라 잘 할 수 있을까?' '누나에게 미루기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기우였나 보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시작해서 북쪽으로 올라갈 계획인지라 다음날 바로 나폴리로 떠난다. 나폴리로 입국해서 여행하면 편할 수도 있겠지만, 나폴리의 치안이 불안하다기에 로마로 입국했다. 아침에 준비하느라 늦어졌다. 오전 7시 50분에 헐떡거리며 역까지 뛰었다. 8시 2~3분쯤 역에 도착했고, 8시 11분발 표가 있어 티켓을 발급받았다. 서둘러 기차에 오르려는데 경찰이 막는다. 개찰해오란다. 개찰기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데?

셋이 다 같이 캐리어 끌고 뛸 수는 없었다. 딸이 개찰(각인)해온다기에 아들과 나는 기다렸다. 아주 짧은 시간을 기다리는데도 길게 느껴진다. 기차는 떠날 것처럼 보이고 짧은 영어로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불안하다. 경찰은 3분 남았다며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킨다. 그때 멀리서 뛰어오는 딸이 보였다. 안심이었다. 가까스로 기차에 타서 호흡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소렌토의 시인 타소 동상과 성인 안토니오, 지오반니의 동상
▲ 조각상 소렌토의 시인 타소 동상과 성인 안토니오, 지오반니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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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젊은 청년이 다가오더니 우리 캐리어를 번쩍 들어서 선반에 얹어준다. '웬 청년이 이렇게 착한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3개를 다 얹고 나더니 돈을 요구한다. 필요 없다며 아들이 일어나 원래 위치로 내려놓겠다고 했더니 돈 받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짐을 내리려는 아들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자리를 떠난다. 여행 시작부터 긴장하게 한다.

등급이 낮은 기차인데도 시설이 좋다. 창밖풍경을 보고 오는 동안 어느덧 나폴리 센트럴 역에 도착했다. 안내책자 설명대로 기차에서 내려서 지하로 한 층을 내려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소렌토행 열차를 타기 위해 가리발디 역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는 뭐라고 하더니 우리보고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서 걸어간다. 따라가는 동안 좀 전에 기차 안에서 겪은 일이 생각나 이 사람도 돈을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어 안심할 수가 없다.

소렌토가 절벽 위에 있어서 항구로 내려가는 길은 굽이 굽이 돌아서 가야 한다.
▲ 항구로 가는 길 소렌토가 절벽 위에 있어서 항구로 내려가는 길은 굽이 굽이 돌아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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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가서는 알아서 가겠노라며 돌려보냈다. 무사히 소렌토행 티켓을 끊어 기차를 기다리는데 사람들로 북적인다. 역 주변은 지저분하고 스프레이 낙서가 잔뜩 칠해져 있는 것이 왠지 불안해 보인다. 실제로 딸은 수상한 손길이 접근하는 것을 느끼고 가방을 앞으로 고쳐 맸다.

우린 소렌토로 갔다. 소렌토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음악시간에 배운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노래로나 자동차 이름으로 많이 들어본 익숙한 이름이라 어떤 모습의 도시일지 기대를 해본다. 소렌토에 내렸는데 비가 내린다. 한 두 방울 내리다 그칠 줄 알았는데 빗줄기가 굵어진다. 여행 시작부터 비로? 무거운 캐리어는 잘 끌리지도 않고 숙소로 가는 길은 멀고, 추울까봐 껴입은 옷 때문에 몸은 둔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숙소 주소를 보여주며 물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한참을 검색하더니 위치를 알려준다.

'이탈리아 사람 참 친절하네.'

그가 가르쳐준 주소를 아들이 일단 확인해보고 오겠다며 모자를 뒤집어쓰고 빗속으로 나간다. 딸과 나는 비를 피하며 짐을 지키고 서 있었다. 한참 후에 아들이 돌아오더니 숙소를 찾았다며 같이 가잔다. 거기서도 한참을 더 가서야 숙소가 있었다.

멋진 숙소에 맛집까지... 이때까지는 행복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남아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조명이 있어 아주 작은 도시임에도 야경이 예쁘다.
▲ 소렌토 거리 야경 크리스마스 장식이 남아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조명이 있어 아주 작은 도시임에도 야경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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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행 때는 도미토리(다인실)를 이용했지만, 이번에는 인원이 셋이라서 트리플룸을 구했다. 두 사람까진 도미토리 비용이 쌀 수도 있지만, 3명이 사용하는 트리플룸 방값은 다인실을 3명이 이용하는 비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트리플룸이 비용면에서도 나쁘지 않고, 화장실이나 짐 보관하기에도 편리했다. 방은 넓고 침대 옆 바구니에 비스킷, 음료, 물, 에스프레소용 커피 티백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먹어도 되냐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아침마다 새로 채워준다며 걱정 말고 먹으라며 환하게 웃어준다. 숙소도 깨끗하고 직원도 친절해 마음이 놓인다. 짐을 내려놓고 시내구경을 나간다.

숙소에서 바닷가까지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멀지 않은 거리였다. 한적한 겨울 바닷가 느낌이 좋다. 바닷가의 기념품 가게는 이른 저녁인데도 대부분 문을 닫은 것으로 보아 관광객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모래밭에 쓴 글씨가 밀려온 파도에 지워지는 것이 재밌어 몇번을 썼다 지웠다 하며 놀았다. 파도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피하는 놀이도 재밌었다. 그러다 파도에 신발을 적실 뻔 했다. 바닷가 마을인데 갯내나 물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바닷가는 마을보다 한참 아래에 위치해 있다. 숙소 근처 중심지로 올라오는 동안 작은 골목길에 있는 가게들도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다.

로제 와인, 마르게리타 피자, 리소토, 샐러드
▲ 소렌토 맛집의 메뉴 로제 와인, 마르게리타 피자, 리소토,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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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해결하러 소렌토의 맛집이라는 한 식당에 들어갔다. 파스타 풀코스, 마르게리타 피자, 리소토, 와인을 주문했다. 우선 와인이 먼저 나오자 여행의 행운을 빌며 건배를 했다. 피자의 본고장에서 먹는 피자는 어떤 맛일까 궁금해 하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우리네 피자보다 부드럽고 맛있다. 난 오히려 피자보다 리소토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와인은 맛있는데다 가격까지 착하다. 와인 한 병에 7유로, 피자 한 판에 6.5유로였다.

한적하고 작은 항구도시 소렌토. 풍경도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고 물가도 저렴하고 여행의 시작이 좋다. 이번 여행은 힐링으로 시작해 아름답게 마무리해야지. 이탈리아 여행은 재밌기도 하지만 소매치기가 많아 조심해야 한단 얘기를 많이 듣고 긴장했는데 이번 여행은 순탄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후반에 벌어질 일들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소렌토의 스쿨 버스는 이탈리아답다고나 할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버스 좌석도 아이들 체격처럼 작다.
▲ 스쿨 버스 소렌토의 스쿨 버스는 이탈리아답다고나 할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버스 좌석도 아이들 체격처럼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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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탈리아, #프라하, #진토니오, #소렌토,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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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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