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시리즈나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보여준 워쇼스키 남매의 세계관이 전 우주로 확대됐다. 그러나 그렇게 확대된 세계관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환생 혹은 재생과, 아브라삭스 가문이라는 이름에서 더듬어 볼 수 있는 선과 악, 본질과 허상이라는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주피터 어센딩(Jupiter ascending)>은 목성이 빛나던 날 태어난 밀라 쿠니스(주피터 역)가 인간과 우주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인간으로서,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주피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를 로마 신화에서 새롭게 부르던 이름이다. 그리고 '발렘'의 우주기지가 있는 목성을 우리는 '주피터'라 부른다.

영화 <주피터 어쎈딩> 유난히 목성이 빛나던 밤에 태어난 주피터!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썰을 풀기 시작한다.

▲ 영화 <주피터 어쎈딩> 유난히 목성이 빛나던 밤에 태어난 주피터!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썰을 풀기 시작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그러나 이 영화는 <매트릭스>의 창조성과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깊은 성찰을 이어주지 못하고 '판타지를 내세운 블랙코미디'에 불과하다. 확장된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스토리, 색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연기와 멜로 라인은 남매가 아니었던 '워쇼스키 형제' 시절 그들이 보여준 명성에 흠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아른거리는 과거의 명작들, 의도적인 오마주인가

영화 후반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개봉 일을 수개월이나 연기했다고 한다. 과연 CG로 구현한 지구와 우주공간, 그리고 목성의 대적반에 존재하는 아브라삭스 가문의 ''발렘'기지는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볼거리다.

행성 주위로 고리처럼 존재하는 인간들의 서식처나 끝없는 암흑 속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세워진 우주정거장의 정교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연출과 시나리오야 어쨌든 비싼 입장권이 아깝지 않은 기술력임에는 틀림없다.

영화 <주피터 어쎈딩> <주피터 어쎈딩>에서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은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에 이은 또 하나의 성과이다.

▲ 영화 <주피터 어쎈딩> <주피터 어쎈딩>에서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은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에 이은 또 하나의 성과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하지만 과도하게 전 우주적 세계관을 CG로만 표현하려 했던 욕심 때문이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것이 있었으니 과거 영화의 명장면을 오마주처럼 늘어놓은 것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비슷한 장면들이 겹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반복되어 나타나는 영화의 모방 장면은 정말 안타까웠다.

예를 들어, 주피터를 구하러 나타난 '케인'이 스케이터 부츠를 신고 날아다니는 장면은 <아이언 맨>을 연상 시킨다. 우주선들이 거대한 빌딩 사이를 누비며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스타워즈>의 우주공간 전투 장면과 거의 흡사하고, 케인과 주피터가 스팅어를 찾아가는 장면은 <인터스텔라>에서 본 옥수수 농장 길과 다름없다. 게다가 주피터가 강제로 '발렘'과 혼인식을 올릴 때 타고 움직이던 무중력 발판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시리즈에서 우주연합 회의 장면과 거의 똑같다.

단순히 영화 스토리상 나오는 비슷한 장면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비슷하다. 이는 혹시 워쇼스키 남매가 그들의 세계관에 똑같이 등장하는 '환생'이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영화 유전자의 오마주 기법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주피터 어센딩> 의외로 단순한 이야기​

우주 사냥꾼으로 열연한 배두나의 비행선이 옥수수 밭을 오르는 장면에서 '크롭 서클'이 눈에 들어온다. 수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나타나는 '크롭 서클'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이다. 커다란 밀밭이나 옥수수밭 혹은 넓은 땅 위에 실체를 모르는 기하학적 무늬가 생기는 현상 말이다. 이제까지 그 정체에 대해 다양한 설이 파다하지만 <주피터 어센딩>에서는 이 현상이 바로 외계 비행선의 이착륙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다.

영화 <주피터 어쎈딩> 워쇼스키 남매의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배두나. <주피터 어센딩>에서는 우주 사냥꾼으로 조연에 그치지만 강렬한 인상이 돋보인다.

▲ 영화 <주피터 어쎈딩> 워쇼스키 남매의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배두나. <주피터 어센딩>에서는 우주 사냥꾼으로 조연에 그치지만 강렬한 인상이 돋보인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게다가 케인과 아브라삭스 가문간에 치열한 도심속 총격전과 빌딩이 무너지는 싸움이 있어도 자동 복구되며 이 사건을 본 사람들의 기억이 지워지는 건 <맨 인 블랙>과 흡사하다.

지구의 역사를 만들어 온 아브라삭스 가문의 이야기를 대입 시키는 건 인류의 기원이 외계로부터 시작됐다는 '라엘리언 운동'과도 비교할 수 있다. 본래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브라삭스 가문이 살던 행성의 종족이며, 그들은 지구 역사에서 1억 8천만 년 동안이나 존재했던 파충류를 멸종 시키고 현재로부터 10만 년 전에 출현한 초기 유인원과 자기네 인간의 유전자를 조합해 탄생시킨 것이 현재 지구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우주의 수많은 행성을 찾아내 생명체들을 만들었으며 인구 증가로 더 이상 인간이 거주할 수 없을 때가 되면 '수확'을 시작한다. '수확'이란 인간들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빼앗아간 인간들의 수명을 유전자 조합체로 만들어 다른 종족과 거래를 하여 커다란 부를 축적한다. 또한 그 조합체로 자신들의 가문 역시 죽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이한 건 아브라삭스 가문의 인간이 죽으면 그 유전자는 우주 어디에선가 재조합되어 환생을 한다는 것이다. 주피터를 놓고 아브라삭스 가문간의 암투가 벌어지는 이유도 주피터의 몸에 그들 어머니의 유전자가 조합·생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 마쓰모토 레이지가 구상한 영원한 생명과,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의 권력 암투는 이미 <은하철도 999>나 <캡틴 하록>, <천년여왕>에서 다뤄졌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데 워쇼스키 남매의 마법은 정말 여기까지인가 싶다.

어설픈 '썰'들의 조합으로 탄생한 <주피터 어센딩>

하나씩 이 영화의 스토리 조합을 풀어나가다 보면 어느 것 하나 신선한 것이 없다. 영화관을 나오며 내내 정지영 감독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란 영화가 떠오르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기계의 대립, 인간을 담보로 생명을 유지하는 기계,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논한 <매트릭스>의 창의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난상토론으로 끌어낸 것 같은 워쇼스키의 스토리 캐스팅은 <주피터 어센딩>을 코믹 판타스틱 영화로 주저앉혀 버렸다.

게다가 CG의 화려한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주연의 진지한 연기는 오히려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나름 진중했던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이어 전 우주로 확장된 세계관 안에서 인간의 본질을 조명하려 했다던 감독의 목표는 어센딩(Ascending) 되지 않는다. 단지 디센딩(Descending)될 뿐이다.

주피터 어센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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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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