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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회의 형태로 앉아 있을 때만 해도 정말 농협간담회인 줄 알았다.
▲ 농협간담회 이렇게 회의 형태로 앉아 있을 때만 해도 정말 농협간담회인 줄 알았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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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사람들은 이런 재미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이런 일의 시작은 그 마을 이장님의 방송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장님의 방송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아~ 알리 것습니다. 흰돌리마을(안성 금광면 석하리, www.hindolri.com) 주민 여러분. 오늘(10일) 오전 11시에 농협간담회가 있사오니 조합원 여러분께서는 한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시기 바래유."

시골 '이장님표' 방송은 항상 그 일을 코앞에 두고 이루어진다. 며칠 전부터 사전에 알리는 법은 드물다. 그 방송을 듣는 주민들이 노인들이다 보니 사실 며칠 전부터 알려줘도 잘 기억을 못한다. 바로 당일에 알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서로 터득한 거다. 사실 도시라면 "바빠 죽겠는데, 미리 이야기 안 해주면 어떡하란 말인가"라고 할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마을회관에 오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맨 먼저 오는 것은 그 마을 할머니들이다. 왜, 뭐하려고? 그렇다. 음식 준비하려고 먼저 온다. 김 할머니, 정 할머니, 박 할머니 등이 한 분씩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농협간담회'라 방송을 들어놓고도 이 할머니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는 게다.

이 마을 부녀회장 정순자씨의 돼지고기 썰기는 좀 있다가 벌어지는 잔치를 알렸다.
▲ 부녀회장 이 마을 부녀회장 정순자씨의 돼지고기 썰기는 좀 있다가 벌어지는 잔치를 알렸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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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할머니들은 마을회관 문을 열고, 간단한 청소를 하고, 주방을 정리한다. 오늘은 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그 꺼낸 고기를 큰 솥에 넣는다. '삶은 돼지고기'를 만들 모양이다. 잔치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렇게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마을 할아버지들이 하나둘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꾸부정한 김 할아버지, 작지만 꼿꼿한 전 할아버지, 머리를 빡빡 깎은 원 할아버지 등이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마을회관에 오는 순서(할머니 먼저, 할아버지 나중)는 이 마을회관이 생기고부터 자연스레 정해져 있다.

농협직원의 도착에 환한 미소! 그 이유가 뭘까?

오전 10시 40분이 되니 농협 직원이 도착한다. 농협 직원은 뭔가를 몇 박스를 내린다. 무얼까. 마을 주민들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 흐뭇하게 그 직원을 맞이한다. 마치 산타 할아버지를 맞이하는 꼬마들처럼 말이다.

흰돌리마을 임능순씨가 배당금을 받으며 서명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을 이종필 이장이 지켜보고 있다.
▲ 서명 흰돌리마을 임능순씨가 배당금을 받으며 서명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을 이종필 이장이 지켜보고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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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 거실에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농협직원이 마을주민들에게 책자를 나눠준다. 농협 한해 살림내역이 담긴 책이다. "지금부터 시작하것습니다"란 이장님의 개식사를 시작으로 농협직원의 책 설명이 시작된다.

금광농협 한해 살림살이와 동정들이 장황하게 설명된다. 듣다가 참지 못한 김 할아버지가 한 소리 한다. "그 많은 걸 언제 다 읽을겨. 그냥 책에 있는 걸 뒤에 우리가 읽어 볼 텐게로보고한 걸로 혀"라고. 그럼 옆에 있는 어르신들도 "그랴 그랴. 그렇게 혀"라고 맞장구를 친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동의를 하고, 장황한(?) 농협 직원의 보고가 끝난다. 사실, 그렇게 말한 김 할아버지는 간담회 후에 그 책자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이 살림살이에 대해 질문하실 게 있으면 하세요?"라는 농협직원의 말에 주민들은 묻는 둥 마는 둥 한다. 정말 궁금한 게 없어서 그런 건지, 궁금한 게 있는데도 묻지 않는 건지 알 수 없다.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이쯤하고 나니 궁금해진다. 평소 마을회의를 해도 많이 오지 않는 마을 분들이 오늘은 왜 이리도 출석률이 좋을까. 아하, 바로 이 시간을 기다렸던 거다. 배당금 나눠주는 시간이다. 배당금이라?

흰돌리마을 부녀회원들이 마치 공짜 돈이라도 탄 듯 좋아하면서 자신들의 배당금과 서류금액을 맞춰 보고 있다.
▲ 돈 세어 보기 흰돌리마을 부녀회원들이 마치 공짜 돈이라도 탄 듯 좋아하면서 자신들의 배당금과 서류금액을 맞춰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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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오늘은 금광농협에서 농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의 수익금을 배당해 주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음식 준비도 했고, 출석률도 평소보다 훨씬 좋았고, 궁금한 게 있어도 묻지 않았던 거다. 마을 주민들은 '농협 간담회'라고 듣고, '농협 배당금'이라 읽었던 게다.

"이름 부르면 나와서 여기다 싸인 해유"라는 이장님의 목소리에 모두가 유치원 어린이 마냥 "여부가 있것시유"라며 좋아들 하신다. 얼마나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시간이던가. 오늘 모임의 하이라이트가 되니 좀 전 회의하던 엄숙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유쾌함만이 마을회관 거실에 가득하다.

"박 00" 이장님의 굵직한 목소리에 "예!"라며 학교선생님의 출석을 받아 들은 어린아이처럼 배당금 앞으로 간다. 돈 봉투를 받아들고는 서명을 한다. "사인들이 멋지시네"라며 농협 직원이 너스레를 떨자, 그 자리에 웃음폭탄이 터진다. 서명이 더 잘 되는 이유는 엔도르핀이 섞인 경쾌한 서명이라서일 게다.

이 날은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선물도 안겨 준다. 이래서 돈도 받고 선물도 받는 잔치가 된다.
▲ 선물까지 이 날은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선물도 안겨 준다. 이래서 돈도 받고 선물도 받는 잔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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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당금은 얼마일까. 거기에 있는 모두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것인 순간이다. 확인하고 나서도 모두 좋아한다. 말하자면, 예기치도 못한 '공짜 돈'인 셈이다. "앗따, 누군 많이 받았네 그려. 그 돈 갖고 집을 사도 되것어"라며 원 할아버지의 농담이 터지면, 온통 웃음바다가 된다. 2014년도 한 해 배당금이라고 해봐야 5만~10만 원, 많아도 20만 원 안쪽이다.

이렇게 한바탕 '배당금 받기' 시간이 끝난다고 끝이 아니다. 농협 직원이 가져온 '몇 박스'에는 농협이 조합원들에게 주는 감사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그릇 세트다.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돈도 받고, 선물도 받고.

아까부터 삶았던 돼지고기는 이날이 잔치임을 알리는 서막이었던 거다. 모두가 마을회관에 앉아 공동식사를 하는 걸로 '농협 간담회'가 끝난다. 아니 마을잔치가 끝난다. 내가 사는 흰돌리마을의 오늘 하루가 이래서 즐거웠다.

1년 치 배당금이래 봐야 5만~20만 원 사이다. 농협 상품권도 이날의 하나의 선물이다.
▲ 배당금 1년 치 배당금이래 봐야 5만~20만 원 사이다. 농협 상품권도 이날의 하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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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농협, #금광농협, #흰돌리마을, #배당금,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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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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