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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검사가 법정에 섰다. 재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판을 받기 위해서다. 판사나 검사가 당사자로 법정에 서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2건을 소개한다. 두 사건 모두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른바 '백지구형 사건'과 '벤츠 여검사 사건'인데, [판결 대 판결] 열 번째 이야기는 '법정에 선 여검사' 1편 백지구형 사건을 먼저 소개한다. - 기자의 말

드라마나 영화 속 검사는 용감하다. 조폭이나 권력과 정면승부를 벌인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상사의 부당한 지시도 당당히 거부한다. 징계나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공의 적과 맞서 싸우는 '강철중 검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그런 검사를 현실에서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방증일까.

검사 출신인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서지도 못하고 무기한 대기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검사였던 그가 사건 축소·은폐에 간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권력과 외압에 굴복해 수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책임을 통감하고 자진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그를 두둔하는 쪽에서는 박 후보자가 당시 말석(말단) 검사에 불과했기 때문에 책임을 묻는 건 부당하다고 맞선다.

어느 쪽 의견을 따르든 박 후보자가 최종 판결을 내리는 대법관 후보로서 다소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과연 말단 검사는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게 맞을까. 여기에 '아니오'라고 맞서다가 중징계를 받고 소송 중인 어느 여검사 사건을 소개한다. 이 검사의 행동이 징계사유인지 아닌지는 독자들의 판단이다.

임은정 검사는 용감한 검사인가, 막무가내 검사인가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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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사건' 검사, 용감한 무죄 구형(한겨레)
절차 무시하고 무죄구형 '막무가내 검사'(동아)

2012년 12월 31일자 신문기사 제목이다. 두 신문은 어느 검사의 행위를 두고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주인공은 2001년 임용된 임은정 검사였다. 그는 2011년 과거사 재심 사건 공판을 맡게 되었다. 어떤 사건이었을까.

이 사건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불법 체포된 고 윤길중 전 의원이 유죄판결을 받았던 이른바 '통일사회당' 사건이다. 1962년 혁명재판소는 북한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당시 통일사회당 간부들에게 중형을 내렸다.

윤 전 의원도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에게 적용된 법률은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이 법은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처벌하기 위해 1961년 6월 급조되었고 더구나 부칙은 3년 6개월 전까지 소급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형벌불소급이라는 형사법의 원칙에도 어긋났다.

더욱이 수사단계에서부터 불법체포와 구금이 자행되었고, 간부들의 활동이 북한에 동조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한 마디로 엉터리 법으로 엉터리 재판을 한 격이었다. 2011년 5월 윤 전 의원의 유족은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서울중앙지법 제28형사부 재판장 김상환)은 이듬해 10월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윤 전 의원을 제외한 인사들은 2012년 2월 대법원에서 이미 무죄판결을 받았다.

첫 공판기일 전날인 2012년 12월 17일 공판검사인 임 검사는 "이 사건도 무죄가 확실시 된다"면서 수사검사에게 무죄구형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수사검사는 "백지구형(재판부가 법에 따라 판단을 하도록 맡기는 것)을 하자"고 제시해 구형 합의가 되지 않았다.

상급자인 공판2부장은 백지구형을 지시했다. 그러자 임 검사는 이의제기권을 행사하였다. 그후 검찰에서는 구형을 놓고 회의가 열리기도 했는데, 공판2부장은 임 검사 대신 이아무개 검사에게 사건을 넘기고(직무이전명령) 백지구형을 지시하였다.          

법정 검사출입문 잠근 뒤 '과거사 사건' 무죄 구형한 검사

다음날 오전 11시, 공판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전 10시경 임 검사는 검찰 내부게시판에 '징계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제 능력 부족으로 상급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지만, 해당 재심 사건의 무죄구형은 재량권 행사가 아니라 의무라고 확신하다"면서 법정으로 향했다. 그는 검사출입문에 "무죄구형을 하겠다"는 쪽지를 붙이고 문을 잠근 뒤 11시 무죄를 구형했다. 법원도 당일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상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무단으로 무죄구형을 한 검사를 용인할 수 없었다. 검찰총장은 징계를 청구하였고, 검사징계위원회는 직무상 의무위반 등을 이유로 2013년 2월 임 검사에게 정직 4월의 징계를 의결하였다. 징계사유는 총 4가지였다.

① 상사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단으로 재판 참석해 무죄구형했다.
② 법정의 검사 출입문을 잠가 다른 검사의 구형을 못하게 했다.
③ 내부게시판에 무죄구형 관련 글을 게시하여 검찰 내부혼란, 국민 신뢰 훼손을 초래했다.
④ 반일 연가 후 퇴근했는데, 오후 2시까지 근무하지 않고 12시경 법정에서 퇴근했다.

임 검사는 징계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 징계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백지구형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구형이란 검사가 법원에 형에 관한 의견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판결 선고를 앞두고 검사가 법정에서 '…한 점을 고려하여 피고인을 ○○형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사건처럼 무죄가 명백한 사유가 있거나 법률이 위헌으로 밝혀진 경우, 검사의 구형이 관건이 된다. 이때 검사는 대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적의(適宜)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식으로 구형을 한다. 이것을 백지구형이라고 한다.

백지구형을 사실상 무죄구형으로 보는 입장도 있으나(무죄를 확신할 수 없을 때 백지구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검찰이 의견을 내지 않고 법원에 맡기는 직무유기로 보기도 한다. 임 검사는 후자 쪽의 입장으로 "무죄구형은 재량이 아니고 의무"이므로 "백지구형이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의 구형인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1심 "백지구형, 적절하지 않지만 정당하다"

재판에서는 징계의 타당성 못지 않게 백지구형의 정당성도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먼저 1심 법원(행정법원 제11부 재판장 문준필)의 판단부터 보자. 1심은 임 검사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징계사유는 상당 부분 인정했고, 다만 징계수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견해였다.

재판부는 검사장이 아닌 부장검사를 통해 이루어진 직무이전명령은 검찰청법을 어겨 위법하다고 했다. 따라서 임 검사에게 공판검사 직무를 수행할 권한을 인정했다. 하지만 무죄구형은 상급자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행위라며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백지구형이 정당하다고 봤다. 백지구형이 "재판부에 일임함으로써 사실상 구형권을 행사하지 아니한 것과 같은 외형"이라면서도 ▲ 과거 독재정권에서 발생한 형사사건에 한정되고 ▲ 무죄구형까지 하는 경우는 예외적이고 ▲ 사실상 무죄구형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 과거의 유죄판결이 현재 관점에서 무죄가 됨에 따른 검찰의 곤혹스런 입장이 반영된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지구형은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다 하더라도 적법한 구형이고 정당성도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임 검사에겐 "검사 출입문을 시정한 후 무죄구형하는 행위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평가될 수 없다"면서 "무죄구형만이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할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징계사유 ③에 대해서는 ▲ 검사의 대외적 의견표명은 기관장의 승인이 필요하나 내부 의견 표명에는 제한이 없고 ▲ 게시물의 내용이 용인할 수 있는 수위이며 ▲ 검사도 헌법에 따른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 점을 들어 징계사유가 아니라고 보았다. ④는 근무시간 위반 행위로 징계사유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가 보기에 임 검사는 상급자의 지시를 어기고, 무죄구형을 하거나 근무시간을 위반한 징계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정직 4월에 해당할 징계사유는 아니라고 판단, 징계취소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양쪽 다 불만이 있는 판결이었다. 검찰로서는 징계가 재량권 남용이라는 지적이, 임 검사로서는 백지구형이 정당하다는 판단이 그랬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결국 3심까지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걸 검찰이나 임 검사 모두 잘 알고 있었다.

1심과 2심 모두 "징계취소" 판결... 백지구형 평가는 상반

'백지구형' 임은정 검사 징계사건 1심과 2심 판결 비교
 '백지구형' 임은정 검사 징계사건 1심과 2심 판결 비교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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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서울고법 제7형사부 민중기)도 징계취소 쪽으로 갔다. ▲ 부장검사의 직무이전명령이 위법하므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점 ▲ 임 검사의 게시물은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 ▲ 일찍 퇴근한 것은 징계사유가 된다는 점은 1심과 같았다. 하지만 백지구형에 대해서는 1심과 전혀 상반된 평가를 했다.

일단 관련 법률부터 보자. 형사소송법(302조)은 "피고인 신문과 증거조사가 종료된 때에는 검사는 사실과 법률적용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의견진술은 검사의 의무이다. 또한 검찰청법(4조 1항 3호)은 검사의 직무와 권한으로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를 명시하고 있다. 검찰 구형지침에도 "검사가 구형을 함에 있어서는 죄에 상응하는 형을 구형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검사의 구형이 재판에 반드시 전제되거나 검사의 구형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검사는 법원에 법령의 정당한 적용을 청구할 권한이 있고, 사실과 법률적용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무죄일 경우 무죄를 선고하여 달라는 의견을, 유죄일 경우 그 죄에 상응하는 형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법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항소심은 강조했다.

2심 "검사는 의견 진술 의무 있다... 백지구형은 부당"

항소심은 '백지구형'이 "법과 원칙에 부합하는 법원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고 의견을 진술하지 않거나 의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여 검사로서 의견을 진술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적법한 의견 진술이나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라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검찰 측은 백지구형이 "유무죄 심증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과거 검찰 및 법원의 판단을 지금의 기준에서 오류였다고 단정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는 의견진술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법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백지구형은 적법한 지시가 아니고, 무죄구형은 징계사유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2심도 징계사유는 일부 인정되나 정직처분은 너무 과하다는 판단이었다. 

참고로 검찰 지침에 따르면 정직 처분은 ▲ 직무관련성은 없으나 정당한 이유없이 500만 원 이상 금품, 향응 수수 ▲ 300만 원 이상 공금횡령, 유용 ▲ 피의사실공표, 영장발부 누설 등 수사기밀 유출 정도에 해당해야 가능하다. 검찰은 임 검사의 무죄구형이 이런 정도의 징계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법원은 재량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사건은 검찰 측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대법원은 어떤 판단 내릴까

2014년 8월 28일 항소심 법정에 선 임 검사는 최종 진술에서 "어차피 무죄 날 사건이고, 검사의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국가의 정의에 대한 의지의 표출로서, 재판부에 대하여 정의와 법에 가장 부합하는 선고를 촉구해야 하는 검사의 의무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13년 기자와 주고 받은 쪽지를 통해서도 임 검사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 검찰 이익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이익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법하거나 부당한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법과 정의에 따라야 한다는 임 검사, 그는 막무가내 검사인 걸까 아니면 용감한 검사인 걸까. 박상옥 후보자를 대법관으로 임명제청한 대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태그:#백지구형, #박상옥, #임은정, #임은정검사,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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