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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소년범의 말, 이제는 성인이 된 그의 말을 과연 사법부는 진지하게 들어줄까? 원점에서 이 사건의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까?

지난 2013년 6월,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소년범과 약촌 오거리'편을 방영했다. 이 사건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명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지난 2000년 8월, 전북 익산에서 벌어진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용의자 최아무개(31, 당시 나이 16세)씨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10일 오전 11시 광주고등법원 법정에 다시 섰다.

2001년 그는 이 법원에서 택시기사 살해 혐의를 받고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상고를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교도소 동료들의 말에 자포자기하며 상고도 포기했다. 그는 10년의 징역 생활을 모두 살고 지난 2010년 8월 출소했다.

그러나 "죽이지 않았다"는 이 말 한 마디가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난 2013년 4월 인권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이 사건의 진범이 정말로 최씨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재심 여부는 담당판사가 한 번 바뀌고 2년이 지나서야 검토에 들어갔다.

이 사건을 맡은 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서경환)은 이례적으로 재심사건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심문기일을 10일 열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통상 재심 개시 여부에 대한 판단은 서면심리를 하는데, 이 사건은 심문기일을 잡았다"면서 "재심 기각을 말해주기 위해 심문 기일을 잡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재심 개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여러 정황들이 최씨의 살해 입증 못해"

심문이 진행된 301호 법정은 모두 100석의 제법 큰 법정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자리한 이는 최씨와 가족, 변호인과 언론인뿐이었다. 2년 전 방송 보도 당시에 비해 관심도는 줄었지만, 조용한 법정 안에 자리한 이들은 최씨와 박준영 변호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박 변호사는 약 10분간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재심 필요성을 절절하게 주장했다.

이날 박 변호사는 재심 개시의 필요성을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강조했다.

▲ 사건 조사 및 재판 당시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목격자의 등장
▲ 기존의 목격자의 추가 진술
▲ 택시의 타코미터 기록과 최씨의 통화기록 등을 볼 때, 최씨의 범행이 성립되기 힘든 점
▲ 최씨의 자백보다 3년 후 자신이 진범이라고 밝힌 김모씨의 자백이 더 객관적으로 부합하는 점
▲ 범행 현장 등에서 최씨의 지문 및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고, 일부 발견된 지문이 최씨의 것이 아니라는 점
▲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 체포와 감금, 폭행 등을 당한 사실

변호인은 구체적으로 이 사건의 조사와 결과가 최씨를 살인범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새로운 목격자에 대해 박 변호사는 "당시 5톤 트럭 운전수 A씨는 문제의 택시 정차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이다"라며 "그는 당시 최씨가 몰았던 오토바이를 보지 못했고, 최씨와 택시기사의 다툼도 보지 못했다고 우리에게 진술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이 부분이 의심이 되면 직접 증인으로 불러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백 당시, 경찰의 가혹행위로 힘들었고 믿어주는 이가 없었다"

박 변호사의 재심 개시 필요성을 듣고 재판부는 당사자인 최씨를 불렀다. 재판부는 1심 당시 혐의를 부인한 그가, 2심에서 혐의를 인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재판 당시 어린 나이(만 18세 이하)였지만, 살인이 중한 범죄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자백을 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요지였다.

최씨는 "당시에는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2심 당시 국선 변호인은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계속 부인하면 재판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면서 형이라도 줄여보자고 설득했다,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당시 혐의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징역 15년의 1심형이 2심에서는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재판부의 질문이 끝나고 변호인 심문 기회도 주어졌다.

이 심문에서 최씨는 조사 당시 수사기간의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증언을 했다. 최씨는 "조사를 받을 때마다 진술이 틀렸다고 대기실 같은 곳에서 걸레봉으로 때리고 뺨도 맞았다"며 "머리를 바닥에 박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조사를 이유로 잠을 재우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최씨에 따르면, 잠을 재우지 않았던 기간은 4일 가까이 됐다. 

그는 체포 당시에도 경찰서로 가지 않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 집중 추궁을 당했으며, 체포 후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싶다는 요구도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당시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부엌칼에 대해서도 "내가 오토바이 안에 가지고 있던 칼은 낚시를 할 때 사용하는 과도칼이었는데, 경찰이 상처와 다르다고 해서 부엌칼이라고 말했다"면서 "부엌칼 압수 당시에 저는 다방 입구에 있었고, 형사들이 주방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런 내용들을 왜 검찰 조사에서는 말하지 않았고 범행을 부인하지 못했나"고 질문을 했고, 최씨는 "경찰 조사 때 받은 내용의 질문을 (똑같이) 물어봐서 부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날 재판부는 심문이 끝나고 최대한 빨리 재심 개시 여부를 확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준영 변호사는 "최씨에 대한 재심이 개시되고, 진범에 대한 수사를 하여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기소를 하는 것이 순리이고 정의라 할 것이다"면서 "정의로운 사법을 위한 첫 걸음이 재심으로 시작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오는 8월 9일에 만료된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지난 2000년 8월 새벽 전북 익산의 약촌오거리에서 40대 택시기사가 살해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수사를 맡은 익산경찰서는 목격자였던 최씨(당시 나이 16세, 현재 30세)를 3일 만에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했다.

익산경찰서는 최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택시 앞을 지나가다 택시기사로부터 욕설을 듣자 격분하여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칼로 운전기사를 찔러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살해된 택시기사는 어깨와 가슴 등에 12곳이 찔린 채 발견됐다.

수사 결과가 이렇게 발표됐지만 최씨를 살해범이라고 할 만한 결정적 물증은 없었다. 최씨가 범행 당시 사용했다는 칼과 입었던 옷에서 택시기사의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 당시 사용한 칼도 최씨의 증언과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것이 일치하지 않았다. 결정적 증거는 최씨의 자백만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씨는 1심에서 경찰로부터 자백을 강요하는 물리적 폭력 등이 있었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심에서는 무죄 주장을 번복하고 범행을 자백하는 등 진술이 엇갈렸다. 추후에 최씨는 형량을 줄이자는 국선변호인의 설득과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자포자기가 자백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 최씨는 대법 상고도 포기하고 2심의 징역 10년형을 그대로 살았다. 2심은 형량을 1심보다 5년 줄여줬다. 최씨가 복역하던 중에 진범이 잡혔다는 소식도 들렸다. 지난 2003년 6월, 군산경찰서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강력한 진범 용의자를 잡았다. 경찰은 그에게서 "택시강도를 하려다가 기사를 살해했다", "범행을 저지르고 온 친구를 숨겨주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당시 체포된 용의자는 범행 상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진범으로 지목된 이는 이후,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후 그는 게임에 심취하여 거짓말로 자백을 꾸며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결국, 수사는 흐지부지 종결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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