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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슬람 과격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악행이 분노를 사고 있다. 일본인 두 명을 잇따라 참수한 데 이어 요르단 조종사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그 잔혹함에 치를 떨게 하고 있다.

알카에다나 IS 같은 근본주의 테러 조직의 활동이 활발해질 때마다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다. 일부는 IS의 문제를 전체 이슬람의 문제인 것처럼 단정짓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권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이슬람=테러리스트'라는 색안경을 쓴 이들로 인해 속앓이만 할 뿐, 변명하기도 쉽지 않다.

방글라데시인 사쟈한(31·Shajahan)씨는 한국에 온 지 4년째다. 여권 유효기간 만료를 앞두고 여권사진을 막 찍고 나온 그를 지난 7일,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서 만났다. 여권 속 사진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말에 그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 6kg이나 빠졌어요. 방글라데시에 있을 때보다 살 빠져 걱정이에요."

그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240km 떨어진 치타공주 락시미푸르(Lakshmipur)군 출신이다. 락시미푸르는 무슬림 비율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상당히 종교적인 지역이다.

그는 작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잠시 방글라데시에 갔다가 돌아왔다. 본국에 있을 때는 커피를 마신 적이 없는 그는 한국인들과 일하면서 식사 후에 한 잔씩 마시는 게 습관이 됐다. 그래서인지 고향에서 차를 마셨을 때 맛이 없다고 느꼈고, 자기 입맛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IS? 그런 거 몰라요... 방글라데시 뉴스에 그런 거 안 나와요"

한국 사람과 종교적인 문제 없는 반면,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종교적인지 아닌지 갖고 다투는 경우 있다는 방글라데시인 사쟈한씨
 한국 사람과 종교적인 문제 없는 반면,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종교적인지 아닌지 갖고 다투는 경우 있다는 방글라데시인 사쟈한씨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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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은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고향에 있을 때처럼 종교적인 사람이다.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공장 안에 놓인 컨테이너를 기숙사로 쓰고 있는 그는 매일 기도한다. 그에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IS(이슬람국가)를 알고 있는지, 같은 종교를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위에서 편견을 갖고 대하는 사람은 없는지 물었다. 대답은 의외였다.

"IS가 뭐예요? 그런 거 몰라요. 한국 뉴스 안 봐요. 방글라데시 뉴스에 그런 거 안 나와요."
"그럼 회사에서 한국 사람들이 IS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없어요?"
"네."
"그럼 이슬람이라고 뭐라 하는 사람 없어요?"
"회사에서요? 없어요. 사장님 좋아요. 나쁜 사람, 사장님이 다 나가라고 해요."

사쟈한씨는 이주노동자쉼터에서 1년 넘게 한국어 공부를 했다. 회사에서나 장을 볼 때나 그에게 종교를 갖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시비는 기숙사를 같이 쓰는 동료들 사이에 벌어진다고 했다.

"한국 사람, 방글라데시 사람 똑같아요. 좋은 사람 있어요. 나쁜 사람 있어요. 기도 매일 하는 사람 있어요. 기도 안 하는 사람 있어요. 술 먹는(마시는) 사람 있어요. 술 안 먹어요. 이거 (때문에) 싸워요."

매일 기도하는 동료들은 기도하지 않는 동료들과 종종 다툰다고 했다. 술 때문에 싸움이 나기도 한다고 했다. 사쟈한은 기숙사에서 마시면 꼭 싸움 나는 소주는 싫어하지만 약간의 맥주는 마신다며, 일할 때 종교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 이름은 "이슬람"... 종교와 사람 구분하지 않는 한국

"야! 이슬람!"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슬람(37·Islam)씨는 종종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는 건지 놀리려고 부르는 건지 느낌으로 안다. 이슬람씨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이슬람'과 '무슬림'이란 말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아랍어로 '이슬람'은 순종과 평화를 의미하는 종교를 뜻한다. 반면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을 '무슬림(Muslim)'이라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이슬람'은 '무함마드'나 '후세인'처럼 흔한 이름이다. '순종아', '평화야'라고 불릴 수 있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슬람씨는 이름 때문에 철저하게 종교적인 사람으로 오해받을 때마다 씁쓸하다. 특히 최근 IS가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 등을 참수한 데 이어, 요르단 조종사를 화형에 처하는 등 극악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슬람이라는 이름은 '나쁜 놈'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이슬람씨는 한국에 온 지 5년이 조금 넘었다. 4년 10개월을 일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자신을 고용한 사장의 추천으로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 다 됐네"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 대견해 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한국사회가 멀게 느껴진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꼭 확인해요. 그래서 '아, 내가 방글라데시 사람이구나' 하고 느껴요."

한국어를 잘하는 이슬람씨는 그동안 회사 밖에서 많은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왔다. 하지만 이슬람씨는 그들에게 여전히 '이름이 이슬람인 무슬림'이 아니라, '종교가 이슬람인 사람'일 뿐이다. 그 사실 때문에 이슬람씨는 종교 이야기를 점점 더 싫어하게 됐다.

"귀화한 지 10년... 이름 무함마드라고 하면 다시 외국 사람 돼요"

무함마드(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자신의 이름을 MD라고 하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은 무함마드라고 하면 귀화한 한국인인 자신을 외국인 취급 하기 때문이다.
 무함마드(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자신의 이름을 MD라고 하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은 무함마드라고 하면 귀화한 한국인인 자신을 외국인 취급 하기 때문이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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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예요?"
"MD예요."
"MD면 무함마드죠?"

방글라데시 출신 무함마드(46)씨는 자신의 이름 무함마드를 'MD'라고 줄여 말했다. 무함마드라고 하면 괜히 '철저하게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고 놀려대기 십상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씨는 21살 되던 해에 미국으로 가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생활이 벌써 25년째다. 그동안 한국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귀화도 했다. 한국인이 된 지 10년이 넘은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아프거나, 어떤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다. 지난 8일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가 있던 평택성결교회에서 그를 만났다.

"1992년에 석 달 월급 못 받았어요. 한국말 못했어요. 어떡해요?"

당시를 생각하면 억울한 심정이 복받치는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자기가 말 못하고 당하던 설움을 다른 누군가가 겪을 때마다 대신 입이 되어주는 그는,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나쁜 사람 없는 건 아닌데, 많이 좋아졌어요. 막 욕하는 사람은 없어요."

400명이 넘는 직원들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벌써 수 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무함마드씨는 자신의 본명을 MD라고 줄여 말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지금 한국 사람이에요. (귀화한 지) 10년 넘었어요. 이름 바꿀 수 있었지만 안 바꿨어요. 그런데 무함마드라고 하면 그냥 다시 외국 사람이 돼요. 한국 사람들은 무함마드 다 알아요. 이상해요."

그에게 자신의 이름 무함마드는 귀화한 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슬람권 출신이라는 편견의 단초가 된 것이었다. 한국에 온 지 25년이 됐지만, 한국 뉴스보다는 방글라데시 뉴스에 먼저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무함마드씨. 어쩌면 자신을 둘러싼 편견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항상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가운데 무료진료 현장에서 그가 한 말이 의미심장하게 가슴을 울렸다.

"여기는 딴 세상이에요. 사람 억울하게 하지 않아요. 사람들 좋아요."

사람 억울하게 하지 않는 곳이 딴 세상이라면,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안고 살아왔을까.


태그:#이슬람, #무함마드, #IS,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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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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