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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인도 청년들이 아침부터 바라나시 화장터 부근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화폭이라는 공간에서 천년 세월을 간직한 낡고 오래 된 건물들과 그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만나고 있다.

나는 그 장면을 사진기로 담아내고 있다. 사진기 렌즈에 아무런 단장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서양 처자가 잡힌다.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나 대충 옷가지를 걸치고 나온 모습이다. 다만 선머슴 같은 그 여인의 손에 질 좋은 사진기가 들려 있다. 나는 그 아가씨의 사진기 렌즈에 잡혀 있는 주변 풍경 속에서 어슬렁거린다.

강가에서 만난 그녀, 나는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 사진기 렌즈에 아무런 단장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서양 처녀가 잡혀왔다.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나 대충 옷가지를 걸치고 나온 모습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내 사진기 렌즈에 아무런 단장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서양 처녀가 잡혀왔다.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나 대충 옷가지를 걸치고 나온 모습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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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떠오르는 강가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올리는 인도 사람들 틈에 끼어 서양 처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종교와 국적을 초월한 동서양의 만남, 아침 햇살이 그녀의 소탈한 웃음을 더욱더 돋보이게 한다. 정말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인도에 도착할 무렵 바라나시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소문을 접했다. 마리화나를 거래하던 일본인이 살해당했다는 얘기였다. 아니 이 사건은 그냥 소문이 아니었다. 신문에도 실린 사실이라고 한다. 바라나시에 오기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떠돌아다닌 지 5일째로 접어들었다. 나는 인도사람들 틈에서 무방비로 웃고 있는 서양 여성을 바라보며 그 긴장감을 내려놓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모든 것을 감싸 안아주는 강가, 바라나시 갠지스 강의 평화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었다. 물결처럼 잔잔한 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기분 좋은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서 그녀의 동선이 그려졌다.

그 처녀의 손에도 사진기가 들려 있다. 나는 그 처녀의 사진기 렌즈에 잡혀 있는 주변 풍경 속에서 어슬렁거렸다.
 그 처녀의 손에도 사진기가 들려 있다. 나는 그 처녀의 사진기 렌즈에 잡혀 있는 주변 풍경 속에서 어슬렁거렸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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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대학을 포기하고 세계 여행길에 나선 소탈한 성격의 그녀는 남자친구가 없을 것이다. 어젯밤 늦게까지 웃고 떠들어가며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술을 마셨을 것이다. 혹은 요가나 인도의 전통음악을 배우면서 동시에 사진기를 들이밀고 부지런히 스케치를 하고 돌아와 노트북 앞에서 밤늦게 까지 사진 작업을 했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는 정전으로 작업을 마저 다하지 못하고 쓰려지듯 잠들었을 것이다. 새벽, 알람시계 소리에 겨우 일어나 머리 손질은 물론이고 세수조차 하지 않고 무겁게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비벼가며 강가의 일출을 담기 위해 서둘러 사진기를 챙겨 새벽 공기를 가르며 숙소를 빠져 나왔을 것이었다.

공상을 끝내고,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스토커처럼 멀찌감치 서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기에 담아냈다. 나는 거침없는 그녀의 젊은 청춘을 시기하고 있었다. 아침 햇살처럼 생기 넘치는 환한 웃음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무방비로 다가설 수 있는 젊음이 부러웠다. 저 싱싱한 젊음에 끼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 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수염 허연 50대 중반, 거기다가 눈병으로 퉁퉁 부어오른 눈자위가 걸렸다. 지혜로운 수행자도 아니고 지식이 풍부한 중년 사내도 아닌, 거지행색이나 다름없는 내 추레한 몰골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내 젊은 청춘은 저 강물 속으로 깊이 침잠해 사라져 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눈병이 심해 더 이상 싸돌아다닐 기력이 없었다. '달려라 하니'와 이 선생의 성화로 약국을 찾아가 손짓발짓으로 구한 약을 먹고 눈에 투여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눈병이 발병한 지 사흘째 접어들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두 눈이 짙은 눈곱으로 봉합되어 있을 정도로 심해졌다. 물을 적혀 눈곱을 떼어 내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화장터로 나섰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화장터 계단에 앉아 명상으로 하고 나서 강가 가트 길을 걸었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서양 처녀를 만나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일용할 양식인 바나나와 오렌지 몇 개를 사들고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왔다.

항상 변두리였던 나의 사랑, 그들의 젊음이 부럽다

같은 숙소에서 머물었던 프랑스 청년 필립. 한숨을 푹푹 내쉬어가며 인도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처녀에게 푹 파져 있는 그와 일주일 내내 이웃사촌 처럼 지냈다.
 같은 숙소에서 머물었던 프랑스 청년 필립. 한숨을 푹푹 내쉬어가며 인도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처녀에게 푹 파져 있는 그와 일주일 내내 이웃사촌 처럼 지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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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에 묵직한 노트북을 꺼냈다. 그동안 손전화기 메모장에 틈틈이 기록했던 내용들을 노트북에 옮겨 적고 사진도 정리했다. 하지만 눈이 아파 원고 쓰기는 무리였다.

"하아~."

노트북에서 손을 놓고 있는데 나와 같은 층에 기거하고 있는 프랑스 청년 필립이 공연히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한숨을 토해 낸다. 필립은 나보다 하루 먼저 숙소에 들어왔다. 내가 숙소를 잡았을 때 그의 바로 옆방에는 오스트리아 여자가 묵고 있었다. 헌데 내가 온 바로 다음날 필립과 언성을 높이고 나서 그녀는 홀로 떠났다.

필립에게 물어보니 다른 숙소로 옮겼다고 한다. 그는 종종 그녀와 전화 통화나 메시지를 주고 받아가며 바라나시 가트 어딘가에서 만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거나 그녀로부터 전화가 올 시간이 다가오면 숨을 푹푹 내쉬어가며 베란다 주변을 정신 사납게 서성이곤 했다.

"하아~"
"왜 그래? 그녀에게서 전화가 안 와?"
"오늘은 여기로 찾아오기로 했는데 오지 않네요. 10분이 넘게 지났는데…."    
"좀 더 기다려봐, 혹시 다른 남자 친구가 생긴 거 아냐?"
"나도 모르겠어요."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

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가 찾아온다는 약속 시간에서 점점 멀어져 가자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건물 바닥이 폭삭 내려앉을 정도로 한숨 소리가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녀를 애타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그녀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자 어둠에 싸여 있던 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덩달아 그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는 필립의 심정을 대변했다.

"필립이 그대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정말이야, 필립?"

오스트리아 여자가 필립을 바라보며 되묻었지만 그는 배시시 웃기만 한다. 나는 다시 엉터리 영어를 총동원해 필립의 간절한 마음을 전해 줬다.

"그대가 오늘 오지 않았으면 필립은 갠지스 강에 뛰어 들었을지도 몰라."
"미안해."

그녀는 내 엉터리 말을 대충 이해했던 모양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짧게 던져 놓고 나와 필립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필립을 꼬옥 안아준다. 두 사람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장문의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나서 환하게 웃으며 숙소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려온다.

20대 초반의 청춘들, 두 사람은 이곳 바라나시를 떠나게 되면 인도 여행길 어디선가에서 헤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훗날 인도를 떠올릴 때 마다 서로를 가슴 아리게 떠올리게 될 것이었다.

이제 게스트하우스 3층에는 아무도 없다. 나 홀로 있다. 갑자기 외로움이 숨 막히게 몰려든다. 나도 저렇게 가슴 졸이며 한 여자를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던가. 지난 시간들이 꼼지락거리며 일어선다. 내 젊은 청춘은 암울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학생운동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문학도로서 글을 제대로 쓴 것조차 아니다. 그렇다고 절절한 사랑에 빠져 본 적도 없었다.

내 사랑 이야기는 늘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단역 배우처럼. 열차에서 청춘 남녀가 비엔나 강가를 거닐다가 시를 써 주는 부랑자 같은 남자를 만난다. 시 써 주는 부랑자 남자는 두 사람에게 말한다. 자신에게 단어를 하나 건네주면 그것으로 시 한 편을 지어 선물하겠노라고. 내 젊은 청춘은 두 청춘 남녀 주인공 보다는 시 써주는 남자와 다름없었다. 사랑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늘 변두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감동적인 사랑이야기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 단역으로 출연하는 부랑자에 불과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후덥지근하다.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불편했다. 그나마 눈의 붓기가 가라앉아 가고 있어 다행이다. 천장에서 픽픽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낡은 침상에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베란다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렇게 끈 묶인 개처럼 숙소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어영부영 늦은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눈병은 좀 어떠세요. 어둔 골목길을 헤치고 숙소로 되돌아가려니 겁이 나네요. 여기 한국 사람들과 함께 있어요. 술 한 잔 할 건데 오실 수 있나요?"

'달려라 하니', 그녀였다. 반가웠다. 같은 숙소에서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나게 될 친구의 메시지처럼 반가웠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기쁘고 고마웠다. 오스트리아 여자를 기다렸던 필립처럼 나 또한 오후 내내 '달려라 하니'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신 술, 스스로에게 남긴 당부

세 여자 아이들과 바라나시에서 다시 만나 덕분에 한국음식을 다시 먹을수 있었다. 러시안이 운영하는 어느 식당에서 함께 먹은 푸짐한 닭볶음탕.
 세 여자 아이들과 바라나시에서 다시 만나 덕분에 한국음식을 다시 먹을수 있었다. 러시안이 운영하는 어느 식당에서 함께 먹은 푸짐한 닭볶음탕.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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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려라 하니'처럼 빠른 걸음으로 복잡한 골목길을 헤쳐 나갔다.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바라나시 골목길 어딘가에 한국인 운영한다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거기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선생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이기도 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암리차르까지 나와 함께 동행 하다가 델리에서 다시 헤어졌던 세 여자 아이들도 합석한다는 것이었다.

숙소 옥상에 자리한 식당 테이블에는 '달려라 하니'와 한국인 중년 여성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애들은 아직 안 왔나요?"
"우리 아이들이요?"
"열흘 가까이 함께 다녀서 그런지 입버릇이 돼버렸네요."
"아무래도 우리처럼 나이 많은 여자 보다는 어린 여자애들이 좋지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겐 딸 같은 아이들입니다."
"그래도 나이 어린 여자애들과 같이 다니는 게 좋잖아요."
"에이 참, 그게 아니래도 자꾸 그러네요."

그들은 남자들의 성적 취향에 대해 가벼운 농담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어린 여자 아이들을 딸처럼 생각한다는 내가 비정상인 것처럼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 같은 아이들을 성적 대상의 여자로 말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한국 사회, 그런 농담들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때마침 이 선생이 젊은 남자와 함께 왔다. 내게 농담을 자연스럽게 건넸던 중년 여성은 스무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그 젊은 남자와 한 방을 쓰고 있다고 한다. 숙소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두 개의 침대를 이용해 따로 따로 잠을 잔다고 한다.

서로 인도 여행길에서 있었던 얘기를 나누던 중에 중년 여성과 한 방을 쓰고 있다는 그 젊은 남자는, 인도 상인들이나 릭샤꾼들을 파렴치한 사기꾼 취급을 했다.

"물건 살 때도 그렇고 릭샤꾼들 한테도 사기를 당한다니까요. 가격이 다 달라요. 무조건 깎아야 해요."

그들은 인도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인도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닐 터이고 인도에서 오라고 초대장을 보낸 것도 아닐 터이다. 저들은 도대체 인도에 왜 왔을까? 인도 어디를 가나 불만투성이니 여행길이 얼마나 불편할까 싶었다.

바라나시에서 만난 눈 맑은 거지 아이, 일반 가정집의 아이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중년 사내를 따라 다니며 앵벌이를 하고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만난 눈 맑은 거지 아이, 일반 가정집의 아이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중년 사내를 따라 다니며 앵벌이를 하고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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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우리 아이들', 델리에서부터 다람살라, 암리차르까지 함께 동행 했던 세 여자 아이들이 동석했다. 우리는 인도 맥주를 마셨다. 인도 맥주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놓은 맛이 난다. 한국 맥주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더 높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는 인도 거지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중년 여성이 가장 불만이 많았다.

"거지들은 또 어떻고요. 너무 뻔뻔하잖아요. 일도 안 하고 놀고 먹어가며 손이나 내밀고, 돈을 받고 고맙다는 표정도 없고, 인도 정부에서는 뭐하나 모르겠어요. 거지들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녀의 끊임없는 불만에 나는 참다못해 쏘아 붙였다.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세계 어딘가에 거지들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잘 먹고 있다는 것이지요. 비행기 타고까지 인도에 온 것도 그런 것이죠. 그리고 거지들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거지들에게 뻔뻔하니 어쩌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요? 스스로 거지임을 밝히고 손 내밀어가며 돈 달라는 거지들은 차라리 솔직합니다. 정직합니다. 속셈을 숨기고 자본가에게 한 푼 더 받아먹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고 온갖 권모술수를 부려가며 노예처럼 살아가는 멀쩡한 거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또다시 꼬장꼬장한 꼰대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주변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져 갔다. 내가 그들을 어리석은 인간으로 몰아붙여가며 가르치려 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했다. 입을 닫고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마시면서 구걸하는 거지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을 했다.

거리에서 손을 내미는 가난한 거지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진 자들은 좋은 집과 자동차와 온갖 가전제품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거지와 다르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들은 거리의 거지들보다 더 비굴하게 부를 축적했다. 머리를 조아려가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군림을 당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머리 위에서 군림 하려 든다. 하여 그들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가난한 사람들을 못된 거지 취급하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 구걸하는 가난한 거지들을 자신의 재물을 나눠줘야 할 불행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고 자신의 근성대로 하찮고 못된 거지 취급을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인도 거지들.
 길거리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인도 거지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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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거지들에게 10루피 밖에 못줘서 미안하다 여긴다면 속이 편하다. 10루피나 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게 되면 그 순간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베풀고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난한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는 순간, 자비심이 스며들면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의 문 앞에 서 있게 될 것이고 적선을 하면서 그 어떤 대가를 바라게 되면 그 순간 지옥의 문 앞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인도에 대해 불만 가득한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지들이 손을 내민다고 짜증을 낸다. 거지들과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사람들이 여행길을 망치게 한다고 믿고 있다. 사실 바가지 요금이나 거지들이 여행길을 망치는 게 아니다.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상인들이나 거지들은 내가 그들 앞에 나서기 이전부터 이미 거기에 있어왔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간 것이지 그들이 내게 온 것이 아니다. 거지들은 적어도 손을 내밀망정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99개를 가진 부자들은 1개를 더 채워 배 터지게 먹고자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거지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그 1개를 얻어먹고자 할 뿐이다.

'우리 아이들'과 내일 헤어져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인도에서는 만날 기회가 없다. 헤어지면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었다. 누군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한창 취기가 오른 내 차례가 돌아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은 간다' 노래를 하다가 가사를 까먹었다. 노래를 그만두고 술을 마셨다.

습관대로 새벽녘에 일어나보니 이 선생 방이었다.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어제 오후 좋아지기 시작했던 병든 눈자위가 다시 심하게 부어 있다. 술 탓이다. 나는 지난 밤 일을 기억해 낸다. 중간 중간 필름이 끊어진 영화처럼 기억이 뚝뚝 끊겨있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인도까지 와서 부질없는 논쟁을 벌여가며 술을 마시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술이 나를 마시기 시작했고,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다 말고 다시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겼다. 식탁에 엎드려 있다가 구토를 했고 누군가의 부축으로 이 선생이 묵고 있는 방으로 들어와 쓰려져 잔 기억이 전부다. 술 마시면서 손전화기에 메모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메모장에 내 스스로에게 당부하듯 이렇게 적혀 있었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어리석다 말하지 말라. 누군가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하지 말라, 그 순간 '어리석은 사람들'의 맨 앞줄에 네 이름이 새겨질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네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네 자신의 어리석음을 바로 보게 하는 스승으로 여겨라. 네가 여행길에서 만나는 그 어떤 사람이든 모두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네가 가는 길을 두려움 없이 열어 줄 것이고 또한 네 젊은 청춘의 기운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태그:#바라나시, #서양 처녀, #프랑스 청년 필립, #인도 거지, #사랑과 자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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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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