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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성인이 된 누군가는 '한창 좋을 때'로 기억하고 있을 시절이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그 의미와 상황이 좀 다른 듯합니다. 대입의 전초전인 '고입'을 앞두고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 혹은 부모들이 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줄 세우기, 경쟁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길을 찾느라 애를 씁니다. 올해로 창간 15주년을 맞은 <오마이뉴스>는 세계 각국 15세 아이들의 현재와 그들의 고민을 담은 기획 '세계 속의 15세'를 몇 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영국 한 공립학교의 모습
 영국 한 공립학교의 모습
ⓒ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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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국인 아내와 결혼했고, 1남 1녀를 두고 있다. 2000년 영국에서 태어난 딸은 <오마이뉴스>와 동갑이다. 약 8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초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지난 2008년 영국으로 돌아왔고 현재 동네에 있는 공립중학교에 다닌다. 영국아이들의 약 94%는 자기 동네에 있는 초중고등 공립학교에 다니는데 영국의 교육 체계는 한국과 좀 다르다. 영국에선 기초학년(Foundation Year) 1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secondary) 5년, 고등학교(sixth form) 2년을 다닌다.

의무교육은 만 4세부터 16세나 18세까지 12~14년간이다. 영국아이들 중 75%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중 44%만 대학에 간다. 고교에 안 가는 25% 아이들은 만 16세에 중학교를 마치고 바로 취업을 하거나 사회에 뛰어든다. 그래서 영국 학생들은 의무교육이 끝나는 만16세나 18세에 진로를 결정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영국 학생의 약 94%는 집 근처 무료 공립중학교에 진학한다. 반면 약 6%의 아이들은 보통 기숙사가 있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에 진학한다. 영국에서는 사립학교를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s)이라 부르는데 이 사립학교를 나온 아이들 상당수가 훗날 외교관, 고위관리, 정치인 등, 공직, 즉 퍼블릭 오피스(public office)로 진출하기 때문이다. 

영국엔 없는 대학 서열화, 대입 지원 과다경쟁

영국 부유층, 왕족 혹은 귀족들 다수는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이 사립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업은 물론 장차 영국사회의 지도층으로서 학생들의 인성, 도덕성, 사회적 책임감, 스포츠 등을 가르친다. 그래서 영국 명문대학들도 사립학교 출신들을 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사립학교 출신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 전통과 역사가 워낙 깊다 보니, 대다수 영국인들은 사립학교에 대한 '특별대우'를 별 반감이나 불만 없이 인정하는 분위기다.

사립학교 출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로는 윈스턴 처칠 전 수상과 엘리자베스 여왕 등이 있다. 또 찰스 왕세자 역시 해군에 자원하여 복무했고 그의 동생인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자진 참전했다.

한국과 영국의 차이 중 하나는, 영국엔 교과서가 없다는 점이다. 영국정부에서는 단지 국가교육과정(National Curriculum)을 통해 학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학업지도는 각 학교의 재량과 현장교사에게 맡긴다.

영국 새학기는 9월에 시작되며 GCSE(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만 16세에 치르는 중등교육 수료고사)의 경우,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최소 5과목에서 10과목을 선택해 공부한 뒤 시험을 치르고 각 과목별로 자격증을 받는 형식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직업교육을 희망하는 학생은 보통 최소과목을 학습한다. 학부모와 교사도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므로 학생은 무리한 학습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 어렸을 때부터 전문성을 기를 수 있다.

영국 대학교들은 학생들을 선발할 때 학업성적뿐 아니라 학교장 등 학생 지인들의 추천서와 자원봉사, 상식, 스포츠, 클럽활동 등도 고려해 판단한다. 한 명당 최대 여섯 곳까지 지원할 수 있는데, 학과별로 뛰어난 대학이 다르므로 대학서열화 등의 대입 지원 과다 경쟁 등이 없다.

같은 학년이라도 개인이 교과목 선택해 수강

한국과 영국, 두 나라 모두에서 아이들을 키워본 나로서는 두 나라의 교육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영국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 공립학교 교사와 보조교사들은 학생들의 소질과 수준, 지적능력에 맞춰 지도를 해준다. 때문에 학생들은 식당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듯 교과목을 고르고 학교도 학생들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지도한다. 따라서 같은 학년이라고 해도 필수과목인 영어, 수학, 과학을 제외하고는 듣는 과목이 전혀 다르다. 이렇게 맞춤 교육을 하다 보니, 중학생들도 대학생들처럼 과목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니며 이동식 수업을 받는다. 

딸아이 친구 3명의 일주일치 시간표(월~금, 오전 8시 45분~오후 3시15분)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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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대표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열리는 '전국 화학캠프'에 다녀올 예정인 존은 학기 중 방과 후 숙제를 하는 시간이 하루 3~4시간이나 될 정도로 전형적인 학구파다. 학교는 이런 존을 위해 학업캠프 등 심화학습을 지원해준다. 그러나 존이 공부만 하는 건 아니다. 그는 매주 금요일 방과 후에 동네 중고서점에서 한 시간씩 자원봉사를 한다. 또 일주일에 두 번, 1시간 30분씩 격한 스포츠를 한다. 취미는 컴퓨터 게임인데, 수준급이란다.

로라는 미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로라가 방과 후 숙제를 하는 시간은 하루 1시간 정도. 로라는 과거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교사와 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아 중위권으로 끌어올렸다. 로라는 그림 그리기, 인터넷으로 영화보기, 독서가 취미지만 일주일에 총 4시간 정도 기계체조와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한다.

성격이 쾌활하고 발랄한 샤론이 방과 후에 숙제를 하는 시간은 단 30분.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샤론의 취미는 스포츠,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기, 친구 만나서 수다 떨기, 호주에 사는 아빠와 스마트폰으로 문자 주고받기 등이다. 샤론은 노력만 하면 성적을 더 올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단다.

영국 중학교는 숙제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혹은 원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숙제를 하고 제출할 수 있다. 존이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숙제 등 프로젝트에 그만큼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샤론이나 로라는 숙제에 너무 많은 정성과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공부 외에도 할 것이 많다는 게 두 여학생의 이야기였다.

한편, 딸의 친구들이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영국 교육부 국가교육과정에 따르면 역사, 무용(Dance), 드라마, 경제, 요리, 정보통신, 독어, 스페인어, 관광, 음악 등도 학생이 원하면 선택할 수 있다.

이렇듯 학생들이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 공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영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명문대학을 안 나와도, 혹은 대학을 아예 안 나왔다 해도 차별 받지 않는다. 때문에 자녀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 대다수 영국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물론 소수 사립학교의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은 직업교육 과정 선택

 기자와 인터뷰 중인 존.
 기자와 인터뷰 중인 존.
ⓒ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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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학생들은 만 14세부터 자기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공부할 수 있는데, 학문에 소질이나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정규교과 대신 좀 더 실용적인 직업교육 과정을 선택 할 수 있다. 영국의 이런 '학생맞춤형' 교육 철학은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의 가치를 동등하게 강조하며 두 분야에 대한 차별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특히 직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용기술과 능력에도 큰 가치를 둬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도록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영국에선 몇 백 년에 걸쳐 대를 이어 일하는 기술직 노동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직업에 대한 그들의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또 영국에서는 고학력이 필요한 직업과 기술직의 급여 격차도 그리 크지 않다.

과거 난 영국에서 의사를 하는 친구와 목수를 하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좀 충격을 받았다. 두 집의 생활수준이 별로 차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의사와 목수의 연봉은 약 2.5배에서 3배 정도 차이 났다. 그러나 영국에선 연봉이 높은 사람은 소득세를 40% 까지 내야하고 아동양육비 등을 전혀 받지 못한다. 반면 연봉이 낮은 사람은 소득세를 20% 만 내거나 아예 면제 받고 각종 복지혜택을 받는다. 이 때문인지 의사 집에는 책이 많고 목수 집에는 나무가 많은 것 외에는 차이점을 찾지 못했다. 또 의사에게서는 우월감 등을 찾아볼 수 없었고, 목수에게서도 열등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영국 고등학교 졸업자의 절반 이상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직업 훈련을 받은 뒤 곧바로 취업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로 인해 차별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각기 자기 업종과 분야에서 별 욕심 없이 자족하며 살아가고 서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영국에선 중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대학 진학을 준비할 수도 있다. 이때 중고졸자는 대입시험이 아닌 이전에 받았던 성적에 추천서나 직장에서의 경력을 더하여 대학입학을 허가받는다. 이런 학생들을 '성숙한 학생'(Mature Student)라고 부르는데 사회경력과 학력의 가치를 동일하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영국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길을 끌었던 건 교과목 중 하나인 '시민교육'이었다. 2002년부터 중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시민교육'은 다수 초등학교에서도 거의 의무적으로 교육하도록 돼 있다.

▲시민의 사회∙도덕적 책임감 ▲지역사회 참여하기 ▲언론의 중요성 ▲학교․지방․국가․세계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다양성 ▲나의 권리와 책임 ▲다문화 이해하기 ▲인권, 왜 중요한가? ▲ 공인은 프라이버시의 권리가 있는가? ▲선거는 언제, 어떻게 참여하며 선거 캠페인은 어떻게 조직되나? ▲국회는 어떻게 작동하고 정부는 어떻게 예산을 지출하나? ▲오늘날 세계평화 유지는 왜 어려운가?

'시민교육'이란 과목에서 다루는 주제는 ▲정치 ▲언론 ▲인권 ▲다문화 ▲세계문제 ▲시민과 법 ▲민주주의 등이었다. 영국에선 이 교육의 효과와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고 있는데, 보고서는 시민교육 수업 도입 후 학생들의 정치의식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 소속감 등이 증가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이로인해 학생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다문화에 대한 포용력, 인권의식 등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 영국엔 없다

마지막으로 영국 교육환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사교육이었다. 이곳에선 개인교습이나 입시학원 등 사교육시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입 기숙학원도 없고 명문고 입학에 대비한 특별학원도 없다. 일부 학부모들은 일정기간 동안 학생들에게 사교육을 시키지만 주로 공교육에서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복습이며 선행학습은 아니다.

물론 영국에도 개인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일부 있다. 내 아내도 7년 전 한국에서 영국으로 다시 왔을 때, 딸아이에게 몇 개월 동안 영어 과외를 시켰다. 물론 학교 교과목 복습 위주였다. 이웃 중에도 자녀에게 과외를 시키는 이들이 있지만, 대입용 '족집게' 과외가 아니라 성적이 떨어진 과목을 일시적으로 보강해주기 위한 것이다.

대부분 영국 학부모들은 영국정부의 공교육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학교공부 이외에 따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학년이 될수록 늘어나는 학교숙제와 프로젝트도 선행학습이 아니라 복습개념이다. 공립학교 교사와 보조교사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심화학습을,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겐 추가지원학습을 제공한다.

'오마이뉴스'와 동갑내기인 15살 영국 중학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영국의 학교생활을 어떻게 느끼는지? 지금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요즘 고민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학생들의 다양한 답변을 인용하며 이 기사를 마친다.

: "학교생활은 제가 알고 싶은 과학에 대한 지식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에 저는 학교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지금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고민은 자주 바뀌는 교육부의 시험이나 교육 방침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입니다."

로라 : "학교에서 재미있고 색다른 것을 배워서 좋습니다. 또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학교생활을 통해서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갖게 되어서 좋습니다. 제 삶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가족, 친구, 학교, TV, 스포츠입니다. 고민은 크게는 지구온난화, 작게는 숙제와 학업문제입니다."

샤론 : "학교에서 제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 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좋습니다. 또 학교생활을 통해서 여러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좋고요. 제 삶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친구와 가족 그리고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 뱀입니다. 친구와 가족 또 애완동물이 저를 아껴주고 제 삶을 더 풍성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제 고민은 아무래도 장래에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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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