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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소년의 인생은 드라마를 보기 전과 보기 후로 나뉠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했다.

지난 6일, 졸업식(안성 만정중학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공성웅군(17세)을 만났다. 그는 일단 키 크고 잘 생겼다. 저절로 튀어나오는 질문 하나. "여친 있냐?"에 "아니오, 없어요"라고 응수하는 성웅군.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한바탕 웃었다.

아버지의 태몽에 거북선이 나타나 지었다는 이름 '성웅'. 이름부터 역사와의 운명을 생각하게 만드는 성웅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역사 특히 한국사를 또래 친구보다 유난히 좋아해서 항상 고득점을 맡는 단다. 그 시발점에 사극드라마 한편이 있다.
▲ 공성웅군 역사 특히 한국사를 또래 친구보다 유난히 좋아해서 항상 고득점을 맡는 단다. 그 시발점에 사극드라마 한편이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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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드라마가 이렇게 재밌었어?"

성웅군이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사극 드라마 예고편을 봤다. "사극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것"이란 생각을 단박에 날려 준 예고편은 다름 아닌 <광개토태왕, 2011.6>이라는 KBS 사극 드라마였다.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져 있던 성웅군에게 그 예고편은 드라마가 아니라 스펙터클한 영화로 다가왔던 것.

"우와, 이런 재밌는 드라마도 있다니..."

그렇게 시작한 '드라마 보기'에 소년은 점점 빠져 들어갔다. 처음엔 전쟁 장면에 매료되어 그 드라마에 열광했다. 그러면서 소년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역사란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뭐야 이거. 중국 땅도 원래는 우리 고구려 땅이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뭐야. 우리나라가 한반도로 줄어들은 거야. 광개토대왕이 목숨 걸고 확보한 땅을 말이야."

그랬다. 성웅군은 드라마 한 편을 보고난 후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비판하는 문제의식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친구에게 '역사 잘 아는 친구'로 통한다

그후,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역사 과목은 거의 100점을 맞는 소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방학이 되면 고궁과 박물관 등을 즐겨가기가 일쑤였다.

다른 친구들은 "역사 과목이 제일 어렵다. 점수가 제일 나오지 않는다"며 울상을 지을 때, 성웅군은 "세상에서 역사가 제일 쉬웠어요"를 외치는 소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시험기간에 친구들은 "역사문제를 모르면 성웅이에게 물어봐"라고 했고, "성웅이는 역사를 잘 아는 친구"로 자리매김해가고 있었다.

2013년 평화통일 역사 골든벨 경기도대회에서 안성대표로 출전해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급기야 2013년 11월 12일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인증서(국사편찬위원회) 1급을 따기도 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못 따라 간다"는 옛말이 이 소년에게 적용되고 있었다.

"한국인에게 한국사는 기본이죠"

이쯤되면 이 소년의 꿈이 무언지 지레짐작이 간다. 맞다. 역사학자가 되는 거다. 그것도 책상 머리에서 연구만 하는 학자가 아니라 고고학자도 되어 문화재를 발굴하고 탐사하는 것까지 하겠단다.

그래서 뭐하려고?

"중국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야죠."

되찾는다니? 그럼 전쟁을 하자는 말인가? 중국과 맞장을 뜨잔 말인가? "그러려면 역사만 연구할 게 아니라 외교문제에도 밝아야 하니 공부하겠다"며, 성웅군의 표현에 따르면 "역사 멀티플레이어가 되겠다"는 거다.

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한국인에겐 한국사는 기본이다. 학교진학 때도 한국사 자격증이 필수이고, 직장취업 때도 한국사 자격증이 필수인 사회를 꿈꾼다"고 바람을 털어놓는다.

역사과목을 좋아하는 공성웅군은 중학교내내 역사과목으로 인해 각종 상장과 수료증과 자격증 등을 즐비하게 받아냈다. 앞으로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소년이다.
▲ 상장과 수료증 역사과목을 좋아하는 공성웅군은 중학교내내 역사과목으로 인해 각종 상장과 수료증과 자격증 등을 즐비하게 받아냈다. 앞으로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소년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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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역사란 계단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계단을 잘 밟아야 현재의 계단을 지나 미래의 계단으로 갈 거니까. 잘못된 계단은 고쳐야 다음 계단을 밟을 거니까"라고 말한다.

'햐! 이 소년 좀 보소. 일을 제대로 낼 소년일세.' 역사학자 E. H 카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가를 읽지도 않았을 텐데, 그 책이  말하는 역사의 정의(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와 일치하고 있지 않은가.

"니가 역사 배워서 뭐할라꼬?"

이런 성웅군에게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주변 어른들이 "니가 역사 배워서 뭐할라꼬. 역사 배워서 먹고 살겠나"며 조언해 온다는 것. 이에 내가 짧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말이 맞는 면도 있다. 서구 선진사회가 인문학이나 역사학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인 반면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역으로 성웅군이 앞으로 우리사회가 그렇게 되도록 할 일이 많은 거다. 우리나라도 점차 선진사회가 되어 갈 것이며, 성웅군 같은 사람이 쓰임 받을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

인터뷰 가서 이렇게 길게 설교(?)를 해본 적은 처음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성웅군과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기"라며 약속했다. 앞으로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성웅'이 될지 누가 아는가.


태그:#역사, #한국사, #광개토태왕, #사극,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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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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