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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면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낙인찍기는 딱 두 글자면 된다. 바로 '종북'이다. 사전에도 없는 종북이란 낱말이 활개를 친다. 특히 통합진보당 해산결정과 이석기 의원 내란선동 판결로 그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도 있겠다.   

말 그대로만 놓고 보면 종북이란 북(의 체제나 사상)을 추종한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종북은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로 발전해 가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이나 대화를 주장하거나 국가보안법 폐지, 개정 등을 주장하면 '종북'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뿐 아니다. 언제부턴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쪽을 향해서도 '종북'이라고 공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특정인을 종북으로 지목하면 두 가지 효과(?)를 가져온다. 하나는 종북으로 지목된 사람이 진위와 관계없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풍기게 한다. 또 하나는 아직도 뒤떨어진 북한 찬양이나 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몰아갈 수 있다.

여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대개 수세적일 수밖에 없다. 지목당한 당사자는 스스로 종북이 아니라고 강변해야 한다. 종북을 지목하는 상대방으로서는 이렇게 좋은 공격수단이 어디 있을까. 섣불리 종북 운운하는 이들에게서 사상 검증을 떠올린다면 억측일까.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종북'을 언급하고 있다. 2014년 12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서비서관회의에서 그 무렵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열었던 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로 표현한 것이다. 급기야 당사자 중 한 명인 황선씨는 박 대통령을 명예훼손 등으로 형사고소하고, 이와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특정인을 함부로 '종북'으로 낙인찍는 일은 법적으로 허용될까. 민사 법정에서 나온 판결 2개를 살펴보면 가늠할 수 있다. 

[판결①] '종북 성향 지자체장, 지방선거 퇴출' 사건

정미홍 정의실현국민연대 상임대표
 정미홍 정의실현국민연대 상임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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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성남시장, 노원구청장 외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들 모두 기억해서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퇴출해야 합니다. 기억합시다."

아나운서 출신 정미홍씨는 지방선거를 겨냥하여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종북 성향'으로 거론된 당사자들은 반발했고, 적지 않은 누리꾼들도 정씨의 글을 성토했다. 그러자 정씨는 다음날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자질이 의심되는 지자체장과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들을 퇴출해야 한다니까 또 벌떼처럼 달려드는군요. 그들은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ㅉㅉ"

당사자인 김성환 노원구청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은 개인 자격으로 서울중앙지법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각각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을 내린 법원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이라는 표현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법원은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하여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하고, 그와 같은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것인 이상,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표현행위에 의하여도 성립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법원은 이어 "이른바 '종북(從北)'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북(북한)을 추종하는 것'을 의미하고, 보통 '주체사상과 북한 정권의 노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 데 쓰이는 말"이라면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나 북한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종북 성향'의 인사로 지목되는 경우 그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임이 명백하므로 그로 인하여 그 사람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법원은 "아무런 전후 맥락 없이, 또한 구체적인 전제사실의 적시 없이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으로 단정하고 지방 선거에서 퇴출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한 행위는 사회적 평가를 현저하게 저해시키는 표현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근거없는 종북 단정은 표현의 자유 넘어서는 위법행위"

법원은 "'종북 성향'이라는 표현은 경우에 따라서 단순한 의견 또는 논평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아무런 전후 설명 없이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으로 지칭하는 글을 게시하였다면, 이는 '종북 성향'이 있다는 사실, 즉 북한 정권의 주장이나 정책에 찬성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상을 가졌거나 그러한 언행을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포함한 표현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적시했다.

다시 말해 "북한을 추종하는 정치인은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고 반면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이라는 표현은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정씨는 위법성조각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트위터에 글을 올린 목적이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종북성향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위법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고, 당시의 상황이나 그 표현행위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공성은 인정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 근거가 매우 박약함에도 불구하고 '종북 성향의 지자체장'이라고 단정하여 지칭한 행위는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트위터에 공적 관심사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가 넓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게시글은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위법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다른 성향의 정치인이나 공인에 대하여 충분한 근거 없이 '종북'이라 지칭하는 행위는 그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고, 합리적인 토론과 소통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이라고 꼬집었다.

법원은 공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종북'의 낙인을 찍는 것은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명예훼손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판결로 정씨는 두 사람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었다(이재명 시장 사건은 1심 판결이 확정되었고, 김성환 노원구청장 사건은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판결②] '이정희·심재환은 종북 부부' 사건

이정희 옛 통합진보당 대표
 이정희 옛 통합진보당 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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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건의 '종북'소송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트위터에 올린 글들이 발단이 되었다. 2012년 3월, 미디어워치 대표 변희재씨의 트윗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종북 주사파의 조직 특성상, 이정희에게는 판단할 권리조차 없을 겁니다. 조직에서 시키는대로 따라하는 거죠. 경기동부연합에서 이정희로 버티고 가겠다고 결정했으면 그 길로 가는 겁니다."

"원래 이정희는 위에서 판단 내려주면, 이를 대중적 선동하는 기술만 배운 마스코트예요. 문제는 이정희 남편 심재환이죠. 종북파의 성골쯤 되는 인물입니다."

22개의 트윗은 심재환 변호사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종북·주사파로 공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명예훼손과 인격권침해 등을 이유로 변씨와 트윗을 보도한 <조선일보>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1심(서울중앙지법 제14민사부 재판장 배호근)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특정인이 '주사파'로 지목되는 경우 그는 반사회세력으로 몰리고 사회적 명성과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이므로, '주사파'라는 발언은 단순한 모욕적 언사나 특정인의 사상에 대한 평가를 넘어 충분히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트윗 내용에 대해서도 "단순히 종북성향이라는 의견 또는 평가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신념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들임을 강하게 인상 지우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종북' 표현, '친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

1심은 또한 "부부인 원고들이 대등한 관계가 아니고, 이데올로그인 심재환이 지적 능력이 부족한 때부터 이정희를 조종하고 이용하였다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써, 진실과 다르게 왜곡하여 인격을 침해하는 표현"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트윗을 올린 변씨와 이를 인용보도한 <조선일보> 등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2심 재판부(서울고법 제13민사부 재판장 고의영)는 친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고 부정적인 '종북'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친북이라는 용어는 북한과 친해지자고 주장하는 견해까지 의미하는 반면, 종북이라는 용어는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으로서 주사파와 같은 계열에 둘 수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특정인이 주사파 또는 종북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에 속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북한 정권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여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반사회세력이라는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로 인하여 명예가 훼손된다고 보아야 한다."

법원 "배제·차별·증오 표현을 다원성·관용 이유로 허용할 수 없어"

ⓒ 김용국

법원은 정치적 이념에 관한 표현도 공적인 관심사에 대해서는 널리 허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찬성했다. "표현의 해악을 시정하는 1차적 기능은 시민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사상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그러나 각 시대와 사회마다 대립되는 다양한 의견과 사상의 경쟁메커니즘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해악이 처음부터 해소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거나 또는 다른 사상이나 표현을 기다려 해소되기에는 너무나 심대학 해악을 지닌 표현이 존재한다"며 "구체적인 근거나 명확한 증거가 없이 배제와 차별, 증오, 적의의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표현이 다원성, 관용, 관대함을 이유로 허용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종북과 같은 의혹제기는 일반적인 정치적 이념의 경우보다는 신중함과 엄격함이 요구된다고 당부했다. 두 사람이 종북·주사파인 경기동부연합 그 자체라고 한 것은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는 구체적 정황의 제시가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2심 결과 변씨가 1심과 마찬가지로 1500만 원 손해배상판결을 받았을 뿐 아니라 관련보도를 낸 언론사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정보도와 함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언론사별 배상금액은 변씨의 트윗을 인용하여 <이정희 심재환 부부의 종북성향> 등의 기사를 쓴 <뉴데일리> 1500만 원, <변희재 "이정희에 이은 새로운 얼굴마담은">기사를 보도한 <조선닷컴> 1000만 원, "경기동부 브레인은 이정희 남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지면에 내보낸 <조선일보> 1000만 원이었다.

다만 피고 중 <중앙일보>는 문제가 된 칼럼이 구체적인 사실이 아닌 의견 또는 논평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대변인으로서 논평을 하였던 이상일 의원도 마찬가지 이유로 청구가 기각되었다. 이 사건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다.

법적인 판단 여부를 떠나 북한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섣불리 예단하고 공격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원의 말마따나, 표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배제·차별·증오"를 담은 표현을 "다원성·관용"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수 없다. 토론과 근거가 없는, 맹목적인 종북 낙인은 세련된 반공주의일 뿐이다.  


태그:#종북,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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