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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자선투자기관 NPC(New Philanthropy Capital) 컨설턴트, 베네딕트 릭키(Benedict Rickey)와 함께 (2012.7.14)
 영국 자선투자기관 NPC(New Philanthropy Capital) 컨설턴트, 베네딕트 릭키(Benedict Rickey)와 함께 (2012.7.14)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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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업무 차 런던의 비영리기구 몇 곳을 방문했을 때 단체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가지가 부러웠다. 하나는 대다수의 비영리(비정부) 기구들이 자체 사업을 통해 버는 수익보다 주로 정부와 민간에서 제공하는 후원과 기부에 힘입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공이나 시장 영역보다 '제 3섹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영국은 이미 16세기에 자선활동과 관련된 법령을 제정했을 정도로 기부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중앙정부가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는 나라이니 단체 재정운영의 많은 부분을 정부 후원금과 일반 시민들의 기부에 의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옥스퍼드, 런던정경대 등 소위 명문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비영리 부문으로 눈길을 돌린다는 사실이 놀랍게만 느껴졌다.

내게 이야기를 들려 준 방문 기관의 팀장급 활동가는 런던에 본거지를 둔 핵심 사회단체들의 경우,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며 웃었다. 영리 부문으로 진출했다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비영리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급여는 좀 적더라도 가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0대 후반의 반듯한 한 젊은이가 번듯한 직장을 접고 이른바 가치 지향적인 삶을 선택하려할 때, 감내할 수 있는 소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모든 비영리기구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영국은 영리와 비영리 간 격차가 엄청난 각오와 희생을 요구하는 수준이라 부를 만큼 크게 나지 않았다. 비영리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이 줄어든 소득의 가치를 상쇄할 수 있는 정도랄까. 능력과 소양을 갖춘 아름답고 뛰어난 인재들이 유입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다.

너무도 척박한 우리나라 비영리기구의 현실

그에 비하면 우리 현실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시민의신문과 시민운동정보센터가 지난 2006년 발표한 <2006 한국 민간단체 총람>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재정내역을 밝힌 1700여 단체 중 연간 예산 규모가 1억 원이 안 되는 곳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이 중 연 1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곳은 8% 남짓에 불과하다. 외부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한다는 가정 하에 연평균 1억 원을 총 예산으로 잡고 사업비와 경상비(인건비, 관리비)를 각각 절반씩 쓴다고 할 경우, 상근자가 두 명이면 월 150만 원. 세 명이면 월 100만 원이 안 되는 급여를 가져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수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아니 예전보다 더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감안하면, 지방에 뿌리를 둔 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열악할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아무리 강한 신념을 지녔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생활 유지조차 위협받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변함없는 열정을 유지하며 전진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최근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가 2014년 3월 전국 시민사회 단체(127개)에서 일하는 활동가(300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소득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답한 이들(35%)보다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답한 이들(65%)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생활비는 맞벌이로 해결하거나, 가족 친지들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아르바이트 등 추가적인 노동을 통해 충당하고 있었다.

이런 힘든 조건 속에서도, 전국의 수많은 활동가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반갑고도 놀라운 사실은 응답자들 중 다수가 높은 직무 만족도를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반이 넘는 이들이 만족한다(62%)는 답을, 보통이라고 답한 이들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응답자의 약 86%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활동가들이 개인 희생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이 사실이 젊은 활동가들을 유입할 수 있는 동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설문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결원 발생 시 활동가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 단체가 8할이 넘었고 대표적인 이유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꼽았다. 지금의 '희생모드'만으로는 시민사회 진영의 재생산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시민 참여 없는 시민단체, 존재할 이유 없다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사회단체를 운영하다 보면 재정구조는 늘 불안정하고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하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변화를 추동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존립에 목을 매야하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결국 해법은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뿐이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건, 시민회원들의 강력한 지지와 뒷받침으로 운영되는 시민참여 형 조직으로 거듭날 때, 정부나 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래야만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직하고 올바른 실천을 해나갈 수 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극복해야 한다는 화두는 지금도 유효한 문제제기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언론에 자주 회자되는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여전히 단체를 이끄는 일부 명망가들에 의한 언론 플레이 중심의 활동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시민회원들의 참여와 밑으로부터의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한 조직 운영 방식이 아니라 '회원들을 단지 필요할 때 동원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엘리트주의적 사고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만일 의제 설정이나 활동 방식 등 단체의 주요 활동들이 핵심 리더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일반회원들은 주소록에 등재된 회비 내는 사람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면,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구조가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질서 하에 놓여 있다면, 이 단체는 시민사회단체라 할 수 없다.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는 시민단체란 존재할 이유가 없으며 시민사회 조직이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참여 자체가 저조한 것이지 시민회원들을 일부러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혈연, 지연, 학연 등 사적 연고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나 활동에 시민 참여가 저조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극복의 대상일 뿐, 변명꺼리가 될 수는 없다. 시민 참여라는 대전제를 뒤집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행히 얼마 전부터 주요 시민사회 단체에서 온라인 투표, 주요 간부 직선제 등 일반 회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제도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무척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시민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회원 모집과 관리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의사결정구조를 민주적으로 전환하는 등 많은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시민단체 대표의 뇌물 수수... 참담했다

최근 발생한 모 시민운동단체 대표의 뇌물 수수사건을 바라보면서 비영리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일원으로서 참담함을 느낀다. 질타의 대상으로 삼던 바로 그 당사자에게 돈을 받고 뒷거래를 하다니.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한 개인의 일탈 행위를 시민사회운동 진영 일반의 문제로 치환해선 안 된다는 것도 분명히 짚고 가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우려는 '시민운동이 곧 시민운동 명망가들의 행적'이라는 그릇된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걱정하기 때문이며 시민사회 진영 역시 이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지적한대로, 소수 핵심 리더들에 의해 운동의 흐름과 향배가 결정되는 지금의 취약한 구조에서는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초가삼간을 태울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 시민운동의 역사는 짧다. 1980년대 후반 무렵, 시민의식도 시민참여도 부족하고 민주주의도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은 열악한 조건에서 발흥하여 현재까지 명맥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뛰어난 선구자들을 포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길을 닦아 온 많은 이들의 헌신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해 없이 현 시민운동이 지닌 문제점과 한계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새천년 벽두 총선연대나 언론개혁 활동 등을 통해 시민사회 진영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보수 진영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을 홍위병으로 매도하고 '시민사회단체는 정치적 개입을 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쓸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이 시민사회운동의 위기라는 사실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근본적인 성찰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가히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작금의 현실 속에서 당장 뾰족한 답을 찾을 수야 없겠지만, 다수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현상에 대한 타개책을 만들지 않으면, 머리만 크고 몸은 빈약한 신체 조건을 변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한국 시민사회 운동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혹자는 '시민운동이 사라진다고 우리 사회에 무슨 큰 일이 생기겠는가' 라고 물을지 모르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서민들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선거 이외에는 국민의 정치 참여가 극도로 제한된 현실 앞에서 누가 시민들의 아픔을 돌볼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공약 허물기를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게 생각하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면 더 말해 무엇하리.

궁극적으로 시민운동은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한 과정이다. 낡고 권위주의적인 질서를 버리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구조를 변화시키고 권력을 시민사회로 이동시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는 일부 뛰어난 인물들만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밑으로부터의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는 길고 험난한 길이다.

묵묵히 일하는 활동가들은 '희망의 전령사'

그런데 그 길을 먼저 닦고 있는 이들이 있다.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든 세상에서 개인의 영달을 좇지 않고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수천 개의 비영리단체, 비정부기구, 공익단체 등 시민사회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그들이다.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의 존재가 미미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바로 이 사람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그나마 덜 망가진 상태로 굴러가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큰 꿈을 간직한 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청년, 대학원 학위를 비영리의 척박한 삶과 맞바꾼 연구자, 아내에게 밥벌이의 고단한 짐을 지우고 늘 밤늦게 귀가하는 삼십대 가장,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 새롭게 사회봉사의 길에 접어든 초로의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길에 기꺼이 동참한 사람들.

국가와 사회는 이들이 지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사명을 유지하면서 이 사회에 의미 있는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자기 개발이나 재충전을 위한 기회는 고사하고 변변한 공제조합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인들은 말한다. 시민사회와 함께 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시민사회를 지키는 파수꾼들의 삶은 돌아보지 않는다.

모두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절대 다수의 활동가들은 고통 받는 이웃들의 삶을 덜어주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돌봐야 할 일차적 책임은 국가에게 있겠으나 당신과 나 역시 일정한 몫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날개 한 가득 가루를 묻히고 꽃들을 향해 날아가는 이 나비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 이들이야말로 꽃들에게 꿈을 전하는 희망의 전령사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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