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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섭섭하기도 하지만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시원한 면도 있다"고 소회를 말했다.
 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섭섭하기도 하지만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시원한 면도 있다"고 소회를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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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섭섭해요."

서울대에서만 31년, 전체 교수 생활은 35년. 만감이 교차할 듯했지만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소감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달 말 퇴임식이 끝나면 수십 년 정든 연구실로 비워야 한다. 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남아 학부생 강의를 계속 이어가지만 공식적인 교수 생활은 이달로 끝이다.

"섭섭하기도 하지만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시원한 면도 있어요. 서울대 교수로 살아간다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잖아요. 자기 관리도 해야 하고 교육과 연구 노력해야 하고 평소 생활에서도 허튼 짓 해선 안 되고... 마음에 부담되는 건 사실이에요."

'속세'로 돌아가기 싫어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했지만 캠퍼스도 이미 예전 모습이 아니다. 야외 탁자가 있어 이 교수가 즐겨 찾던 '솔밭식당'은 예전 모습을 잃었고, 교수식당도 이젠 대기업에서 운영한다. 

"서울대가 점차 상업화되는 느낌이에요. 사회과학대 바로 앞에 24시간 편의점이 있는데 세계 대학 다녀 봐도 캠퍼스 한가운데 편의점 있는 걸 본적 없어요. 속세가 캠퍼스로 들어와 편리하긴 한데 뭔가 불안해요. 대학은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가르치는 의미도 있잖아요. 공부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자기 자신을 이기고 인내하는 훈련을 하는 곳이 대학이라면 편의점이 캠퍼스 중앙에 있는 게 바람직하진 않죠."

사실 편의점뿐 아니라 빵집이나 패스트푸드 음식점 같은 '편의시설'이 캠퍼스 안으로 파고든 지 오래다. 정작 이 교수의 문제의식은 다른 데 있었다. 교수식당은 삼성, 동원관은 신세계, 비빔밥집은 CJ 계열에서 운영하는 등 대부분 대기업 일색이라는 것이다.
 
"서울대의 중요한 식당에도 대기업이 진출한 건 우리 경제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줘요. 요식업은 대기업이 반드시 진출할 부분은 아니에요.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는데 대기업이 자본의 힘으로 여기까지 밀고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들 위해 보직-안식년도 포기... '여학생 팬클럽'도 등장

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제자들이 헌정한 퇴임 기념 문집 <꽃보다 제자>를 보며 흐믓해 하고 있다.
이 문집은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50대의 현직 국책연구원 원장부터 20대의 학부생까지 28명의 제자들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펴낸 선물이다.
 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제자들이 헌정한 퇴임 기념 문집 <꽃보다 제자>를 보며 흐믓해 하고 있다. 이 문집은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50대의 현직 국책연구원 원장부터 20대의 학부생까지 28명의 제자들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펴낸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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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연구실 한켠에 제자들로부터 받은 감사의 손편지가 놓여있다.
제자들이 선물한 손편지에는 '교수님이 항상 열정적으로 수업과 학생들을 챙겨줘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좋은 말씀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길 바란다'고 적혀있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연구실 한켠에 제자들로부터 받은 감사의 손편지가 놓여있다. 제자들이 선물한 손편지에는 '교수님이 항상 열정적으로 수업과 학생들을 챙겨줘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좋은 말씀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길 바란다'고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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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가 30여 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유독 '보직 교수'와 '연구 교수'(안식년) 생활을 피했다. 보직은 사회과학대 교무부학장 2년이 유일하고 연구교수 생활도 1년 반이 고작이다. 계속 강단에서 더 많은 학생들과 호흡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10년 전부터 대학원 강의를 젊은 교수들에게 맡기고 학부 강의에 전념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6년에 한 번씩 안식년을 요청할 수 있는데 1990년대 초반 연구교수로 1년 반 강의를 쉬었더니 학생들과 멀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연구교수 가기도 싫어지더라고요."

이처럼 학생들과 교류를 즐기다 보니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다. 지난 2010년 3월에 생긴 팬클럽 회원이 15명 정도인데 정작 경제학부생은 없고 대부분 미술대학 여학생들이라고 한다.

"한반도 대운하 반대 교수모임에 취재 왔던 대학신문 기자가 팬클럽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5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5명 정도가 모임에 나오는데 정작 경제학과 출신은 없어요. 스승의 날이나 생일에 한 번씩 모여 미술관도 가고 여행도 가는데, 우리 조교가 팬클럽 활동에 위기의식을 느껴 팬클럽 회장에게 활동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예요."

팬클럽 회원에 가입하려면 이른바 '이준구 고사'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이 교수 휴대폰 번호는 물론 취미와 좋아하는 색깔, 박사 학위 주제까지 알아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

"퇴임 논문집은 민폐"... 제자들 <꽃보다 제자>로 '보답'

지난 30여 년 이 교수를 거쳐간 제자들의 스승 사랑도 팬클럽 못지않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제자 28명은 지난해 말 이 교수와 인연을 담은 에세이를 모아 <꽃보다 제자>라는 '퇴임 기념 문집'을 펴냈다. 대부분 학계와 국책연구원 등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익숙한 '논문' 대신 낯선 '에세이'에 쓰기로 한 데는 나름 사연이 있다.

"보통 원로 교수를 대우해 준다고 환갑 되면 회갑기념논문집, 은퇴하면 정년기념논문집을 내는 게 관례예요. 그런데 그게 민폐예요. 젊은 교수가 논문을 저널에 실어야 하는데 여기 내면 연구 실적 인정도 안 돼요. 정년논문집 내겠다고 해서 민폐다, 제발 하지 말라고 했더니 에세이집을 내겠다고 하더라고요. 이거 받고 난 정말 행복한 교수란 느낌을 받았어요."

이 교수의 제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앞으로 5년 동안 명예교수로 경제학부 1학년생들에게 경제학원론1, 2를 가르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의 전공인 '미시경제'나 '재정학' 대신 '경제학원론'을 선택한 이유도 재밌다.

"신입생을 먼저 만나려고 일부러 '경제학원론1'을 선택했어요.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해요. 저도 1학년 때 조순 교수 강연을 들은 게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그동안 2학기 때 '경제학원론2'만 가르쳤는데, 이번엔 1학기 때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한 거죠."

강의 인원을 120명으로 제한했는데도 정원을 초과해 초과 수강자를 받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정도다. 이 교수 강의가 학생 고생도 안 시키고 학점도 잘 준다는 이른바 '꿀강의'는 아니지만, 그가 쓴 책이 서울대생뿐 아니라 모든 경제학도들의 필독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경제학 필독서' 명성... '꿀강의' 아니어도 정원 초과

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자신이 집필한 <미시경제학> 책을 들어보이며 "자랑스럽고 애착이 가는 책이다"고 소개했다.
<미시경제학>을 읽은 한 독자는 "이 책을 한 번 보았는데 쉽다면 책을 잘못 읽은 것이고, 두 번 보았는데 재미있다면 중독된 것이며, 세 번 보았는데 길을 보았다면 성장 중인 것이다"고 책에 대한 감상평을 남겼다.
 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자신이 집필한 <미시경제학> 책을 들어보이며 "자랑스럽고 애착이 가는 책이다"고 소개했다. <미시경제학>을 읽은 한 독자는 "이 책을 한 번 보았는데 쉽다면 책을 잘못 읽은 것이고, 두 번 보았는데 재미있다면 중독된 것이며, 세 번 보았는데 길을 보았다면 성장 중인 것이다"고 책에 대한 감상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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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지금까지 경제학부에서 '경제학원론'과 '미시경제학', '재정학' 등을 모두 자기가 쓴 교과서로 가르쳤다. 특히 지난 1989년 초판이 나온 <미시경제학>(법문사/문우사)은 지난 2013년 6판까지 찍으며 30만 부 넘게 팔렸다.

"개정수만 보면 9판, 10판인 책도 많지만 판수보다 얼마나 많은 독자가 빛을 얻었는지가 중요한데 그 점에서 전 자부심이 있어요. 특히 고시 준비생들은 내 책의 진가를 알아보려면 5번 이상 읽어야 한다고 해요. 많이 읽을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책을 썼다는 게 자랑스럽고  가장 애착을 갖고 있죠."

하지만 이 교수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책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지난 2011년까지 4판을 낸 <재정학>(다산출판사)이다. 지난 2009년 언론 칼럼을 모은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와 <36.5℃ 인간의 경제학>같은 단행본을 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만 생명력은 '교과서'에 미칠 수 없다.

"<미시경제학>이나 <경제학원론>은 내 개인적 견해를 집어넣을 수 없지만 <재정학>은 정부 기능에 관한 거라 정부에 대한 개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고 4판 개정할 때 정부 비판 분량을 늘렸어요. 그 전에는 재정학을 가르치는 사람 성향을 생각해 불편함을 주는 내용을 자제했는데 4판에서 내 소신대로 썼고 4대강 사업 비판도 들어갔어요. 새만금(방조제 공사) 때는 비용편익분석을 왜곡해 문제였는데 4대강은 그 자체도 하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죠."

이준구 교수도 다른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경제학자는 '차가운 머리'와 더불어 '따뜻한 가슴'을 갖춰야 한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고전경제학 창시자로 불리는 알프레드 마샬이 한 이 말은 '성장주의(차가운 머리)'와 '분배주의(따뜻한 가슴)'의 조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성장'을 앞세우는 경제학자들이 압도적이다. 외국에선 '보수'나 '중도'에 더 가깝다는 이 교수조차 국내에선 '진보'나 '좌빨'로 불릴 정도다. 

"차가운 머리만 있다고 보는 보수 성향 경제학자도 진정한 의미에선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요. 일단 성장해야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도 혜택이 간다는 거죠. 하지만 실제 '낙수효과'는 잘 일어나지 않아요. 가난한 계층을 직접 돕는 프로그램이 중요하지 일단 부유층을 돕고 그 여파가 가난한 계층에 미치길 기대하긴 어렵죠."

젊은 시절 나름 '따뜻한 가슴'을 중시했다고 생각하는 그조차 학생들에게 '효율성'만 너무 강조한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곤 한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 메커니즘이 우월하다고 믿는데 '효율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나이가 드니까 깨닫게 돼요. 효율성은 하나의 기준일 뿐이고 바람직한 사회 관점에서 다른 기준이 있다는 걸 무시해선 안 돼요."


태그:#이준구, #4대강 사업, #이명박 회고록,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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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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