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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주장한 해외 자원외교의 투자 회수율에 대해 "허황된 내용이고 예상수익률을 수익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주장한 해외 자원외교의 투자 회수율에 대해 "허황된 내용이고 예상수익률을 수익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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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라도 좋은데, 예전에 1000만 원 내던 종부세가 요즘 10만 원이에요. 부담되더라도 강남에 그 정도 집 있으면 1000만 원 내는 게 옳죠."

'현안' 질문은 삼가 달라던 노교수의 대답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65)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자극한 건 바로 최근 출간된 'MB 회고록'이었다. 이 교수가 '가장 바람직한 세금'이라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그토록 반대했던 '4대강 사업' 덕에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전인수식 자화자찬'이 달가웠을 리 없다.

"땅을 파든 사회복지를 하든 정부 지출을 늘리면 그만큼 경기가 부양돼요. 필요도 없는 땅을 파놓고 경기 부양되니까 좋은 거 아니냐는 건,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죠."

"땅 파서 금융위기 극복?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


이 교수는 애초 인터뷰를 사양했다. 퇴임을 앞두고 이미 몇몇 매체에 기사가 나갔는데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독자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대신 지난 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나 30여 년 만에 캠퍼스를 떠나는 한 원로 경제학자의 '사는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단 한 가지 예외는 'MB 회고록'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글을 써 '미스터 쓴소리'로 통했던 이준구 교수는 지난달 29일에도 MB 회고록을 비판하는 글을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jkl123.com)에 올렸다.(관련기사: "4대강으로 금융위기 극복? 똥개가 웃을 일") 대표적인 '혈세 낭비' 사례로 지목돼 국정조사까지 앞둔 MB 자원 외교의 투자 회수율이 114.8%에 이른다는 주장도 '미스터 쓴소리'의 비판을 피해가진 못했다.   

"너무 허황되죠. 예상수익률을 수익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죠. 투자 계획이 100이면 100 다 성공하는 게 아니잖아요. 예상수익률은 실제 수익률과 엄청나게 차이가 나서 전혀 의미가 없어요. 경제학 기본조차 결여된 몰상식한 태도예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심지어 지난 2008년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강하게 밀어붙여 '대기업 프렌들리'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고환율 정책' 덕에 금융위기를 극복했다고 정당화했다.(관련기사: 금융위기는 '미네르바' 탓? MB의 아전인수

"고환율 정책을 추구하려면 외환 시장에서 달러를 계속 사들여야 해서 외환 보유고가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졌어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외환이 빠져나가니까 마침 사재기해둔 외환이 충격 완충 장치가 돼서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죠. 금융 위기를 예감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 기업 수출 경쟁력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취한 건 삼척동자도 다 알아요. 그게 부작용도 일으켰고요. 당시 정책 당국자들이 고환율 정책 때문에 금융위기를 벗어났다는 건 정직하지 못해요. 어떤 정책이든 그때그때 목표가 있는데, 하다 보니 우연히 결과가 좋다고 정당화되는 건 아니에요."

이 교수는 당시 환율이 저절로 올라가게 놔뒀을 뿐 정부는 외환시장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이 전 대통령 주장에도 손사래를 쳤다.

"외환시장에 개입 안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 달러 가격이 그렇게 올라갈 순 없었어요. 당시 중소기업들이 '키코(KIKO, 환율 하락시 손실을 방지하는 금융 파생상품)'를 샀다 망했는데, 그런 불공정한 상품을 샀다는 건 환율 하락 예상이 지배적이었다는 얘기예요." 

4대강 사업 막으려 '속세'로... '홈페이지 저널리즘' 개척

이 교수는 1980년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교수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 외에는 캠퍼스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를 '속세'로 끌어낸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내건 '한반도 대운하' 공약, 바로 '4대강 사업'이었다. 지금도 서울대 사회과학대 6층 연구실 문에는 '강은 흘러야 한다'는 글씨가 방문자를 맞는다.

"불장난 하는 어린애를 보는 심정이었어요. <한겨레>에 쓴 첫 칼럼에서도 섣부른 실험은 삼가라고 했어요. 역대 대통령 인수위가 그렇게 시끄러웠던 적이 없지 않습니까. 온 사회를 밑바닥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거든요. 한반도 대운하도 아마추어적이에요. 경제현실과 논리를 아는 사람이면 그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어요. 그런 방식으로 교육도, 정부 조직도 뜯어고치는 게 가장 위험했는데 그게 그대로 실현됐어요."

캠퍼스를 벗어나는 게 싫어 언론 인터뷰는 물론 대중 강연도 거절하기 일쑤였던 이 교수가 택한 건 '홈페이지 저널리즘'이었다. 이 교수가 홈페이지에 올리는 글들은, 회원들이나 언론을 통해 퍼져나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2010년 5월에 쓴 '나는 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가'가 대표적이다.(관련기사: "내 양심 몽땅 걸고 4대강 사업 반대한다" )

"내가 글을 잘 썼다기보다는 당시 시대 상황에서 한반도 대운하 반대 여론이 그만큼 강했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내가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이 교수가 '홈페이지 저널리즘'을 선택한 데는 보수 편향적인 언론 지형도 한몫했다.

"'속세'에 나가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언론에서도 나를 잘 부르지 않았어요. 진보 언론에서 부르긴 하는데 진보하고만 유대를 맺으면 내 이미지가 굳어 버리고 진보매체 영향력이 제한돼 내 발언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없었어요. 보수 언론은 철저히 외면하니 홈페이지에 의존할 수밖에요. 언론이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약간 편파적이란 느낌이 들어요. 1980년대엔 '조중동'이 시국 선언 교수를 탄압해선 안 된다는 사설까지 실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MB가 하면 무조건 감싸는 태도로 바뀌었어요. '4대강 사업'은 이념과 무관한데 왜 이명박을 감싸야 하죠? 역사적 평가를 받을 때 (보수 언론도) 같이 받아야 해요."

"박근혜 정부, 'MB 감세' 손 안대니 '꼼수 증세' 소리 들어"

특히 '소득 분배론'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이 교수는 MB 정부의 감세 정책에 절망했다. 그 자신도 강남에 있는 집 때문에 1000만 원에 이르는 종부세를 내야 했지만 이를 적극 옹호해 왔기 때문이다.

"제일 안타까운 게 종부세의 실질적인 죽음이에요. 종부세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세금이에요. 지금 증세 논쟁의 시작도 이명박 정부의 불필요한 감세를 원위치 시키는 걸로 시작해야 해요. 박근혜 정부는 감세한 부분은 손 안대겠다는데 그래서 '꼼수 증세'라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이 교수는 198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다 지난 1984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스승을 열정 넘치는 '청년 교수'로 기억하면서 지금은 인자한 '이웃집 흰머리 소년'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교수를 '보수적인 교수'로 기억하던 제자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이 교수의 '변신'을 놀랍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그들 눈에 이준구 교수의 이념적 시계는 거꾸로 흐른 셈이다.

"그때가 34살이었으니...(웃음) 당시 강의실에선 시사평론을 거의 하지 않고 그냥 '경쟁'만 가르쳤어요. 요즘 시사적인 발언을 하니 제자들이 놀란 거 같아요.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점점 보수적으로 되는데 난 예전에 보수적인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놀라는 거죠. 지금 진보적인 교수가 된 한 제자가 당시 사회가 어지러운데 경제이론만 가르치면 어떻게 하냐고 내게 물었는데 '지식 그 자체를 위한 지식도 중요하다. 난 경제이론만 가르친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 당시엔 내게 불만이 있었는데 오늘날 변한 모습을 보니 반갑다고 해요."

하지만 이 교수가 변했다기보다 상황 변화에도 초심이 바뀌지 않았을 뿐이다.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진보적 사고를 지닌 이들을 일컫는 '강남좌파'란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종부세 1000만 원도 감수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위치에 따라 어떤 정책을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회복지 프로그램도 가난한 사람만 혜택을 보는 게 아니라 부유한 사람도 그만큼 사회가 안정돼 간접적으로 혜택을 받는 거예요. 사회복지 지출을 마치 시궁창에다 물을 쏟아 붓는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보수 세력이) '무상복지' 정리해야 한다고 하는데 복지가 무상이지, 유상이면 복지인가요? 우선순위를 논의하는 건 좋지만 '무상'이란 말을 붙여 일부러 부정적인 의미를 실을 필요는 없어요."

이제 아들딸도 모두 자라 손자손녀를 볼 나이지만 '무상급식'이 마치 나라 재정을 거덜 낸 것처럼 문제 삼는 것도 못마땅하다.

"애들 점심먹이는 걸 갖고 왜 쩨쩨하게 구는지. 쓸모없는 자원 외교나 4대강에 돈 퍼부으며 2조 원 낭비하는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애들 점심 먹이면 급식업체 소득도 창출하잖아요. 누군가 세금 2조원 부담하면 되는 거예요.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 아들도 무료 점심 준다고 뭐라고 하지만 이재용씨가 그만큼 세금 내면 문제없잖아요. 2조 원 때문에 거덜날 나라면 벌써 거덜 났겠죠."

(이준구 교수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이준구, #4대강사업,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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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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