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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해제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범꼬리꽃
 범꼬리꽃
ⓒ 임소혁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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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1942년 8월 3일 첫새벽이었다. 진운상은 평소대로 일찍 일어나 개울로 가서 세면을 한 다음 아침 준비를 했다. 그러자 왕조경도 슬그머니 일어나 세면을 한 다음 진운상을 도왔다.

"더 주무시라요."
"됐습니다."

그들은 각자 식량 주머니에서 한 홉씩을 꺼내 아침 준비를 했다. 대체로 아침은 항고에다 멀건 죽을 쑤어 먹었다. 허형식은 간밤에 아주 늦게 잠들었다. 그날따라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에 들어서야 겨우 눈을 붙였다.    

바로 이때 일제 토벌대는 이 지역에 비상 출동해 산간지대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들은 만주국 경안현전투경찰들이었다. 그 무렵 일본관동군은 제1기(1931. 9~1933.10), 2기(1933.10~1936.10) 치안공작숙정작업에 이어 마무리 작업으로 제3기(1936. 10~ ) 치안숙정공작을 대대적으로 벌이던 중이었다.

그들은 그즈음 정규군 76만여 명, 만주국 경찰 수십만 명을 풀어 동북삼성 전역을 샅샅이 비질하듯이 토벌했다. 일제는 그들 주구들의 충성심과 사기를 높이는 방안으로, 토벌에 막대한 현상금과 1계급 특진이라는 먹잇감을 내걸었다. 그들은 공비(항일 빨치산이나 항일연군들)들의 출몰을 신고를 하는 주민에게도 포상금을 주었다. 일제는 주민들의 신고로 항일군들을 사실하여 잡으면 그 목을 잘라 경찰서나 공회당 마당에 장대에 내걸고 전시했다. 그 옆에는 '공비대두목(共匪大頭目) 000' 라고 써서 붙였다.

우리 동포 가운데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시를 써서 만주신문에 발표하는 이도 있었다. 또 투항하거나 생포한 항일군 우두머리들은 일본 특무기관으로 넘겨졌다. 일제는 그들을 주로 밥으로 길들인 다음 항일군의 아지트나 기밀 탐지용으로 쓰거나, 동지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데 이용했다. 1939년 7월에 항일군 부하 30명을 데리고 변절 투항한 이화당(李華堂, 중국인)이 그런 자들이었다.

 청송령 들머리 풍림촌 호로 손환무(오른쪽. 당시 82세) 씨에게 허형식 장군 생전 활약상을 듣다.
 청송령 들머리 풍림촌 호로 손환무(오른쪽. 당시 82세) 씨에게 허형식 장군 생전 활약상을 듣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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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는 연기

헤이룽장성 경안경찰서 국장유 경좌는 그 전날 한 주민으로부터 청봉령 소릉하 계곡 쪽에 공비가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았다. 국장유 경좌는 공명심에 전투경찰들을 비상소집해 자기가 직접 30여 명의 대원을 데리고 추적에 나서 밤새 그 일대를 한창 뒤지고 있었다.       

진운상, 왕조경 두 경위원들은 그런 낌새를 전혀 모른 채 아침밥을 지으려고 불을 지폈다. 계곡이 깊은 데다 아침 안개로 밥 짓는 연기가 미처 흩어지지 않아 그만 토벌대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토벌대들을 즉각 허형식 일행의 숙영지로 몰려왔다. 허형식은 오랜 야영생활에 익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비몽사몽간 잠자리에서 그 추적소리를 듣고 후딱 잠자리에서 일어난 뒤 두 경위원에게 명령했다.

"동지들! 토벌대가 몰려오고 있소. 즉시 전투준비!"

두 경위원은 혼비백산하며 짓던 밥도 팽개치고 각자 총을 들고 허형식을 따라 산기슭으로 후딱 올라갔다.

"군장님! 잘못했습니다."

진운상이 숨을 헐떡이면서 자기 잘못을 빌었다.

 항일 명장,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 허형식
 항일 명장,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 허형식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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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그만 됐소. 오늘 우리 일진이 나쁜 때문이오."

곧 토벌대들이 허형식 일당을 추적하며 사방을 포위했다. 그들은 허형식의 신출귀몰하는 전투력을 아는지라 함부로 접근치 못하고 양철로 만든 손 마이크로 자수를 권유했다. 토벌대 국장유 경좌의 목소리가 청봉령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손들고 자수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하지만 세 사람은 전투태세를 갖춘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알린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10분간 시간을 주겠다. 그래도 자수치 않으면 사살하겠다."

허형식과 진운상 왕조경은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탄창을 점검하는 등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췄다. 잠깐 사이 10분이 지났다.

"사격 개시!"

국장유의 사격명령에 따라 사방에서 토벌대의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왔다. 

 경안현 대라진 청봉령 들머리에 세워진 허형식 희생기념비를 경안현 중국공산당 관계자와 함께 찾아가다(필자는 기념비 오른쪽20008. 8. 촬영).
 경안현 대라진 청봉령 들머리에 세워진 허형식 희생기념비를 경안현 중국공산당 관계자와 함께 찾아가다(필자는 기념비 오른쪽20008. 8.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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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식의 최후

허형식은 두 전사와 함께 토벌대와 맞서 싸웠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토벌대 10여 명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세 사람으로 열 배나 많은 토벌대의 포위를 뚫고 나가기는 중과부적으로 어려웠다. 게다가 실탄도 부족했다. 그 순간 허형식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대로 더 이상 버티다가는 세 사람 모두 사살될 것만 같았다. 만일 자기 배낭의 문건들이 저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애써 모집한 숯구이 동지들이 모두 드러나게 마련이다.

"안 되겠어, 동지들! 내가 저쪽 기슭으로 옮겨가면 놈들이 나에게 집중사격할 거야. 그때 두 동무는 포위망을 뚫고 도피하라!"

허형식은 그 말을 마치자마자 비호처럼 다른 산등성이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30여 명의 토벌대의 총구가 일제히 허형식을 향해 뿜었다. 하지만 허형식은 가는 도중에 다리에 관통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엄호할 테니 빨리 철퇴하라고 두 경위원에게 손짓으로 명령했으나 누구도 그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오리려 그들은 총을 맞고 쓰러진 허형식을 업고 도피하고자 다가왔다. 그러다가 진운상은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허형식은 즉각 왕조경에게 문건 배낭을 던져주었다.

"왕 동지! 이건 명령이다. 지체 말고 당장 후퇴하여 이 문건을 성위에 전하라!"

그러면서 더 지체 말고 빨리 퇴각하라고 다시 엄하게 명령하였다. 왕조경은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그의 곁을 떠났다. 허형식은 다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도망가는 왕조경을 엄호하기 위해 큰 나무둥치에 기대어 달려드는 적들을 계속 쏴 눕혔다. 그러나 적들의 기관총 연발사격에 허형식의 온몸은 벌집처럼 탄알을 맞았다. 마침내 그는 장렬히 쓰러졌다. 그때 그의 나이 꽃다운 33세로 조국 광복을 찾고자 싸우다가 북만주 산하에서 불꽃처럼 산화했다.

마지막 장면

마침내 두 분 선생의 허형식 순국 이야기는 끝이 났다.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마치 고교시절에 본 헤밍웨이 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는 듯 그저 가슴이 먹먹했다. 그 작품에서 로버트 조던은 사랑하는 여인 마리아를 전장에서 떠나보낸 뒤 그가 탈출할 수 있도록 엄호하다가 최후를 맞지 않았던가. 허형식이 큰 나무둥치를 안고 처절하게 싸우다가 쓰러진 마지막 장면은 이후에도 두고두고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대장부의 귀감이었다.

'그래 진정한 사나이는 그렇게 죽는 거야!'

 김우종 선생이 필자에게 써준 소개장
 김우종 선생이 필자에게 써준 소개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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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8월 18일 오후 5시 30분부터 모던호텔 찻집에서 시작한 서명훈·김우종 선생의 두 분 이야기는 거기서 가까운 서라벌 한식당으로 옮긴 뒤에도 이어졌다.

우리 세 사람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다시 모던호텔 찻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허형식 장군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날 밤 9시가 넘어서야 그 이야기가 끝났다. 김우종 선생은 마침 중국공산당 경안현에서 1998년 10월 청봉령 들머리에 허형식 희생지 기념비를 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남조선에서 온, 게다가 허형식 고향에서 온 첫 번째 진객이라고 허 장군의 영혼이 매우 반가워할 거라고 말했다.

당신은 선약으로 동행할 수 없다고 애석해 하면서 즉석에서 중공당 경안현위원회 당사연구실 주임에게 쓴 소개장을 나에게 써주었다.

서명훈 선생은 송화강 잡지에 실은 <일본영사관습격사건> 복사물을, 김우종 선생은 당사 연구실에서 보관 중인 허형식 관련 서류 복사물과 연변소설가 유순호의 <비운의 장군 조상지>를 참고 문헌으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두 분 선생과 함께 거기서 가까운 신화서점에서 동북지도를 산 뒤 택시를 타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태그:#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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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