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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겉보기와 달리 우리 고대사를 다시 쓰게하고 있는 풍납토성.
 평범한 겉보기와 달리 우리 고대사를 다시 쓰게하고 있는 풍납토성.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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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남단 자전거도로를 따라 달리다 만나는 천호대교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흙으로 쌓은 언덕 혹은 둑이 길게 이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언덕 옆으로 나있는 산책길로 들어서니 풍납토성비과 함께 안내판이 그 정체를 알려주었다.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이다.

풍납동 동네를 품고서 길게 이어진 토성은 오랜 세월 속에 언덕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강변 동네 풍납1동과 2동 일대에는 이렇게 띠를 두른 듯한 예사롭지 않은 언덕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한 눈에 봐도 긴긴 세월의 더께가 언덕에 묻어나 있다.

오랫동안 알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던 우리의 고대국가, 한성백제(漢城百濟)시대의 왕성(王城)터로 추정되는 풍납토성(風納土城)이다. 한성·웅진(공주)·부여로 수도를 옮겼던 백제는 678년 역사 중 473년간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에 수도를 둔 '한성백제시대'라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조선시대 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고산성(古山城)' 이라고 나와 있다. 이를 보아 중세인들도 백제의 오래된 성곽이라 추측한 것으로 추정된다. 풍납토성이 처음 학계에 발견된 것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한강 하류 풍납리 땅 속에 묻혀 있던 백제의 토성(土城)이 물난리로 남서쪽 일부가 무너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성벽 발굴 현장.
 2011년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성벽 발굴 현장.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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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지난 1997년 아파트 건설을 위한 터파기 공사를 하던 중 다량의 백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어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풍납토성 유적이 서울 한강가에 자리를 잡고 500년 간 전성기를 구가했던 백제의 '한성백제시대(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 온조왕~개로왕)'의 왕도(王都)인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라고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백제의 왕성(王城)이었다는 하남위례성은 정확한 위치가 나와있지 않아 오랫동안 미궁 속의 도읍이었다.

"백제시조 온조왕이 마침내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북한산)에 올라 살 만한 곳을 내려다보았다. 10신이 '하남의 땅은 북으로는 한수를 두르고 동으로는 높은 산에 의지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기름진 땅을 바라보며 서로는 대해로 막혀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원년조, 기원전 18년]

풍납토성은 한강가 평지에 도성을 세우고 성을 보호하기 위해 외곽을 둘러쌓은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성 내부 면적은 축구장 20개 크기의 26만평에 현재 길이가 약 2.5㎞ 정도가 남아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판축토성(版築土城: 돌을 판판하게 깔고 위에 흙을 차곡차곡 다져쌓아 만든 성)이다.

현재 토성 안쪽에 수십 동의 아파트를 비롯해 각종 빌딩이 들어서 있으며 거주 인구만도 1만8000여 세대 4만8000명을 헤아릴 정도. 1925년 대홍수 당시 유실된 서벽을 포함한다면 최대 13m 높이(아파트 5층)에 전체 길이 3.5㎞에 달하는 거대 성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풍납토성 성벽은 지상 5m, 지하 3m 높이다. 이 토성은 백제 초기 국가적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왕도(王都)'를 찾아 가는 풍납동 토성 길

잃어버린 왕도를 찾아가는 토성 길은 작은 시장통과 주택가 골목을 지난다.
 잃어버린 왕도를 찾아가는 토성 길은 작은 시장통과 주택가 골목을 지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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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을 따라 풍납토성 옆에 마련된 산책로를 걷다보면 도로와 지역개발로 성벽이 끊기면서 작은 골목 시장통이 정겨운 풍납시장이 나타난다. 백제시대에도 성안에 이런 장터가 있었겠지 싶어 눈여겨보게 되는 시장이다. 마치 잃어버린 '왕도(王都)'를 찾아 가는 기분이 들어 묘한 흥분이 일었다.

이름도 멋진 '바람드리('풍납(風納)'의 순 우리말)길'을 따라 시장통과 주택가 골목을 지나갔다. 각 골목길의 이름들도 '토성길'이다. 토성 편의점, 토성 노래방 등 주변 상점의 간판들에 유독 '토성'이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띄었다. 풍납토성이 이곳 송파구 풍납동의 상징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토성길과 바람드리길을 지나 다시 토성이 이어지는 경당역사공원(부여의 시조인 동명왕과 천지신에게 제를 올리던 신성한 제사터), 풍납초교, 풍남 2동까지 이어진 토성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토성 곁을 따라 한가로이 산책하는 주민들, 토성 터 위로 올라가 뛰어다니는 동네 개구장이들, 토성에 기대어 서있는 단층의 주택, 상가들... 처음 오는 곳, 처음 대하는 풍경,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마치 고도(古都) 경주에 온 듯했다. 길게 이어진 토성터 아래로 천천히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림처럼 현실 같지가 않았다. 2천 년 전 백제인과 현대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서울은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유서 깊은 도시요, 화수분(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같은 도시지 싶다.

풍납동은 오밀조밀한 시장통 골목과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찬 평범한 동네지만 2천 년 전에는 한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를 호령하던 백제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 중심에 선 풍납토성의 왕궁 유물발굴로 서울 정도의 역사는 조선왕조 600년 도시에서 무려 2천년 고도(古都)의 도시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셈이 되었다.

우리 고대사를 다시 쓰게 한 풍납토성

풍납토성 터 위에 올라가 뛰어다니고 있는 동네 개구쟁이들.
 풍납토성 터 위에 올라가 뛰어다니고 있는 동네 개구쟁이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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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지역에 있던 고대국가 부여(夫餘)로부터 떨쳐 나온 왕비 소서노와 둘째 아들 온조(溫祖)왕이 백제 건국 초기 서울 한강가에 터를 잡은 이래로, 약 500년 동안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에 수도를 두었다. 백제는 고대 삼국 중 가장 먼저 한강을 차지하면서 가야, 중국, 일본 등과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한성도읍기' 혹은 '한성백제시대'(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라 불리는 때다. 현재 서울에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 한성기의 핵심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 시기를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유적이 바로 풍납토성이다. 초기 고대국가로의 틀이 갖추어지자 늘어나는 인구도 수용하고 방어체제도 강화하기 위해 도성을 건립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풍납토성과 가까이에 있는 몽촌토성(夢村土城). 풍납토성은 평지토성으로 평상시에 주거하는 도성이고, 몽촌토성은 자연 구릉을 이용하여 만든 비상시에 대비한 산성적 성격을 지녔다.

한성백제는 고구려가 그랬듯이 이성도읍체제(二城都邑體制)였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두 개의 도성으로 삼고 동서남북에 도성을 외호하는 산성을 두었다. 북쪽의 산성으로는 한강 건너 아차산성, 서쪽으로는 수도산(修道山)에 삼성리토성(三成里土城), 동쪽으로는 광주에 이성산성(二姓山城), 남쪽으로는 병자호란으로 잘 알려진 남한산성을 구축하였다.

토성 곁을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 2천 년 전 시간속을 걷는 것 같다.
 토성 곁을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 2천 년 전 시간속을 걷는 것 같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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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아파트 건설을 위한 터파기 공사 중 수없이 많은 백제 유물이 출토되면서 풍납토성의 고대사적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일종의 방어시설인 3중의 환호 유구를 비롯해 토기를 비롯한 수많은 초기백제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단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왔다. 한성백제의 왕궁이었음을 뒷바침하는 유물들이 3만여 점에 달했다. 이처럼 많은 유적과 유물이 쏟아진 경우는 국내에서 경주 말고는 달리 없다고 한다.

유적과 유물 중 특히 관심을 모았던 건 20평이 넘는 대규모 건물터와 기와, 전돌(일종의 보도블록), 주춧돌 같은 당시로서는 고급 건축자재들이었다. 왕궁 내에 많은 국가시설물들이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기와와 와당, 문자가 새겨진 토기, 중국제 도자기 등이 출토되어 왕성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출토 유물이나 유적으로 보아 풍납토성이 백제 당시에 대단한 인구 밀집 지역이었고 대단히 중요한 성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것만은 분명하다. 풍납토성은 이제 북녘의 평양성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유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서울시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만하다. 잃어버렸던 우리 고대문화를 상징하는 유적이요 보물창고로 잘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성백제길이라 하여 풍납토성 곁으로 난 길을 따라 가까운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까지 이어져 있다.
 한성백제길이라 하여 풍납토성 곁으로 난 길을 따라 가까운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까지 이어져 있다.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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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ㅇ 지난 2월 2일에 다녀왔습니다.
ㅇ 서울시 '내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ㅇ 교통편 : 5호선 전철 천호역 10번 출구로 나오면 풍납근린공원과 함께 풍납토성 언덕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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