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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진보가 필요하다." <오마이뉴스>가 지역 사회에서 묵묵히, '우리 주변'의 문제를 파고드는 '변방의 게릴라'들을 만납니다. '중앙권력을 향한 견제'만큼이나 성스러운 변방의 싸움을 통해 시민운동의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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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 앞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달궜다. 한 시민단체의 '대학도서관 전면 개방을 위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사진을 두고 누리꾼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 대학도서관 개방 찬성자들은 "공공재로서의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고, 반대자들은 "대학도서관은 대학 구성원인 학생·교직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맞섰다.

이 와중에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은 "광주가 또 한 건 해냈다"며 이 시민단체의 활동을 폄하했다. 아무리 '기-승-전-광주'로 기생하는 일베라지만 뜬금없이 웬 광주? 이유는 하나다. 이날 헌법소원을 낸 시민단체가 광주에서 활동하는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 홈페이지 바로가기)'이기 때문이다.

시민모임의 유일한 상임활동가 박고형준씨는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수백개의 댓글을 일베에서 받아보네요. 이제 일베에서 놀아야 되나 봅니다. ㅋㅋㅋ"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은 차별"... 인권위 결정 이끈 '변방의 게릴라'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 앞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달궜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의 '대학도서관 전면 개방을 위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사진을 두고 네티즌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대학도서관 개방 찬성자들은 "공공재로서의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고, 반대자들은 "대학도서관은 대학 구성원인 학생·교직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맞섰다.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 앞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달궜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의 '대학도서관 전면 개방을 위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사진을 두고 네티즌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대학도서관 개방 찬성자들은 "공공재로서의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고, 반대자들은 "대학도서관은 대학 구성원인 학생·교직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맞섰다.
ⓒ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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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광주 동구 시민모임 사무실에서 형준씨를 만났다. 이날은 최근 아빠가 된 형준씨의 출산휴가 후 첫 출근날이었다. 그는 "'변방의 게릴라'라는 기획명은 좋은데 내가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멋쩍은 웃음을 내보였다.

변방의 게릴라 첫 인터뷰 대상자로 형준씨를 택한 건 그와 시민모임이 광주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전국에 파장을 일으킬 만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모임이 헌법재판소에 낸 대학도서관 개방 헌법소원은 인터넷을 달궜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 사전심사를 통과해 현재 심리 중에 있다(관련기사 : 도서대출에도 '신분'이 있다는 거 아셨나요?).

시민모임이 벌인 판은 대학도서관 개방 운동뿐만이 아니다. 시민모임이 생기기 전인 2006년부터 시작된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 반대 운동'은 시민모임의 뿌리같은 존재다(2008년 준비모임 발족, 2011년 정식 출범).

형준씨는 "학벌주의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학생의 인권과 개인정보가 침해된다"는 이유로 지금도 학교와 학원에 나붙는 '3학년 ○○○, SKY(서울·고려·연세) 합격' 등의 게시물을 감시·견제하고 있다. 2006~2014년 약 200곳의 고등학교·학원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해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 철거를 유도했다. 2013년엔 전국 고등학교 홈페이지를 일일이 접속해 381건의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을 적발했다.

2012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시정위원회 결정문'을 내고 "특정학교 합격 홍보 게시 행위를 자제하도록 각급 학교를 지도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같은 해 3월 시민모임이 인권위에 낸 집단진정의 성과다.

이외에도 시민모임은 '학벌없는사회를 열어가는 시민강연', '용봉 사람책 도서관', '정보공개청구 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이전에 하던 시민운동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성명서 하나 내고, 달랑 기자회견만 하는 방식의 시민운동은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재미도 없었어요. 일단 저는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싶었고,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싶었죠. 그걸 찾다가 학벌이라는 소수자 관점에 초점을 두고 교육 운동을 시작한 거예요."

지난해 1월 기자와 함께 광주의 한 대학도서관을 찾은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활동가가 출입 단말기 시설에 막혀 자료실 및 열람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기자와 함께 광주의 한 대학도서관을 찾은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활동가가 출입 단말기 시설에 막혀 자료실 및 열람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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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수능 고사장 대신 교육청으로... '대학 평준화' 시위

형준씨는 "이미 뉴스에 나온 이야기에 한 마디 보태는 것보다 우리 주변, 더 낮은 곳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청각이 있어야 한다"며 "대학도서관 개방,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 반대 등의 운동이 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냥 이슈가 되는 시민운동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삶이 바뀌는 시민운동이 돼야 한다"며 "언론에 뿌리는 보도자료를 넘어, 관계기관 정보공개청구도 해보고, 안 되면 국가인권위, 헌법재판소에 문제제기도 해 보는 게 시민모임의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시민모임의 상임활동가는 형준씨 한 명이다. 약 260명의 회원은 매달 3000원 이상의 후원을 해 시민모임의 동력원을 제공한다. 살림은 형준씨와 함께 '살림위원회' 위원 6명이 이끈다. 살림위원의 직업은 교사, 간호조무사, 영상제작가, 대학생 등 다양하다. 지난 달, 30일 가량 이어진 형준씨의 출산휴가도 살림위원회의 허락(?)을 통해 가능했다.

형준씨가 처음 학벌 문제에 발을 들인 건 2002년 겨울, 고3 때다. 그는 수능 날 고사장이 아닌 광주광역시교육청 앞에 섰다. 손엔 '대학 평준화' 글귀가 담긴 손팻말을 들었다. 학벌 비판 운동이나 대학입시 거부 운동이 생소한 게 당시 분위기였다. 어느새 형준씨는 '대학입시 거부 1세대'가 돼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행위 자체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아요. 당시 수능을 보지 않고 지금껏 대학을 가지 않고 있으니 그냥 최초 대학입시 거부자가 돼 버린 거예요. 그렇다고 '저 대학입시 거부자 아닌데요'라고 굳이 반응할 필요도 없고, 다른 대학입시 거부자의 생각에 동참해야겠다는 의식도 생겼어요. 조금이라도 힘이 되려고요."

이렇듯 형준씨에겐 '연대'가 중요하다. 학벌 문제를 비판하는 시민단체에 있으면서도 대학생, 탈핵,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2011~2014년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1352일 동안 매주 진행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삼성 앞 '1352일' 1인시위... 오늘 마칩니다")

2011년 1월 13일 광주 동구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 '삼성의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삼사모)'이 3년 8개월 동안 했던 1인시위를 25일 마무리했다. 사진은 그동안 1인시위를 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모은 것이다.
 2011년 1월 13일 광주 동구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 '삼성의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삼사모)'이 3년 8개월 동안 했던 1인시위를 25일 마무리했다. 사진은 그동안 1인시위를 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모은 것이다.
ⓒ 소중한, 임영규, 박고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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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지나친 열정, 학생 '교육 주체'에서 멀어져"

최근 아빠가 된 형준씨에게 "교육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딸이 교육받았으면 좋겠나"라고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거죠(웃음)."

농담 섞인 답변의 속뜻을 다시 물었다.

"지금 교육정책, 교육운동이 무엇으로 돌아가는지 보세요. 학생에 의한 교육열이 아니라 학부모의 지나친 열성이잖아요. 그러니 학생은 교육의 주체에서 멀어지고 오로지 내 자식을 위한 경쟁교육만 남게 되는 거죠.

굳이 제 딸의 교육에 관심을 갖는다면 학업 능력, 교과학습 신장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잘 적용하고 싶어요. 자녀에게 쏟는 돈의 액수나 강압적인 학습으로 지탱하는 교육이 아닌 자생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학교가 되도록 감시 역할을 하고 싶어요."

2013년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이 벌인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 반대 금요 캠페인.
 2013년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이 벌인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 반대 금요 캠페인.
ⓒ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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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변방의 게릴라, #광주, #학벌없는사회, #광주시민모임, #박고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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