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산도 바다에 있는 등대.
 영산도 바다에 있는 등대.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저 등대 밖으로 나가면 어디로 흘러갈까. 이 섬을 끼고 흐르는 제주해류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면 어느 섬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시절은 해류처럼 흐르고, 인생은 표류하는 배처럼 흔들린다.  

영산화가 많이 피어 '영산도(永山島)'라는데 꽃 대신 상념이 만개한다. 도대체 이 많은 상념들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섬을 한 바퀴 도는 마을배를 타도, 돌담 이쁜 마을 안길을 따라 걸어도 이런저런 상념은 삐죽거리고 나와 파도를 탄다.

그럼에도 멀미를 하는 것처럼 불쾌하거나 어지럽진 않다. 목포에서 약 84km나 떨어진 외딴 섬이 주는 안정감일까. 자연스럽게 '멀리서 바라보기'를 하고, 멀리서 바라본 만큼 관계의 여백을 느끼며 마음은 차분해져간다. 사람들이 말하는 '힐링(healing)'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어딜 둘러보나 풍광이 기가 막힌 영산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이다. 당산에 서있는 기개 좋은 소나무 군락과 비류폭포 등 영산팔경(永山八景)은 여행객들의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만든다.

영산팔경 중 가장 유명한 석주대문. 코끼리를 닮았다고 코끼리 바위라고도 부른다.
 영산팔경 중 가장 유명한 석주대문. 코끼리를 닮았다고 코끼리 바위라고도 부른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재미 삼아 굳이 영산팔경 중 으뜸을 고르자면 당연 석주대문(石柱大門)이다. 코끼리 형상을 닮아서 코끼리 바위라고도 한다. 옛날 청나라와 교역을 할 때 근처를 지나던 배들이 풍랑을 만나면 이 바위 대문 안으로 대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덩치 큰 교역선들이 어떻게 저 좁은 바위 뒤로 숨을 수 있을까' 하는 까칠한 의문은 잠시 뒤로 해도 좋다. 영산도를 비롯한 흑산군도가 일본과 한반도, 중국을 잇는 중요한 해상 교류 루트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섬 비우기, 즉 공도(空島) 정책으로 조선이 내륙 안으로 스스로 갇히던 시절을 겪고서도 영산도엔 한때 400가구 약 500명의 주민이 살았다. 주변 해역에서 여러 해산물을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공도 정책보다 무서운 것이 있었다. 산업화와 도시화였다.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영산도를 '노인들만 남아 머지않아 무인도로 전락할 수 있는 섬'으로 만들어갔다. 영산도 최대의 위기였다.

영산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영산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화장실벽에 슈퍼맨과 배트맨이 창을 넘는 벽화를 그려두었다.
 화장실벽에 슈퍼맨과 배트맨이 창을 넘는 벽화를 그려두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23가구 43명의 주민들이 영산도를 살리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았다. 2012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선정하는 '명품마을'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명품마을은 국립공원 내에 있는 마을을 선정해 자연생태를 유지하면서 주민의 소득증대를 꾀하는 사업이다. 자칫 개발억제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소득이 되레 낮아질까 우려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산도 주민들은 달랐다. 주민들은 마을 담벼락을 벽화로 채색했다. 방파제는 멋진 노을을 감상하는 '낙조가든'으로 꾸몄다. 영산도 옛길을 걸으며 트레일을 즐길 수 있는 '영산 10리길'도 다듬었다. 또 30여 명이 잘 수 있는 마을 펜션도 세우고, 주민들이 직접 요리해서 밥상을 차리는 식당 '부뚜막'도 열었다.

이 모든 일을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하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공동으로 소득을 분배하고 있다. 명품마을 사업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영산도 명품마을 복합영어조합'도 만들었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영산도는 2013년 '환경부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되는 기쁨을 얻었다.

'여행객이 찾고 싶은 섬'으로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민이 살고 싶은 섬'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주민이 사업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리고 많든 적든 주민들의 소득과 이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산도 명품마을 사업은 작지만 귀중한 사례로 남을 것 같다.

동네 점방을 연상시키는 벽화가 정겹기 그지없다.
 동네 점방을 연상시키는 벽화가 정겹기 그지없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영산도 바로 앞섬은 흑산도다. 행정구역상으로 영산도는 흑산면 소속이다. 그렇지만 영산도 사람 어느 누구도 흑산도를 '본섬'이라 부르지 않는다. 영산도는 영산도고, 흑산도는 흑산도일 뿐이다.

이렇듯 저마다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 섬이다. 그래서 모든 섬은 저마다 독립된 우주다. 섬 하나가 사라지면 우주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다들 저마다의 이름으로 저마다의 우주 하나씩 품고 살다가는 것이다. 오늘도 섬이 되어 흐른다. 

주민들은 방파제를 노을을 감상하는 '낙조가든'으로 만들었다. 영산도에선 흑산도로 노을이 진다.
 주민들은 방파제를 노을을 감상하는 '낙조가든'으로 만들었다. 영산도에선 흑산도로 노을이 진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마을 안길의 풍경.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걷는 운치가 제법이다.
 마을 안길의 풍경.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걷는 운치가 제법이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태그:#신안군 작은섬, #영산도, #국립공원, #벽화마을, #힐링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