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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지(地)는 흙덩어리의 상형인 토(土)와 여성의 생식기나 뱀의 상형이라는 어조사 야(也)가 결합된 형태이다.
▲ 地 땅 지(地)는 흙덩어리의 상형인 토(土)와 여성의 생식기나 뱀의 상형이라는 어조사 야(也)가 결합된 형태이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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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펄벅의 <대지(大地)>에는 주인공 왕롱(王龍)이 아내 아란(阿蘭)과 함께 가뭄, 기근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힘겹게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왕롱은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자 흙을 죽처럼 끓여 아이들에게 먹이는데 이를 관음보살 흙이라 한다. 땅을 팔라고 하는 작은아버지에게 왕롱은 소리친다.

"조금씩 조금씩 흙을 파내어 밭을 몽땅 다 아이들에게 먹이겠소, 그들이 죽으면 나는 아이들을 그 땅에다 묻겠소. 나하고 아내하고 늙으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까지도 우리에게 삶을 준 이 땅에서 죽겠소."

늙은 왕롱은 죽음을 앞두고도 "우리는 땅에서 왔고 우리는 그 땅으로 돌아가야만 해" 하고, 땅을 팔면 집안이 망한다며 자식들에게도 절대 땅을 팔지 말라고 한다. 중국 농민을 형상화한 왕롱이 땅에 대해 보이는 끝없는 신뢰와 애착은 소설을 지탱하는  줄거리이자, 중국 농민이 땅에 대해 갖는 보편적인 생각일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 세상이 바뀌고 군벌이 난립해 도적이 판을 쳐도 땅은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주인을 기다린다. 어느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언제든 돌아가 기댈 수 있는 삶의 버팀목이자 안식처다. 땀 흘린 만큼의 풍부한 결실을 가져다주는, 생명을 낳고, 보듬어 키우는 풍요의 원천이다. 우리가 왔고, 발 딛고 섰고, 또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이다.

땅 지(地, dì, de)는 흙덩어리의 상형인 토(土)와 여성의 생식기나 뱀의 상형이라는 어조사 야(也)가 결합된 형태이다. 금문에서는 땅 지(地)의 고자(古字)인 지(墬)자의 모양인데, 뱀이나 짐승이 배 밑에 두고 기어 다니는 언덕이나 흙을 나타낸 걸로 보인다. 여기서는 어조사 야를 여성의 생식기로 보는 것이 대지가 갖는 모성과 생산의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

땅 지(地)에는 땅의 의미 이외에도 처해 있는 입장이나 발 딛고 선 처지의 의미도 있는데,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역지사지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하면서도 멋진 사자성어다.

<맹자>에 나오는 "안회는 치수(治水)를 담당한 우임금이나 곡식을 관장한 후직(后稷)과 입장을 바꾸어도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禹, 稷, 顔子, 易地則皆然)"에서 처지를 바꾼다는 '역지'를 빌려오고, <중용>에서 나오는 "신중하게 그것을 생각하라"는 신사지(愼思之)에서 '사지'를 합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 걸로 보인다.

중국을 한 마디로 흔히 "땅이 크고 물자가 풍부하다(地大物博)"고 표현한다. 그런데 얼마 전 중국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언제적 얘기냐며 웃는다. 물론 큰 영토와 많은 자원을 보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14억에 육박하는 인구로 나누면 1인당 영토와 자원이 모두 세계 100위권 밖이라며 중국은 이제 '지소물박(地小物薄)'이란다. 현실을 직시했다고 해야 할지, 지나친 엄살이라고 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태그:#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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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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