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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의 표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의 표지.
ⓒ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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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정치인을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들 말하곤 한다. 실제로 정치인이 발의한 법안과 정책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쉽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계와 내가 살아가는 곳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껏해야 뉴스로 접하거나 선거철에 투표용지 위의 이름으로 마주하는 정도에 그치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신의학자가 집필한 책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떤 정당이 집권하여 어느 방향으로 정책을 펴는지가 개인의 삶에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신의학자가 발견한 정치와 삶의 연결점

저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정신의학자로, 1966년부터 2000년까지 34년간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재직했던 사람이다.

현재는 뉴욕대학교 정신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에서 매년 보고되는 사망자의 수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했다. 자살률과 살인율, 각각 자신과 타인을 상대로 한 폭력사건을 기반하여 수치를 검토하고 경향의 변화를 파악하려는 시도다.

그는 한 세기가 넘는 기간의 폭력 치사 수치가 장기간에 걸쳐서 큰 규모로 증가하고 감소한 것을 세 번 발견했다. 사망률이 몇 년이나 몇 십 년에 걸쳐서 큰 오르막과 골짜기의 모양새로 그래프가 오르락내리락 한 것이다.

저자 길리건은 우연하게도 그 곡선의 주기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이 백악관에 들어선 기간과 겹친다는 것을 포착한다. 자살률과 살인율이 높게 치솟기 시작한 때가 공화당의 집권기, 다시 하락세로 접어든 시점이 민주당의 집권과 맞물린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00년부터 2007년까지 108년간 순 누적치로 폭력 치사 사망자수를 비교해보면 공화당 정부 때가 민주당 정부 때보다 인구 10만 명당 38.2명이 더 많다고 한다. 이를 현재 미국 인구로 계산하면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보다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 자살자와 타살자가 11만 4600명이 더 많았다는 주장이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어서 저자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토대로 설명을 이어간다. 폭력적 행동의 심리적 매커니즘을 연구하는 교수로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적 차이와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정신의학자가 발견한 정치와 삶의 연결점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크고도 밀접한 셈이다.

"실업률 수치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미국에서는 소득 불평등보다 재산 불평등이 더 큰 게 이 재산 불평등으로 폭력 치사 발생률을 더 잘 예측할 수 있다. 에드워드 N. 울프에 따르면 가계 자산(주택 소유 포함)과 금융 자산(주식, 채권, 현금, 기타 호환성 자산)으로 본 재산의 불평등이 미국에서 극에 달했던 두 시기는 폭력 치사 발생률이 모두 전염병 수준으로 높았던 시기였다. 대공황 직전(재산 불평등도는 1929년에 절정에 달했다)과 재산 불평등이 1929년 이래 가장 심각했고 대공황 이래 어느 때보다도 불황이 심하고 실업률이 높았던 1980년대의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집권기였다. (본문 69쪽 중에서)

본문에 인용된 조사 자료와 그래프를 보면 공화당 대통령의 임기동안 경제가 거듭 침체를 겪고, 그러는 사이에 자살과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인다. 반대로 민주당이 집권하면 꾸준히 감소세를 보인다.

딱 두 가지 예외적인 사례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이다. 아이젠하워는 공화당 소속이지만 사회 보장 제도와 실업 수당 정책을 폈고,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소득세를 걷었다. 반면 카터는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경제정책에 있어서 '공화당 당원' 소리를 들을 정도로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집권정당과 사망률의 등식이 성립하는 이유가 공화당이 상위 1%를 위한 경제 정책을 펴서 실업률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노동 임금을 낮추면서 고용주를 위한 방향으로 법안을 이끌고, 그러면서 불평등의 확산을 부추긴다는 이야기다.

자살과 살인은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치심을 겪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실업률이 치솟을 때 자살율과 사망률이 치솟는다는 점을 증거로 제시한다. 어느 시기에 정당이 우연하게 집권한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정책에 의해서 수만 명의 목숨이 죽고 산다는 것이다. 높은 실업률이 박탈감과 수치스러움을 쉽게 자극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버번 전략'

"불평등 심화를 촉진하는 공화당의 집권이 사망률을 높인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꽤 자극적인 면이 있다. 독자가 그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경제 정책이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은 분명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 영향이 심리적인 부분에도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끊임없이 '서민 증세'와 '부자감세' 논란에 휩싸이는 오늘날 한국 정부는 어떨까? 본문에서 인용된 발언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부유층을 "나의 기반"이라고 불렀다. 대기업을 위한 '규제 완화'와 '보편적 복지 철회'를 외치는 새누리당의 모습이 본문 속의 부시 대통령, 공화당과 겹쳐 보이는 것은 단지 지나친 비약일까?

저자가 언급한 것들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버번 전략(Bourbon strategy)'이다. 위스키가 아니라 미국 남부의 부유한 백인 지배층을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 빗댄 단어이다. 60년대 공화당이 미국에서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 인종차별적 발언과 정책으로 흑인 사회의 감정을 자극하고, 백인의 우월감을 부추긴 '남부 전략'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기 다른 집단으로 나뉜 국민들이, 1%의 부유층이 아닌 서로를 향해 비난을 퍼붓도록 하는 '분할 통치'가 전략의 핵심이다.

이는 최근 불거진 보육문제에서 "불필요한 어린이집 이용" 발언으로 '전업주부'와 '맞벌이 부부'를 갈라놓은 보건복지부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정부는 일자리 문제에서 정규직을 문제 삼으며 '해고 완화 방안'을 검토하면서, 담뱃값 인상에서는 '꼼수 증세' 논란을 피해가고자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욕구를 충돌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것들도 일종의 '버번 전략'이 아니었을까?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국민들 간의 이권 다툼으로 핵심적인 해법은 자취를 감추고, 정부가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고 있는 것이 2015년 한국의 현주소다. IMF 이후 최고로 급등한 청년 실업률, OECD 가입국 중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율과 낮은 출산율은 무얼 말할까? 저자인 정신의학자 길리건은 말한다. 전염병 수준으로 치솟은 폭력 치사율을 낮추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불평등과 절망을 줄이는 정치·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씀 /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2.02. / 1만3천원)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2012)


태그:#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버번 전략, #분할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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