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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옆에는 초등학교 폐교가 있다. 아이들의 웃음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운동장은 공허한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사람의 손길로부터 방치된 학교 건물은 '떠나가는 농촌'의 황량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지금은 20여 가구 남짓에 노인들이 대부분인 우리 마을도 예전에는 아이들 북적거리던 '잘 나가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마을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체념과 무기력함이 팽배한 가운데, 마을의 운명을 바꿀 조용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얼치기 귀농인들' 일 내다

7년 전의 일이다. 나는 지인들과 함께 농촌에서 뜻있는 일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해 귀농을 결행했다. 처음에는 외지인을 대하는 마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애들이 농촌 마을에 살겠다고 들어오니 '그래,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보자'라는 심산도 있었을 것이다.

귀농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농사만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없고 눈이라도 많이 올라치면 고립되기 일쑤인 '깡촌' 마을에서는 '손만 대면' 다 '일'이다. 고령화와 과소화로 자체 경제 기능을 거의 상실한 농촌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할 일은 농사말고도 무궁무진하다.

마을에 노인복지센터가 생기고 겨울잠 자던 마을 경로당이 각종 노인 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마을 복지의 '랜드마크'로 재탄생됐다. 지역 특산품인 모싯잎 떡을 생산하는 마을기업에서 어르신들은 모싯잎 생산부터 수확, 가공과 떡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반의 과정에 참여한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과 기초노령연금에 의존하다가 직접 벌이가 생기니 어르신들의 자존감과 행복지수가 높아졌다. 나아가 지역 소농 간의 연대, 농촌과 도시의 연대를 추구하며, 유기농으로 정직하게 생산된 지역의 농산물을 유통하는 경로를 확장 중이다.

매주 정해진 요일이 되면 트럭에 생필품을 가득 실은 '이동 점빵'이 마을을 돈다. 가정 상비약에서부터 식료품에 이르기까지 '없는거 빼고 다 있는' 점빵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구매 난민'의 처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이 '이동 점빵'은 협동조합기본법 통과 이후 마을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 전남지역 제 1호 사회적 협동조합이 되었다.

이미 폐교된 곳 말고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초등학교 한 곳은 폐교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학부모들과 주민들의 열성적인 참여와 노력으로 '학교 살리기'에 성공, 지금은 도시에서 전학을 오는 내실있는 '작은 학교'가 되었다. 교사-학부모-주민들의 연계 속에서 마을공동체는 학교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학교는 마을공동체에 활력을 주는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간다.

내가 속한 '여민동락공동체' 얼치기 귀농인들(책 <사람 사는 대안마을>에서는 농사짓지 않는 귀농인을 '얼치기 귀농인'이라고 표현한다) 이야기다. 이 기세라면 우리 집 옆에 황량하게 버려진 폐교도 곧 접수(?)할 듯하다. 마을 극장, 마을 공방, 마을 주막, 마을 사진관, 마을 도서관, 마을 신문사, 각종 마을 동아리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어우러지는 꿈. 그렇게 부활한 마을에서 대를 이어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나가는 꿈.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

'마을'은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람사는 대안마을> 표지 지속발전이 가능한 지역공동체마을 20곳을 소개합니다
▲ <사람사는 대안마을> 표지 지속발전이 가능한 지역공동체마을 20곳을 소개합니다
ⓒ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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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 정기석 소장의 <사람사는 대안마을>에 나온 대로 정리하자면 마을 만들기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마을 시민'과 잘 조직된 '마을 기업'이 있어야 한다.

나와 내 동료들의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면, 마을 공동체의 복원은 주민들의 삶과 결합된 구체적인 '일'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그 '일'은 마을 내에서 끊어졌던 사람들간의 연계를 이어주고, 버려진 마을의 자산을 재발견하기도 하며, 전에는 꿈도 못 꾸었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 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벌리고 책임질 '일꾼'의 존재다. 얼치기 귀농인들이 좌충우돌하는 가운데서도 마을의 '가생이'에서 '가온'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일꾼'으로서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마을의 '붐'이 일면서 마을공동체의 가치와 필요성이 확산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보여주기식 경쟁과 행정편의주의로 인한 역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마을 만들기를 지원하는 법과 제도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마을 만들기는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다. 정 소장은 '행정, 주민, 전문가'의 역량과 자세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무엇보다 마을 만들기를 '생태공원화' 혹은 '농촌관광지화' 정도로 여기는 천편일률적인 사업 모델이 문제다. 오랜기간 마을에서 삶의 터전을 꾸려온 주민들을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일시적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마을을 한 번 띄워보려는 '한탕주의'는 마을 만들기를 지속불가능하게 만든다. 정 소장의 표현에 의하면 '재미도, 감동도, 소득도 없는 잔치판'이 마을마다 벌어진 셈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을 만들기의 '개념'과 '방법론'을 수정하는 것이다. 우선,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대안마을이란 무엇인가?

대안마을이란 '1차 친환경 농산물 생산, 2차 농특산물 가공, 3차 도농 교류와 직거래 서비스 등 6차 융복합형 농업 농촌 발전 전략을,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주체적이고 사회혁신적으로 실천하는 지속발전가능한 농촌 지역공동체마을'을 뜻한다. 또 '도시민 체험 관광객 등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경거리나 놀이터를 만드는 마을 만들기가 아닌, 원주민, 귀농인 등 내부인의 생활과 생존을 위한 삶의 질을 높이는 '마을 살리기' 또한 '마을 살이'를 실천하는 마을을 지향한다. 한마디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사람으로서 능히 살아갈 만한 마을'을 말한다. (10쪽)

이러한 대안마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토건적 마을 만들기'에서 '사회생태적 마을 만들기'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농사로 일구는 경제마을', '사람을 배우는 교육마을', '놀이로 일하는 문화마을', '자연과 사귀는 생태마을'로 구성된 이 책에 등장하는 마을 사례들은 이 패러다임 전환의 앞장에 서 있다.

정 소장은 "원주민, 귀농인, 출향인 등의 인간다운 생활과 생존을 보장하는 삶의 질 높이기를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그렇게 '만드는 마을'에서 '사람 사는 대안마을'로 사회적으로, 인문적으로, 문화적으로 진화해야 한다"(9쪽)고 강조한다.

"자생, 공생, 상생하는 행복한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내 먹을거리는 내가 만들 수 있는 경제적 자생, 협동 생활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공생,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자연속에서 더불어 상생하는 마을요."(147쪽)

문화생활공동체를 꿈꾸는 충북 영동군 우매리 '백화 마을' 이성균 추진위원장의 말이다. '백화 마을'이란 백 명의 주민이 백 가지 재능을 백분 발휘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농촌 마을은 농사만을 짓는 마을이 아니다. 농업을 기본으로 하되 농촌의 삶은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어울림이어야 한다. 마을 시민이 운영하는 마을 기업이 있는 마을 공동체 사업이 가능하려면 '늙은 농민' 만으로는 안된다. 5%의 농민에 95%의 젊은 도시민들이 결합해야 한다.

다양한 재주와 특기를 가진 귀농인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공동체를 발전시켜야 '마을이 산다. 간디는 인도의 미래를 위해서는 70만 개의 마을공화국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을이 살아야 농촌이 산다. 농촌 공동체가 만개할 때 위기에 몰린 농업도회생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농촌과 도시가 만나고 농업을 살리고 농촌 경제를 활성화하는 교집합에 '대안 마을'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사람사는 대안마을>(정기석 지음/피플파워 펴냄/2013.10.15./251쪽/1만4000원)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사람 사는 대안마을

정기석 지음, 피플파워(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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